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이 최근 러시아 단체 관광객과 일부 외교 관리의 방북을 허용했지만, 국제기구는 물론 대북 인도적 지원 단체들의 활동은 여전히 제한하고 있습니다.
특히 민간 단체들은 북한 주민의 인도적 상황이 심각한 상황이지만, 대북 지원 사업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는데요. 이들 단체는 북한이 국경을 개방하는 대로 활동을 재개할 예정이지만, 그 시기와 규모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서혜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활동 중단한 대북 민간 단체들 " 여전히 대기 상태 "
1997년부터 대북 지원 사업을 펼쳐온 독일의 구호단체 ‘세계기아원조’(Deutsche Welthungerhilfe).
이 단체는 코로나 대유행 이전 북한에 상주 직원을 두고 각종 인도적 지원 사업을 해왔지만, 2020년 북한의 코로나 방역 조치로 활동이 크게 위축되면서 평양을 떠나야 했습니다.
‘세계기아원조’의 베티나 뵤트너 대외언론 담당자는 최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세계기아원조는 여전히 ‘대기 상태’(standby mode)에 있다”라며 “현재 대북 지원 사업은 중단됐고, 북한에 상주하던 직원도 여전히 돌아가지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여전히 북한에서 민간 단체(NGO)로 등록돼 있지만, 진행 중인 활동은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럼에도 다시 상황이 허용됐을 때 유엔과 긴밀히 접촉해 사업을 재개할 준비가 돼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익명을 요청한 또 다른 대북 지원 단체도 과거 진행했던 사업이 모두 중단된 상태라며 북한 측과 소통하고 있지만, 북한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단체도 상황이 허락되는 대로 활동을 재개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지만, 그 시기가 언제가 될 지는 불투명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대북제재를 관할하는 유엔 대북제재위원회(1718 위원회)는 코로나 기간에도 유엔 기구와 민간 단체들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에 대한 제재를 계속 면제해왔습니다.
하지만 2020년부터 북한이 국경을 봉쇄하면서 민간 단체들이 지원하는 농산물이나 의약품, 의료기기 등 제재 면제 품목들이 북한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같은 답답함을 호소하는 곳은 민간 단체 뿐만이 아닙니다.
1995년부터 평양에 개발협력청 사무소를 두고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을 펼쳐 온 스위스는 올해 유일하게 유엔을 통한 대북 지원금 사용 계획을 밝힌 국가입니다.
다만 피에르 알랭 엘팅거 스위스 외교부 대변인은 최근 RFA에 “2020년 북한의 국경 봉쇄로 인해 스위스 산하 인도적지원기구인 ‘스위스개발협력청’(Swiss Agency for Development and Cooperation)이 대북 인도적 활동을 일시 중단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스위스 외교부 역시 “조건이 허락된다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 활동 재개해도 이전처럼 사업 진행 어려워 "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을 해온 민간 단체와 국가들은 활동 재개 여부가 북한의 국경 개방 여부에 달렸다고 입을 모읍니다.
북한 취약계층 아동에 대한 식량 지원 활동을 해온 핀란드의 비영리단체 ‘핀 처치 에이드’(Finn Church Aid⋅FCA)는 지난 2020년 6월, 황해북도의 두 개 군에 위치한 초등학생들의 식량 지원과 관련한 물품 반입에 대해 제재 면제 기간을 연장받았습니다.
또 취약 아동과 가족을 대상으로 재난 위험 및 비상 교육 활동을 실시하는 것에 대해서도 제재 면제 허가를 받았지만, 끝내 북한을 방문하지 못한 채 지난 13일 유효기간이 만료됐습니다.
핀 처치 에이드의 에릭 니스트롬 대외언론 책임자는 RFA에 “유엔을 비롯해 우리 단체도 접근이 제한돼 있다”라며 “이는 북한의 국경이 닫혀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니스트롬 대외언론 책임자는 현재 북한의 인도적 상황이 여전히 심각하다고 평가하면서 “미래에 방북이 가능해진다면, 지원 사업을 시행하기 전에 북한에 대한 인도적 평가를 갱신하는 것에 대한 허가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대북 지원 활동이 오랜 기간 중단됐기 때문에 만약 인도적 지원이 가능해져도 당장 코로나 대유행 이전처럼 사업을 진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뜻으로 풀이됩니다.
앞서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과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도 지난 23일 RFA에 2020년 북한 당국의 국경 봉쇄 조치 이후 여전히 국제 직원들이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 이들이 북한으로 복귀하는 시기가 늦어지면서 국제사회의 기부금도 급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올해 대북 사업을 축소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탈북민 출신 북한 농업 전문가인 조충희 굿파머스 연구소장은 지난해 12월 RFA에 올해 북한 주민들의 식량 사정은 나아지기 어렵다고 전망한 바 있습니다.
[ 조충희 ] 신년은 기후가 안 좋아지고 , 특히 현재 겨울이 추워서 가을에 파종한 밀보리 상태가 안 좋아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 새로운 변화가 있지 않으면 계속 ( 식량 ) 부족 상태로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또 한국 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의 김혁 선임연구원도 “북한 주민을 위한 공급보다 국가 보유 식량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다”며, 북한 시장으로 유출되는 곡물을 북한 당국이 통제하면서 쌀 가격이 상승한다면 일반 주민들이 생활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처럼 올해도 북한의 식량난이 예상되는 가운데 북한 당국이 여전히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북한 주민의 인도적 상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이 최근 4년 만에 처음으로 러시아 단체 관광객들의 입국을 허용하고, 독일 외교관리의 방북을 승인하는 등 일부 인사들에 대한 국경 봉쇄를 완화하고 있지만, 대북 지원 단체들의 방북과 활동이 언제쯤 재개될 지는 미지수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서혜준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