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주민, 시장에 쌀 있어도 사 먹을 돈 없어 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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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아사자가 나올 정도로 심각한 북한 식량난의 근본 원인은 시장에 식량이 나와 있어도 사 먹을 돈이 없는 주민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북매체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오사카 사무소 대표는 RFA에 대도시를 중심으로 현금이 바닥난 취약 계층이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고 말했는데요. 시장에 쌀이 있어도 코로나 대유행 이후 현금 수입이 급감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김정은 정권으로선 우선 배급 대상을 위한 식량을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것이라며, 식량난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과 시각이 다르다고 꼬집었습니다.

대담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농촌 주민보다 도시 주민이 더 식량난에 취약

  • 이시마루 지로 대표님, 오늘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정보 당국자와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개성시에도 하루에 수십 명씩 아사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습니다. 개성시는 북한에서 제법 잘 사는 도시라는 인식이 있는데, 우선 이 보도 내용을 어떻게 분석하십니까?

[이시마루 지로] 개성시는 북한에서도 주민들의 생활에 신경을 많이 쓰는 지역이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유행한 2020년 1월 이후로 아시아프레스도 개성시에 관한 정보를 거의 접하지 못했습니다. 개성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관해 북한 사람도 잘 모릅니다. (저희 정보원인) 북중 국경 지역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제일 거리가 먼 지역이죠.

개성시에 관해 제 견해를 말씀드리면 , 당연히 (아사자 발생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성시가 잘 산다는 인식을 갖게 된 이유는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한국과 인접한 지역이고, 외국인이 북한을 방문하면 판문점과 함께 꼭 들르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다른 지역보다 좋은 대우를 받았겠죠. 그리고 오랫동안 개성공단을 유지하면서 전기도 주고, 일감도 있고, 인프라도 좋아져서 혜택을 많이 받았던 지역이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 없어지지 않았습니까. 코로나 때문에 힘든 것은 다 똑같으니까 개성도 예외가 아니고, 특별히 봐주던 혜택이 없어지면서 당연히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그 동안 '아시아프레스'가 북한 내부 사회를 취재하면서 식량 상황이 안 좋고, 특히 현금 수입이 많이 줄어서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는 지적을 해오셨습니다. 개성시뿐 아니라 북한의 전반적인 식량 문제를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이시마루 지로] 저는 한국 언론에서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많이 어려워진 것을 단순히 식량 문제로 보는 사례가 많은데, 이에 대해서 위화감을 느낍니다. 식량 문제라고 하면 쌀이나 옥수수가 부족해서 굶는다고 상상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고, ‘왜 식량을 먹지 못하게 됐는가’를 잘 생각해야 됩니다. 지금 북한에서 어려운 사람들은 농촌보다 도시 주민들입니다. 원래 도시는 생산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유통된 쌀과 옥수수를 받아 그걸 먹어야 하는데, 그 식량의 유통과 접근 자체가 안 돼서 어려운 거죠. 제가 계속 말씀드리지만, 도시 사람들이 왜 어려워졌냐 하면 현금 수입이 떨어지면서 쌀을 구매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굶기 시작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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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의 한 식량 배급소에서 밀가루를 배급하는 모습 / AFP

보유한 현금 바닥나고 , 가재도구에 집까지 판 뒤 길거리로

  • 실제로 시장에는 여전히 쌀이 있는데 결국, 이 쌀을 사 먹을 수 없으니까 굶는 사람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건데요. 앞서 말씀하신 현금 수입의 급감과 연결되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그것도 순서가 있습니다. 어려워진 것은 2020년 1월부터입니다. 그때부터 조금씩 중국과 무역이 중단되고, 북한 내에서 장마당과 시장 활동에 대한 제한이 많아지고, 일감이 떨어지면서 현금 수입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저축한 돈이 조금 있었죠. 갖고 있던 돈을 조금씩 쓰면서 쌀을 구매해 생활해 왔습니다. 그런데 저축한 돈이 다 떨어진 사람들은 현금 수입이 없으니까 가재도구를 팔아야 합니다. 그걸로 쌀이나 옥수수를 구매해왔죠. 그것도 다 없어진 사람들은 그 다음에 집을 팝니다. 아니면 돈을 꿔서 생활하죠. 언젠가는 돈을 갚아야 하는데, 갚지 못하는 사람들은 집을 내놔야 합니다. 그렇게 집을 잃은 도시 주민들이 아파트 단지의 창고에 살거나 아니면 주변 사람들과 동거하기도 합니다. 그보다 더 어려워지면 굶기 시작하는 거죠. (코로나 대유행) 3년이 지나고 보니까 그런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 동안 '아시아프레스'에서 조사한 지역에서도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어보셨습니까?

[이시마루 지로] 많이 들었습니다. 굶어 죽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2020년 초여름부터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취약계층 중에서 정말 약한 사람들부터 나타난 거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노인 세대나 돈이 없고 돈벌이를 못 하는 사람들이 쌀을 구매하지 못하면서 병까지 걸리면 바로 죽지 않습니까. 의약품 부족과 현금 수입의 급감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제일 약한 사람들부터 조금씩 굶어 죽게 됐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늘어나기 시작했고요. 이는 매우 비극적인 이야기지만, 지금 북한의 많은 도시에서 일어나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지역에서 그런 소식들을 들으셨나요?

[이시마루 지로] 몇 군데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농촌 지역은 이전부터 힘들었고 지금도 어렵지만, 그래도 굶어 죽는 사람까지는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시 중에서도 조금 규모가 크고, 밭을 만들 땅이 없는 도시들, 인근에 있는 산에 들어가 뙈기밭도 만들 수가 없는 사람들, 그러니까 대도시 중심의 취약 계층부터 죽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양강도 같은 경우는 혜산시, 그 주변의 인구가 비교적 많은 도시, 그 다음에 청진, 회령, 무산, 함흥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평안북도 신의주는 비교적 잘 사는 도시였는데, 신의주에서도 도시 사람들 중에 취약 계층이 굶어 죽고 있다는 정보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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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들이 수확한 벼를 옮기고 있다 / Reuters

김정은 정권 , 식량 유통 독점하려 해… 식량 통치 본격화

  •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북한에서 이달 말에 식량과 농사 문제를 놓고 전원회의를 한다고 하죠. 이를 두고 북한의 식량 상황이 심각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많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사회적으로 식량을 통제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때에 왜 농업에 집중한 회의를 하려 한다고 보십니까?

[이시마루 지로] 이것도 잘 봐야 하는 것이 (북한에서) 식량 문제가 심각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식량 문제를 외부 세계에서 보는 시각과 김정은 정권에서 생각하는 입장은 완전히 다릅니다. 김정은 정권에서 생각하는 식량 문제는 ‘국가 보유 식량’을 말합니다. 군대를 유지하거나 배급으로 운영하는 여러 조직이 있지 않습니까. 보위부, 안전부, 당∙행정 일군, 군수 산업 사람들 등 국가 운영의 기초가 되는 사람들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 보유 식량을 반드시 확보해야 합니다.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식량 문제죠.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기에 식량 문제라고 하면 일반 주민들이 먹는 문제라고만 생각하는데, 이는 정의 자체가 다르다고 봐야 합니다. 김정은 정권의 입장에서는 평양 시민까지 합쳐 몇백만 명을 반드시 먹여 살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 년에 몇백만 톤이 필요하다는 것을 계산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걸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것이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 보는 식량 문제라고 봅니다.

  • 그렇다고 일반 주민의 식량 사정도 무시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시마루 지로] 그 다음에 일반 주민들도 굶어 죽으면 안 되니까 당연히 정권에서 신경 써야 하는데, 지난 3년 동안 코로나 통제를 강하게 하면서 어느 정도 식량을 통제하지 않으면 질서가 문란해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사회가 혼란해지고, 탈북이나 밀수 등이 일어날 수 있지 않습니까.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질서 유지가 중요하고, 질서 유지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식량을 보장해야 한다는 측면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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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조사팀이 지난 2019년 4월, 북한 황해북도 은파군에서 식량 안보 상황을 조사하고 있다. / WFP/James Belgrave
  • 한 전문가는 요즘 북한에서 애국미 헌납 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걸로 봐서 아마 배급 우선순위인 평양 시민이나 군대조차도 식량이 부족한 거 아니냐는 분석을 하기도 했습니다. 끝으로 북한 시장에서 식량 거래 상황은 어떻습니까?

[이시마루 지로] 지금도 시장에서 쌀과 옥수수, 감자 등이 다 거래됩니다. 시장에서는 지금도 유통을 하고요.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값이 올랐다고 하지만, 2월 들어 계속 비슷한 가격입니다. 1월 초순에 조금 올라간 뒤 계속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김정은 정권은 전매제를 도입하려고 한다고 보고 있거든요 .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국가가 식량 거래와 유통을 독점하고, 배급이 아닌 시장 가격보다 싸게 판매하는 구조로써 식량 유통을 독점하려는 의도는 보이는데,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는 시장 거래를 금지할 만큼 국가 보유량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는 지금 2월 중순, 이 시점에 북한의 쌀 보유량이 바닥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당연히 몇 달 뒤, 보릿고개 시기부터 9월까지 약 5개월 정도를 우려해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 있는 걸 다 먹어버리면, 보릿고개 시기에 더 어려워질 수 있으니까 이에 대비해 미리미리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봐야 한다고 봅니다.

  • 네, 대표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 대표와 함께 무엇이 북한 식량난의 근본적인 문제인지 짚어봤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