앵커: 올 들어 북한 곳곳에서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북한 내부 소식을 전문적으로 보도해온 일본 언론인이 전했습니다.
이미 절대적으로 부족한 식량에 코로나 대유행 이후 현금 수입의 급감으로 식량을 사 먹지 못하는 도시 주민의 상황은 더 심각한데요. 보릿고개도 오기 전에 전국적으로 아사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노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이미 전국 곳곳에서 취약계층 중심으로 아사자 발생”
[이시마루 지로] 예를 들어 양강도 혜산시도 그렇고, 인구가 비교적 많은 도시인 함경북도 청진, 회령, 무산에서도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평안북도 신의주도 비교적 잘 사는 도시였는데, 도시 사람들 중에서 취약계층이 굶어 죽고 있다는 정보들이 있었습니다.
최근 한국 언론이 잇따라 대북 소식통과 정보당국을 인용해 개성시에서 하루 수십 명씩 굶어 죽고 있다며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을 전한 가운데 일본의 대북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는 아사자 발생이 이미 전국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전국적으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조금씩 발생해 왔는데, 코로나가 발생한 지 3년이 지나면서 취약 계층들부터 죽던 사람들이 이제는 외부로 정보가 나갈 수 있을 만큼 전국적인 범위에서 생기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 대표는 (2월 9일) RFA에 코로나 대유행으로 북중 국경이 봉쇄된 2020년부터 이미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아사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아사자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굶어 죽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말은 2020년 초여름부터 있었습니다. 특히 노인 세대, 돈이 없거나 돈벌이를 못 하는 사람, 저축한 돈이 없는 사람들이 현금 수입의 급감, 의약품 부족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쌀을 구매하지 못하고 병까지 걸리면서 2020년도부터 조금씩 굶어 죽게 됐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이제 코로나 발병 3년이 지나면서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앞서 지난 2021년에도 함경북도의 한 주민은 RFA에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극심한 생계난을 겪고 노숙자가 된 사람 중에 아사자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관련 기사)

이시마루 대표는 농촌지역보다 도시의 상황이 더 심각하다고 말했습니다. 보유한 현금이 떨어져 식량을 구매하지 못하게 된 것이 근본 원인으로 이번에 언급된 개성시도 예외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시마루 지로] (개성공단 시절) 특별히 봐주던 대우가 없어지면 당연히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특히 지금 중국과 무역이 중단되면서 모든 지역에 유통이 잘 안되고, 도시 사람들의 장사가 잘 안되는 건 똑같죠. 그렇다면 북한 전역에서 볼 때 개성시는 변두리가 됩니다. 조건이 별로 좋지 않은 지역이라 당연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고요. 개성시만 특별히 어려운 게 아니고, 그 주변, 또 북한 전체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권태진 한국 GS&J 인스티튜트 북한∙동북아원장도 (1월 31일) RFA에 평양조차도 식량 배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만큼 북한의 식량 상황이 심각하다고 진단했습니다.
[권태진] 지금 평양에 있는 사람들도 제대로 배급을 못 주고 있거든요. 특히 평양에서는 농사짓는 사람이 없고 전부 배급을 받는데, 전체 가족 수만큼 계산해서 배급을 줘야 하지만, 올해는 그 정도도 안 되고요. 일하는 사람에게는 배급을 줘도 집에서 노는 사람에게는 배급이 안 돌아갈 정도로 식량 사정이 심각합니다.

작년 북 작황 451만 톤… 선방했다지만, 사실상 더 적을 것
한국 통일부는 (2022년 12월 14일) 농촌진흥청의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 북한의 식량 생산량이 451만 톤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전년도보다 18만 톤 감소한 수치로 쌀 생산량은 9만 톤 감소했고, 옥수수는 2만 톤, 감자와 고구마도 8만 톤이 줄었습니다.
[구병삼(통일부 대변인)] (정부 추정으로)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2022년도에 451만 톤이었고, 그 전해 2021년도에는 469만 톤이었습니다. 3.8% 정도의 감소가 있었던 것으로….
하지만 한국 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의 김혁 선임연구원은 (1월 30일) 실제 식량 생산량은 이보다 더 낮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김혁] 개인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 그것보다는 훨씬 떨어졌을 거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벼에도 쭉정이가 많이 보였거든요. 알 수도 좀 떨어지고요. 그리고 밀 같은 경우에도 위에 꼭지로 올라갈수록 쭉정이가 좀 심하게 많이 나타났어요.
김 연구위원은 북한 당국이 지난해 9월 개최한 정치국 회의에서 ‘국가 수매 계획’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관리하도록 강조한 것도 지난해 작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분석했습니다.
[김혁]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가을 수확의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 예측되는 상황에서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는 선제적으로 수매 계획을 늘릴 필요가 있는 거죠. 농장 일선에서 소출하는 과정, 탈곡하는 과정에서 상당수 많은 것들이 빠져나갑니다. 예를 들어 농장 운영에 관한 것, 봄에 빌린 영농자재의 대가 등을 가을에 결과물에서 일부 주는데, 이것을 통제하기 위해 정치국 회의를 개최하고 통제를 강화하는 겁니다. 생산량이 적더라도 국가가 필요한 수매 계획은 다 채우겠다, 이게 핵심입니다.

북한의 심각한 식량 상황과 주민들의 불안한 심리는 시장에서도 나타납니다.
‘아시아프레스’와 ‘데일리NK’ 등이 공개한 시장 물가 동향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의 주식인 옥수수의 경우 2월 초 기준 1kg에 북한 돈으로 2천900원~3천200원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최근 하락세를 보이긴 했지만,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600~700원이나 올랐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대표와 김혁 연구위원은 주민들의 구매력 저하와 불안 심리가 사재기로 이어진 탓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시마루 지로] 2023년도 들어와 옥 수수 가격이 갑자기 올랐습니다 . 거꾸로 백미 가격은 조금 내렸는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현금 수입이 많이 떨어지면서 구매력 자체가 없어지니까 백미보다는 싼 옥수수를 많이 선호합니다. 또 전국적으로 먹는 문제에 대한 불안감이 많이 퍼졌다고 하는데요. 앞으로 더 구매가 어려워지고, 더 비싸질 거란 불안 심리 때문에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사재기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김혁] 곡물 상인들의 경우에는 식량을 많이 확보해 놓고 봄철 춘궁기에 그걸 팔게 되면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사재기 현상은 보통 곡물 생산량이 많을 때 나타나는 게 아니라 곡물 생산량이 떨어질 때 많이 나타납니다. 가을걷이를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식량 가격은 춘궁기까지 계속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이는 거죠.
권태진 원장도 지난해 좋지 않은 작황의 영향이 지금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권태진] 지난해 작황이 평년작을 밑돌았어요 . 그래서 작년에는 작황이 좋다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이모작 작황은 아주 좋지 않았고, 가을 작황도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지금 영향을 미치는 겁니다. 아직도 보릿고개가 아직 멀었는데 벌써 이렇게 부족하면, 외국에서 필요한 곡물을 많이 수입하지 않는 한, 올해 보릿고개를 넘기기가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입니다.
김정은 북한 총비서(오른쪽)와 부인 리설주(왼쪽), 딸 김주애(가운데)가 북한 평양에서 열린 조선인민군 창건 75주년 기념 연회에 참석한 모습을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8일 공개했다. / AFP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작물 전망과 식량 상황’ 보고서에서 북한을 외부 지원이 필요한 국가로 재지정했으며, 세계식량계획(WFP)도 12월에 발표한 계절별 보고서에서 북한이 식량 안보에 위협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오는 5~6월 보릿고개가 시작됐을 때 북한이 유엔 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계획 등 국제기구에 지원요청을 할 가능성도 제기했지만, 전망은 불투명합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앨런 도우 아시아태평양 지역 담당 공보관은 (2월 7일) RFA에 “북한에서 이달 말 식량 안보와 농업 생산 문제를 다루기 위한 전원회의가 예정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도 “북한에 유엔식량기구 상주 직원이 없고, 코로나 대유행 초기부터 북한에 대한 정보와 활동이 제한적”이라고 말해 북한의 식량 문제를 돕는 데 한계가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개성시에 가족이 있는 한 탈북민은 (2월 9일) RFA에 “하루에 수십 명씩 아사자가 발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목에서 피가 날 정도로 슬프고 괴롭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토해냈습니다.
기본적으로 부족한 식량, 3년 가까이 이어진 북중 국경의 봉쇄, 시장 활동 제한에 따른 현금 수입의 감소 등으로 궁지에 내몰린 북한 주민은 계속 늘고 있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