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공급 대상인 북 군대도 식량부족 겪는 듯”

0:00 / 0:00

앵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 봅니다. 일본에서 언론인으로 활동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기자> 북한 당국이 농민들에게 농업 생산목표 달성을 촉구하면서 식량 헌납을 독려했습니다. 농민조직인 조선농업근로자동맹(농근맹)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나온 내용인데요, 문 박사님, 북한이 식량 헌납을 부쩍 강조하고 나선 배경, 아무래도 식량부족이 배경일 듯한데요, 어떻습니까?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문성희 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애국미 헌납을 장려하는 움직임이 자주 포착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국가에 쌀 등 곡물이 비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듯 싶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농근맹 회의에서 제기되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노동신문 등을 통해서 애국미를 헌납하는 개인적인 움직임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독려를 해왔는데 농근맹을 통해서 조직적으로 헌납운동을 하자는 것이지요.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할까요? 이제는 개인의 열성만 기대하기 어려운 시점에 와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예로부터 북한에서는 모든 주민들이 굶는다고 해도 군대만은 식량을 넉넉히 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징병제여서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야하지만 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군대에 보내고 싶은 이유중의 하나가 그래도 자식들은 군대에 가면 굶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군대에 애국미를 헌납하는 운동이 장려된다는 것은 군에서도 식량이 부족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혹시 그렇다면 다른 주민들은 더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됩니다. 북한 전체적으로 식량이 모자란 상황을 이것 하나를 보아도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군대에는 비축미가 있었을 것인데 그것이 어찌되었는지, 온 국가적으로 굶었던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군인들에게는 식량이 공급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우선 군인에게 그 다음은 탄광부에게 하는 식으로 쌀을 공급하는 순서도 정해져 있는데 이런 상황을 들으면 걱정이 많이 됩니다.

1.jpg
북한 농부들이 수확한 벼를 나르고 있다. /Reuter

<기자> 그런데 농근맹 부위원장은 보고를 통해 각급 농근맹 조직들에서 군력강화에 이바지하는 여러가지 좋은일하기 운동과 헌납 운동을 활발히 벌여나가자고 강조했다는 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여러가지 좋은일하기'로 규정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문성희 저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일본에서 총련의 조선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당시에도 '좋은 일하기운동'이 학교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청소를 열심히 하자, 공부를 잘 못하는 친구들을 도와주자, 그리고 연말에는 생활이 어려운 재일동포 가족들을 대상으로 연말 모금 운동을 했는데 그것도 좋은 일하기운동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니까 내용은 어떤 것이라도 좋은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군력강화에 이바지하는 여러가지 좋은일하기운동"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을 보니까 군대에 뭔가를 바치는 운동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거기에는 애국미헌납운동도 포함된다고 생각을 하고, 역시 쌀 뿐만 아니라 군대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 경공업품, 약, 다양한 생활필수품 같은 것을 군에 바치는 것이 우선 좋은일하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군대를 위해서 돈을 모은다든지 군대에 필요한 물건을 보내기 위해 공장 등에서 모두가 열심히 일을 해서 물건을 팔아 돈을 모은다든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뭐든 하면 좋은 것이지요. 군대를 찾아서 위로를 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일하기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농민들도 생활이 어렵더라도 군대에 식량이나 물건을 헌납하라는 것이지요.

<기자> 말씀하신 대로 농민들에게 군대에 식량을 헌납하라는 독려인 듯합니다. 군인들에게도 식량이 제대로 배급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봐야겠지요?

문성희 네, 그렇지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북한이 아무리 어려울 때도 군인들에게만은 식량을 우선적으로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고난의행군 시기에도 식량을 잘 배급받지 못해서 농촌에 군인이 도둑질을 하러 왔다는 그런 이야기도 있긴 했습니다.

2003년 평양특파원을 할 때 원산에서 평양으로 돌아오던 도중에 여성 군인 2명을 우리 승용차에 태워주었습니다. 원산에서 자기 부대에 돌아가려고 하는데 버스도 없고 길은 멀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린 군인이었지만 그래도 얼굴 표정이나 몸상태는 괜찮았습니다. 그러니까 굶고 있다는 그런 느낌은 전혀 못 받았지만 보통 같으면 걸어서 돌아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것을 지나가던 승용차를 기다렸다가 얻어 타고 가려고 했다는 것을 보면 아마도 배가 고팠던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듭니다. 당시 그 군인들이 장비도 갖고 있지 않아서 잠시 산보나간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혹시라도 군인들에게도 식량이 제대로 배급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아까도 얘기했듯이 북한의 심각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군 비축미를 방출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반대로 말하면 군이 비축했던 쌀을 일반 주민들에게 나눠 줬다고도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지금은 군에 식량이 부족해서 농근맹 등에서 조직적으로 헌납을 하라고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군인들이 식량이 모자라 농촌에 가서 도둑질을 하거나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측면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미리 군대에 식량을 헌납하도록 독려하는 것이겠지요. 그런 가능성도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2.jpg
중국 단둥과 마주보는 북한 신의주 압록강변에서 군인들이 석탄을 나르고 있다. /AP

<기자> 지난 시간에 군인 건설자들이북한의 대규모 공사에 동원되는 걸 지켜보셨다고 하셨는데요, 군대에서도 식량이 모자라는 상황이라면 이들에 대한 처우도 그리 썩 좋지 않았을 듯합니다.

문성희 원래 북한의 대규모 공사장에 동원되는 군인들은 부대마다 공사장 인근에 천막을 짓고 거기서 숙식을 합니다. 과거에 평양 창광거리에서 한창 고층아파트를 건설할 때는 대동강변에 천막이 줄지어 나란히 세워져 있었습니다. 식사를 어디서 공급하는지는 몰랐지만 거기서 식사도 해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군인 건설자들에게는 시민들이 식량이나 술, 담배 등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재일동포를 비롯한 해외동포들도 공사장 현장을 찾아 노래를 불러주거나 해서 격려해주고 선물도 주고 있었습니다. 그건 희천발전소 공사장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니까 군대에서 식량이 모자라는 상황이라고 해도 군인 건설자들은 오히려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은 해외에서 동포들이 찾아갈 수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국내에서 그렇게 많은 식량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인지, 약간 걱정이 되는 측면이 있어요.

개성에서 여성이 달러를 계산하고 있다 .

/Reuter

<기자> 한편 김정은 정권 들어 미국 달러가 북한에서 원화와 병행해 사용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경향이 강했지만 대북제재와 코로나19 탓에 2020년 가을을 기점으로 북한의 시장에서 달러화 등 외화를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어떤 배경으로 봐야 할까요? 그리고 실제 경험해보신 북한 시장에서 달러나 위안의 통용은 어느 정도였나요?

문성희 달러화 등 외화를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은 국내에서 유통되는 외화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고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달러화에 비해 원화, 그러니까 북한돈의 가치가 많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을 막기 위해 시장 등에서는 외화를 쓰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외화를 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저 자신이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2010년인가 북한에 가서 통일거리 시장에서 물건을 샀는데 예전 같으면 안내원에게 부탁을 해서 외화를 내화로 바꿔놓는데 깜빡했어요. 그래서 외화밖에 없었는데 시장에서 상인에게 물었더니 '외화라도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어요. 생각해보면 상인들 입장에서 본다면 가치가 없는 내화를 받기 보다 외화로 지불해주는 것이 더 좋은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도 시장에서 달러화를 쓰는 것은 금지돼 있었어요. 그런데 거스름 돈은 내화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으로 당시 시세를 알 수 있었어요. 북중 국경에 가면 위안화밖에 안 통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양에서는 위안화는 그리 안 썼어요.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정우, 에디터 박봉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