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올 여름 북한의 주요 농경 지대인 서부·남부지역에 폭우가 이어지면서 홍수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도 평균기온 상승으로 농작물 재배 지역이 바뀌고 홍수와 가뭄 피해도 점차 커질 것으로 환경 및 농업 전문가들은 전망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북한의 상황, 박수영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홍수·가뭄·폭염 더 심해져 …극한 날씨 더 빈번해질 것
북한의 가족들과 연락을 이어오고 있는 탈북민 손혜영 씨는 가족들이 지난 수년간 홍수 피해를 겪어왔다고 털어놨습니다.
[손혜영]사촌 언니가 홍수가 나서 집이 다 떠내려갔다고 하더라고요. 북한에 2020년(에 이어) 2021년에도 비가 와서 집이 다 떠내려가고 기찻길이 다 막혔을 때도 우리 언니네가 하나의 피해자거든요. 저한테 문자로 편지가 있어요, '홍수나서 집 다 떠내려갔다'고.
손 씨 가족의 사례처럼 북한 곳곳에서 홍수 피해가 연례행사처럼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자연재해의 빈도와 강도는 앞으로 더 심화할 전망입니다.
가뭄, 홍수, 폭염 등이 반복되는 극한 기후 현상이 앞으로 더 빈번해지리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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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어스 (Google Earth)를 통해 본 북한 영변 핵시설 부근 구룡강의 2003년 3월과 2019년 10월 모습./김태이 제작
한국환경연구원 명수정 선임연구위원은 (11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아이피시시·IPCC) 보고서에서 한결같이 전 세계적인 홍수·폭우 피해가 심해지리라 예측 하고 있다”며 북한도 예외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명 연구위원은 이어 “기후 변화는 단순히 지구온난화 현상만 심화시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극한 기후 현상을 초래하기 때문에 홍수는 물론 가뭄 피해도 심각해질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혁 한국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에 배수시설이 열악한 탓에 홍수와 가뭄으로 인한 피해가 더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김혁]기반이 잘 안돼 있으니까 물이 바다에서 해수면이 육지로 상승하면 논에 염도가 올라가서 벼가 제대로 크지 못하는 거죠. 또는 가뭄이 오면 물을 제때 보충하지 못 해서 벼가 타버리는 겁니다.
북 , 기온 상승 뚜렷…농작물 재배지역 변화 중
이런 가운데, 북한의 연평균 기온은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해양대기국(NOAA)의 온도 편차 그래프에 따르면 북한의 경우 (위도 40.3, 경도 128) 1880년부터 2021년까지 10년마다 섭씨 0.16도가량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2014년 이후 2018년 한 해를 제외하고 북한의 연평균 기온은 꾸준히 상승했습니다.
1880~2021 북한 (위도 40.3, 경도 128) 온도 편차 그래프/미국 해양대기국(NOAA)자료 제공. /김태이 제작
탈북민 출신 북한 농업 전문가인, ‘굿파머스’ 조충희 연구소장은 이같은 북한 기온 변화가 작물 재배지역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충희]이전에는 평양이나, 평안남도, 평안북도 지역에서 감을 재배하지 못했어요. 평안도 지역은 겨울 날씨가 보통 영하 20도까지 떨어져서 겨울에 감나무들이 다 어니까 재배를 못 했는데 그 지역에서 감나무를 재배할 수 있도록 기온 변화가 진행되고 있고요.
사과의 경우 함경남도 북청까지 밖에 재배되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청진 지역에서도 재배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조충희]특히 사과 재배 지역이 북쪽으로 많이 올라갔어요. 그런 현상들을 놓고 봤을 때 실질적으로 북한에서 기후 변화에 의한 곡물이나 과수 재배에 변화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죠.
폭염이 지속될 경우 열매의 질도 낮아질 수 있습니다.
[조충희]낮에는 더웠지만, 밤에는 추워지고 이러면 겨울이 오는 것을 대비해 곡식들이 후대를 남기는 게 열매 아닙니까? 이걸 결실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결실을 하기 위해서 엄청난 힘을 집중하거든요. 자기의 모든 영양물을 열매 결실하는 데 보내는데 낮에도 덥고 밤에도 더우면 작물들이 착각해서 실질적으로 열매를 맺는 데 지장을 주게 됩니다. 곡식을 재배하는 것은 쌀이나 옥수수와 같은 열매를 목적으로 하는데, 그렇게 되면 전체적인 수확량이 떨어지게 되는 거죠.
기후 변화로 적절한 시기에 열매를 맺지 못할 경우 영양분이 제대로 축적되지 못하고, 과일의 경우 모양, 당도, 산도 등 품질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북한에서 더운 날씨가 길어짐에 따라 북한 주민들의 주요 식량인 쌀의 품질도 낮아질 수 있다고 조 소장은 덧붙였습니다.
[조충희]껍질을 벗기는 과정을 정미 과정이라고 하는데, 정미 과정에서 알(곡)들이 제대로 여물지 못하면 다 부스러져서 가루가 되거든요. 그렇게 되면 이중, 삼중 피해를 보게 되는 거죠.
북한 주요 곡장치대 기후 점차 내륙으로 이동 …지형상 재배지 이동은 불가
한편, 기후 변화로 인한 수해 피해가 북한의 곡창지대인 서부·남부 지역에 더 집중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습니다.
미국 우드웰기후연구소의 알렉산드라 네이글리 박사는 (9일) RFA에 기온 변화 추세를 바탕으로 북한의 남부와 서부 지방의 기온이 특히 더 가파르게 증가하리라 전망했습니다.
세계 최대 기후변화 캠페인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을 촉구하는 글로벌 협의체(Tcktcktck.org)'에서 제공하는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서남부 지역 7월 온도는 지난 10년간 약 1°C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1년 대비 2020년 7월 평균 온도는 각각 평양은 0.93°C, 남포 0.96°C, 개성 0.18°C 증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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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대유행으로 2020년 세계 교통량과 경제활동이 급격히 줄면서 2020년 4월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전년 대비 17%까지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이는 높은 수치입니다.
네이글리 박사는 “앞으로 20년 동안 북한의 서부 해안선 지역에서 농작물 중 특히 벼의 경우 더 잦은 흉작이 예상된다”면서 “생계와 식량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는 따라서 북한에서 쌀과 옥수수를 재배하기에 유리한 기후 조건은 해안 지역에서 점차 내륙 지방으로 이동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지형 특성상 내륙지방으로 알곡 생산지를 옮기기는 어렵다고 농업 전문가들은 지적했습니다.
조충희 소장은 벼와 옥수수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넓은 평지가 필요한데 이는 북한 내륙과 동부 지방에는 평지가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조충희]기후상으로는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형상으로는 좀 불가능해요. 한국도 그렇지만 북한이 산이 많잖아요. 산이 많으면 옥수수나 벼농사하기 힘들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기후적으로 벼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변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평지가 아니기 때문에 산 경사에다가 거기서 벼농사나 옥수수 농사를 지을 수는 없는 거고요.
김혁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과거 1970년대에 내륙으로 논을 확장하기 위해 다락밭을 만들었지만, 이는 산림 피해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원인이었다며, 내륙으로 재배지를 옮기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혁]북한이 생존하기 위해서, 쌀을 증산하기 위해서 내륙으로 논을 움직인다는 건 한계가 있고, 쉽지 않고 또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기반들이 또 갖춰져야 합니다. 따라서 북한에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해요.
탈북자 손혜영 씨도 내륙 지역에서 쌀을 재배하는 것만으로는 북한 주민 전체의 자급자족을 실현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손혜영]함경남도도 벼농사하는 데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넓지 않죠. 함흥남도나 이런 그런 데 가면 농사짓는 평야가 넓잖아요. (함경남도에는) 그렇게 넓은 땅은 없죠. 있긴 있어도 충분하지 않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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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대비 북한 해법은 ?
북한이 기반 시설을 정비하고 품종 개량 등 기후변화에 대응해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충희 소장은 설명합니다.
[조충희]지금 북쪽에서 재배하고 있는 작물들이 기본적으로 냉해나 이런 낮은 온도에 적응된 품종들인데 이것들을 빨리 기온 변화에 맞게 개량해야 하고 그다음에 특히 폭우나 기온 변화에 따른 여러 피해를 막기 위한 배수 체계, 관수 체계를 바꿔줘야 합니다.
김혁 선임연구원도 북한이 자연재해에 대비한 기반 시설을 빨리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김혁]기반 시설이 이제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인 거죠. 그러니까 이제 북한 같은 경우에는 제대로 안 갖춰져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겁니다.
명수정 연구위원은 남북한 농업 협력을 통해 남북한이 상호보완적인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농경지가 적은 북한과 달리 한국은 유휴농지가 많은 대신 농업 고용 노동력이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기후변화로 인해 작물 재배적지도 점차 북상하고 있어 남북은 상생 관계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북한의 홍수와 가뭄 피해가 해마다 가중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북한 당국이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됩니다.
기자 박수영,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