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 봅니다. 일본에서 언론인으로 활동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기자> 북한의 공식시장이 대형화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위성 사진 등을 통해 분석한 결과인데요, 문성희 박사님, 북한 당국이 허가한 공식 시장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건데요, 어떤 배경으로 봐야 할까요?

문성희 그거야 시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북한 당국이 인정해서 결국 시장을 늘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라고 봅니다. 최근 북한 지도부는 계획경제로 다시 돌아갈 기미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시장이 점차 커지면 거기서 북한 당국이 '비사회주의적'이라고 비난하는, 여러가지 부정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북한이 경제 분야에서 통제를 강화하자면 국영상점 등에 상품이 넉넉히 진열돼야 하고 공급도 제대로 할 수 있게 북한 당국이 상품이나 식량 등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03년에 경제개혁을 실시한 지 이제 20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물론 그 동안 계획경제 방향으로 돌아가거나 식량 공급을 부활시키거나 해서 국가가 경제를 통제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기도 했지만 한 번 시장화가 촉진되면 사람들은 그것에 익숙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많은 아사자가 나온 배경에는 그 때까지 국가가 공급을 해주었기 때문에 갑자기 공급이 없어지자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 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지요. 모두 시장에서 물건을 사거나 파는 데 익숙하게 되었고 장삿꾼들도 많습니다. 살아가기 위해서 개인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당연히 성공하는 사람이 나오고 실패하는 사람도 나옵니다. 그러니까 저는 북한에서 '평등'이라는 것이 없어진 지 오래됐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국자들은 사회주의제도의 유지라고 할까, 사회주의의 부활을 바라고 있겠지만 한 번 시장화가 진행되면 이제 사람들은 그것이 편할 것이고 결국 국가에서 공급을 안 해준다면 시장화 밖에 살 길이 없게 되겠지요.
좀 이야기가 비켜갔지만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것은 결국 북한 당국이 시장화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자> 북한의 시장의 모습, 직접 가 보시니까 어떻던가요?
문성희2008년, 2010년, 2011년, 2012년에 주로 평양 교외에 자리잡은 통일거리시장에서 직접 상품을 산 경험이 있습니다. 통일거리시장이라고 하면 북한 당국이 2003년에 개혁정책을 실시하면서 처음으로 공식 개소한 종합시장(나중에 지역시장으로 변경)이었습니다. 2003년에 평양 특파원으로 체류할 때 국가가 인정하는 대규모시장이 생긴다는 소문을 듣고 취재를 하려고 애썼지만 그 당시는 취재 허가가 안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북한 당국이 시장을 인정하고 그것을 국가적으로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통일거리시장은 체육관을 세 개 정도 붙여놓은 정도의, 정말 넓은 부지 안에 들어서 있었습니다. 2008년에 처음 시장에 갔을 때는 ‘여기가 과연 북한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잠깐 우리 가게의 상품도 보고 가십시오”라고 여성판매원들이 활기차게 말을 걸어오고, “시장 가방은 필요 없습니까?”라며 다가오는 젊은 여성도 있었습니다. 시장에는 식료품, 일용품, 의류, 가전제품 등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평소 매대에 물건이 그리 없었던 북한의 상점을 돌아본 저로서는 놀랄만한 광경이었습니다. ‘북한에 이렇게 상품이 진열된 장소가 과연 어디 있겠는가?’하는 생각에서요. 북한에 물자가 부족하다는 것이 거짓말 같았습니다. 과일매장에서 상품을 고르고 있으면 “싸게 드릴게 사 가십시오”라고 여성 판매원이 호객행위를 하고 가격 협상을 시작했고, 근처의 다른 가게 판매원도 다가 와서 “우리 가게도 싸게 드립니다’라며 저를 잡아당기려고 하는 그런 경험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점포끼리 서로 가격경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989년에도 한 번 시장을 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아직 ‘농민시장’이라고 불리우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매일 운영되고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농민들이 노는 날 시장이 열렸고 규모도 작았습니다. 비공식으로 갔기 때문에 물건을 산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기자> 평안남도가 시장 갯수가 가장 많은 걸로 나타났습니다. 역시 평양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어서 그런 듯합니다. 평양 부근과 지방의 시장은 차이가 많을 듯한데요.
문성희 지방에서도 한 번 시장 앞까지는 간 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장 안에는 못 들어갔어요. 지방에서는 저와 같은 옷차림을 한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저를 북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고 반드시 통보가 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를 데려가 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것이라고 생각해서 시장 입구까지만 가서 돌아왔습니다. 시장은 넓어 보였습니다. 지붕은 없었고 평양의 시장보다는 좀 난잡한 감도 들었지만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재미있었던 것은 시장에서 장사를 하지 못 하는 할머니들이 길거리에서 계란 등을 판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계란을 농장 등에서 싸게 사서 비싸게 팔고 있었어요. 이런 장사도 성립하는구나 해서 관심을 가졌던 기억이 있어요. 계란은 북한에서는 매우 비쌉니다. 그래서 사고 싶어도 못 사는 사람들도 많아요. 평양 통일거리 시장 근처에서는 이처럼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것은 못 보았지만 지방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자강도 강계에 갔을 때도 버스 안에서 길거리시장을 보았어요. 말 그대로 길거리에 앉아서 세면기 같은 것에 물건을 놓고 팔고 있는 것이에요. 파는 물건은 자기 집에서 만든 빵이나 국수용 면 등도 있었고 담배도 있었습니다.
어째서 평안남도에 시장이 많은 것인가 하는 이유인데 한 번은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지방에서 많은 물건이 장사꾼들에 의해 평양을 향해서 오는데 모든 물건이 평양에 그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평안남도의 시장은 도매시장의 역할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장사꾼들이 물건을 구해서 평양에서 파는 그런 시스템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기자> 시장관리소가 시장 내 매대 장세 (사용료)를 상인들로부터 징수해왔는데 2017년 이후 2배 가까이 올랐다는 분석입니다. 시장을 활성화하면서 수익을 거둬하겠다는 북한 당국의 ‘큰 그림’이 엿보이는군요.
문성희 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통일거리시장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도 그랬는데 모두 시장에 매대를 내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그 당시부터 장세가 비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국가의 부지에 시장을 건설했는데 매상을 기본적으로 매대를 낸 개인이나 단체가 가져간다면 장세 정도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역으로 말한다면 그것으로 북한 당국이 장사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가 장사를 해서 돈을 버는 장사꾼들에게서 돈을 징수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된다면 앞으로 북한은 더더욱 시장화의 길로 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최근들어서 경제난이 가중되자 장세 징수를 놓고 당국과 상인들 간 마찰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상인들로선 생계가 걸린 문제라 저항이 만만치 않았을 듯한데 어떻습니까?
문성희 저의 생각은 장사꾼들로부터는 일정한 장세를 징수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물론 장사꾼들 입장에서 본다면 시장에서 코로나 상황으로 생활이 어려워진 사람들이 시장에 드나들지 않거나 그래서 시장에서 물건이 옛날처럼 잘 안 팔리거나, 국경을 봉쇄하고있기 때문에 제대로 물건이 안 들어오거나 해서 옛날처럼 돈을 벌지 못하는데 장세만 올라가면 '우리도 생활못하겠다,' '장사할 맛이 없어진다'고 하는 그런 하소연도 당연히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기자> 북한에서 상인들이 당국에 공개적으로 저항을 하는 건 흔치는 않을 듯한데요.
문성희 저의 경험으로 말한다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2012년에 북한에 갔을 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길거리시장에 당국이 단속이 들어갔는데 거기서 식료품 등을 사던 사람들이 단속을 비판한 것이에요. "이 사람들도 먹고 살기위해 이렇게 장사를 하는데 조금 봐주면 어떠냐"고 말하면서요. 그렇게 시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항의하니까 단속원들이 그냥 돌아가 버렸다고 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정치에 관해서 그리 의견도 말하지 않고 지도부의 지시를 묵묵히 따라가는 편이지만, 그래도 자기 생활, 생계와 관련한 일에 대해서는 침묵을 하지 않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정우, 에디터 박봉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