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올해 밀과 보리농사의 파종 시기를 맞은 북한 함경북도의 한 협동농장이 밀 재배 면적을 지난해보다 10% 더 늘리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김정은 총비서의 지시에 따라 시범적으로 밀 농사를 해보니 앞으로 해볼만 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밀 농사를 위한 조건이나 환경 등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고, 가뭄 등 남아 있는 변수가 많아 올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데요. 최근 북한의 식량난이 악화한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올해 밀 농사가 더 주목받고 있습니다.
노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함경북도 한 농장 , 올해 밀 재배 면적 10% 더 늘리기로
RFA의 의뢰를 받고 일본 ‘아시아프레스’ 취재협조자가 지난 2월 초에 방문한 북한 함경북도의 한 협동농장.
직접 농장을 둘러보고 농장원들과 대화를 나눈 이 취재협조자에 따르면 이 농장은 지난해 김정은 총비서의 지시에 따라 전체 옥수수밭의 20%를 밀 농사로 전환했습니다. 밀∙보리 농사가 잘되는지 시범적으로 해 봤는데, 결과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고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대표는 설명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이런 보고가 있었습니다. (이 농장은) 작년에 옥수수 농사 중에서 20% 정도를 밀∙보리밭으로 전환했는데, 이모작을 크게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정책상 완전히 바꿨다기보다 밀∙보리 농사가 잘되는지 시범적으로 해봤는데요. 그 결과는 역시 실험적인 농사였기 때문에 생산 자체는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농장에서 평가한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첫째는 화학비료를 주면서 계속 옥수수를 심었던 농지와 땅들이 많이 산성화돼서 농사가 잘 안된다는 말을 이전부터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옥수수 외에 다른 작물을 심는 것 자체에서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고요. 둘째는 옥수수에 비해 영농자재가 많이 필요 없다고 합니다. 옥수수를 재배할 경우 영양단지를 먼저 만들어야 하고, 비닐판막과 살충제 등도 필요한데, 밀∙보리 농사를 해보니까 옥수수에 비해 3분의 1 정도만으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결국, 이 농장의 경우 지난해 밀∙보리 농사에서 큰 성과를 얻지 못했지만 앞으로가 기대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따라서 올해는 밀∙보리 농사의 재배 면적을 30%로 올리기로 했다고 이 취재협조자는 전했습니다.

[조선중앙TV] 농작물 배치를 대담하게 바꾸어 벼농사와 밀, 보리농사로 방향 전환을 할 데 대한 구상을 밝히시면서…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2021년 9월, 새로운 농업정책으로 ‘옥수수에서 밀과 보리농사 중심으로의 방향 전환’을 강조한 지 1년이 지났지만, 밀 농사가 괄목할 만큼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농촌진흥청이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2022년도 북한의 곡물생산량은 451만 톤.
이 가운데 밀과 보리는 전년도보다 2만 톤(12.5%) 증가했습니다. 지난해 쌀과 옥수수, 감자, 고구마 등 대부분 작물은 생산량이 모두 감소한 데 반해 밀과 보리만 홀로 성장세를 보인 것은 재배 면적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란 것이 농촌진흥청의 분석입니다.
하지만 김혁 한국 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 선임연구원은 (1월 30일) RFA에 실제 생산성은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김혁] 북한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밀 자체의 알 수가 적고 쭉정이가 많이 보입니다. 밀이 봄에 가뭄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거든요. 기본적으로 밀 수확량이 늘었다고 하지만, 절대적인 수확량이 늘어난 게 아니라 많이 심었기 때문에 올라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생산성에서는 굉장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됩니다.
북한 농업 전문가인 권태진 한국 GS&J 인스티튜트의 북한∙동북아원장도 (1월 31일) RFA에 많이 늘어난 재배 면적만큼 밀 생산은 많지 않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권태진] 실제로 이전과 비교하면 밀 재배 면적을 50% 이상 늘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작년 봄과 여름에 비가 안 와서 가뭄이 들어 생산량은 기대한 만큼 많지 않았습니다. 전년과 비교하면 그저 그런 상태죠. 그래서 아마도 김정은 위원장의 계획이 잘 먹히지 않았다,….
북한도 이같은 결과를 어느 정도 인정한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노동신문은 지난해 11월 10일 “올해 밀 농사 결과를 놓고 경험과 교훈을 똑바로 찾자”는 제목의 기사에서 “모든 것이 부족하고 기상∙기후 조건 또한 예년에 없이 불리한 속에서도 밀 재배면적을 늘리고, 정보당 수확고를 높이기 위한 투쟁을 과감히 벌여 평안남도 덕천시, 숙천군, 함경남도 함주군, 홍원군이 밀 농사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고 자평했지만,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아직 실험적이라고 봅니다. 아까 설명했지만, 우리가 조사한 농장에서는 조건이 안 좋은 밭을 중심으로 밀∙보리 농사로 전환했단 말입니다. 좋은 땅에서는 계속 옥수수 농사를 하죠. 그런데 밀∙보리 농사에서 생산량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영농 자재가 많이 들지 않아 기대가 된다는 결과였다고 하니까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올해 밀 농사 '우려와 기대' 속… 품질 개선도 도전 과제
북한은 올해도 밀 농사로 전환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1월 21일, “당에서 벼와 밀 농사 위주의 알곡 생산구조로 전환할데 대한 대담한 조치를 취해 밀 생산량을 절대적으로 늘리는 것은 인민 생활을 안정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고 보도하면서 밀 생산량 증대를 거듭 독려했습니다.
북한 농업 전문가들도 밀 농사를 계속 확대하라는 김 총비서의 지시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평가합니다. 이모작을 통해 재배 면적을 늘릴 수 있고, 생산 증대를 통해 밀의 수입을 대체하는 효과도 있는 데다 가공식품 산업의 활성화도 기대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혁] 미래 지향적으로 볼 때 밀 생산으로 가는 것이 맞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밀 생산 같은 경우 가뭄도 가뭄이지만, 토질이 나쁜 상황에서 옥수수는 토질의 영양분을 많이 필요로 하는데, 밀 같은 경우에는 토질의 영향을 덜 받거든요. 두 번째는 기후 변화 때문에 이모작이 가능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모작에 관련된 내용들을 판단해서 점진적으로 끌고 나갈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올해 북한의 밀 농사가 기대한 만큼 성과를 내줄지는 미지수입니다.
그 동안 북한이 밀 종자를 충분히 구했는지, 올해는 비가 적절하게 내려줄 지 등 변수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또 밀∙보리 등 이모작은 비료와 기계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짧은 기간 내에 생산량 증가가 어렵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려면 앞으로 몇 년 더 걸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특히 주요 농업 대단지의 경우 갑작스럽게 밀 농사로 전환할 때는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질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물론 앞서 언급한 함경북도의 한 농장처럼 올해 밀 농사를 기대하는 점도 있습니다.
[권태진] 작년에 좀 생산량이 좀 나빴던 것은 밀 종자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거든요 . 그렇기 때문에 밀 종자를 구하는 어려움과 봄 가뭄, 이 두 가지가 올해는 다 해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올해는 밀 재배 면적이 늘어난 만큼 생산량도 늘지 않겠는가라고 보는데, 아직은 밀 재배 면적이 기대하는 만큼 많이 늘지 않았습니다.
또 북한은 밀의 생산량만 늘릴 것이 아니라 품질 개선도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북한 농업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가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밀∙보리를 많이 심어라’, ‘이모작을 하자’고 해서 효과가 있다 해도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역시 구조적인 문제를 손대지 않으면 북한 농업이라는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북한이 평양 시민과 군대 등 배급 우선순위에도 식량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할 만큼 상황이 어려운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올해 밀 농사는 기대와 우려 속에 또다시 시험대에 오를 전망입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