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비료 ∙농기계 태부족…올 농사 전망도 ‘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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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이 오는 5월 파종을 앞두고 전국에서 영양단지를 만들어 모종을 키우거나 비료 주기, 객토 등 농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모습입니다. 조직적으로 대규모 인력을 동원하면서 김정은 총비서의 지시에 따라 '농사 제일주의' 분위기를 띄우고 있지만, 협동농장에는 올해도 비료, 비닐박막, 농기계 등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 유가, 비료값, 곡물가까지 폭등하면서 올해 농사 전망도 암울하다는 푸념이 나오고 있는데요. 작년보다 생산량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습니다.

북한의 농사 준비 현황을 노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비료 , 비닐박막, 농기계, 연료… "인력 외 있는 게 없다"

“영농자재는 작년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비료는 국가공급량의 20%도 못 받았다고 한다”

“비료, 비닐박막, 뜨락또르 부속이 제일 부족하고, 휘발유와 디젤유도 많이 부족하다.”

“올해는 정보당 추가로 1톤 이상 생산하자는 것이 목표지만, 다들 올해 농사도 어려울 거라고 한다.”

북한에서 지난달부터 본격적인 농사 준비가 시작된 가운데 북한 함경북도 주민이 전한 협동농장의 실상입니다.

RFA가 일본의 대북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를 통해 접촉한 이 북한 주민은 휴대전화 문자를 통해 비료를 비롯한 비닐박막, 기계 부속품, 농기구 등의 심각한 부족 현상을 전했습니다.

특히 비료의 경우 중국산은 아예 공급되지 않았고 국내산 비료로만 충당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전체 필요량의 20%밖에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는 게 협동농장 간부들의 말입니다.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 대표는 (4월 6일) RFA에 이마저도 농장까지 운송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할당된 비료 중 일부를 되팔아야 할 정도라고 전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비료 공장에서 농장으로 수송하자면 일단 국가 지원으로 별도 요금 없이 열차로 농장 가까이까지는 보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철도역에서 농장까지 수송 방법이 없는 거죠. 그래서 해당 농장들은 수송료로 휘발유나 디젤유값을 내야 하니까 할당된 비료 중에서 일부를 팔아야 한답니다. 그러면 필요량의 15%밖에 준비하지 못할 거라고 농장에서 예측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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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김태이

이 함경북도 주민은 이어 망가진 부속품 때문에 농장마다 작동하지 않는 농기계가 너무 많은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덧붙였습니다. 코로나로 북중 국경이 봉쇄되면서 농기계 부속품이 들어오지 않은 지도 오래됐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현재 북한에서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대규모 농촌 동원이 진행 중입니다.

‘아시아프레스’의 따르면 함경북도 당국은 무산 광산의 노동자 중에서 ‘농촌돌격대’를 만들고 20~30명으로 구성된 ‘농촌지원대’를 조직해 해당 농장에 배치했습니다.

또 동원된 사람들을 위한 식사나 필요 물품을 지원하는 조직도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광산 노동자는 “노동자 전부를 농장원으로 만들려는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북한 농업 전문가인 권태진 한국 GS&J 인스티튜트 북한동북아원장은 (4월 6일) RFA에 대규모 농촌 동원은 올해 김정은 총비서가 농업 문제를 언급하면서 약속했던 인력 지원을 실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기본적인 농자재와 농기계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같은 동원은 비효율적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권태진] 인력이라고 하는 것은 뻔합니다. 북한 전체 인구의 1/3이 농업 쪽이니까 농사철에는 항상 인력이 부족하거든요. 하지만 지원하려면 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농기계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하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아무리 지원해 봤자 어림도 없는 거고, 농기계 부품이나 연료를 공급해 줘야 하는데 그 부분은 사실은 되기가 어려운 거죠.

이와 관련해 이시마루 대표는 코로나 국면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김정은 정권이 대규모 동원이라는 수단을 이용해 북한 사회의 질서 유지에 주력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북한의 모든 분야에서 비상사태가 됐는데, 김정은 정권은 사회 질서가 약해지는 것을 방지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농사 제일주의' 구호를 크게 외치면서 동원에 주력하고 있고, 부족한 부분도 노력으로 넘어가자는 식인데, 이것은 합리성보다는 농기계, 기름, 비료 등 영농자재가 부족한 상황을 사람들을 동원해 넘어가자는 옛날 동원경제 방식입니다. 이같은 현상이 작년보다 올해 훨씬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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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사태 변수, 작년보다 생산량 떨어질 수도”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지만 북한 당국은 올해 농업생산을 더 높여 잡은 상태입니다.

함경북도 협동농장의 경우 올해 목표가 정보 당 1톤 이상 더 생산하는 겁니다.

보통 논밭에서는 정보당 3~4톤, 옥수수의 경우 약 6~7톤 정도 거둬들이는데, 여기에서 1톤씩 더 늘려 생산하자는 겁니다.

하지만 협동농장에서는 비료와 각종 농자재, 연료 부족 상황 탓에 벌써부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국제 비료, 연유, 곡물값까지 폭등하면서 올해 북한의 농업 생산량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더 커졌습니다.

권태진 원장은 1톤씩 생산량을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작년보다 수확량이 더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권태진]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에 이미 비료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또 북한이 자체적으로 비료를 생산한다고 해도 원료 확보가 쉽지 않습니다. 또 에너지 가격이 많이 올랐잖아요. 북한은 유류 수입의 한도가 정해져 있는 데다 가격도 많이 올랐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올해 가장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김정은 정권이 농촌 지원을 해주겠다고 말은 하지만, 지원할 만한 여유가 있지 않거든요. 그래서 약속한 만큼 지원이 안 되면 1톤을 더 생산하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생산량이 떨어질 가능성이 더 큽니다.

만약 올해 북한의 곡물 생산량이 예년보다 감소하면 수입량은 더 늘어야 하는데, 이미 국제 곡물가가 폭등한 상황이고 앞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란 암울한 전망도 나옵니다.

김영훈 한국 농촌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도 (3월 11일) RFA에 올해 발생한 우크라이나 사태가 김정은 정권의 새로운 농업 정책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김영훈] 현재 새로 발생한 것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 아닙니까. 이 때문에 국제 곡물 가격이 상승 국면에 있고, 러시아에서 수출하는 천연가스 등 에너지 부족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도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조만간 북한에 영향을 미칠 경우에는 지금도 사실 엄중한 상황이지만, 앞으로 북한의 농업 생산이나 식량 수급에 있어서 어려움이 가중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홍수나 가뭄 등 자연재해와 병충해까지 겹친다면 올해 농업 생산량에 더 치명적일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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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월 12일에 열리는 연례 모내기 행사에서 북한 주민들이 모를 심고 있다. / AFP (KIM WON JIN/AFP)

현재 북한의 협동농장에서는 5월 파종을 앞두고 영양단지를 만들어 모종을 키우는 동시에 논과 밭 등에 비료를 주거나 객토, 즉 새로운 흙을 보충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양단지를 위해서는 비닐박막이 필수적이고 파종 전에 충분한 비료를 주는 것이 올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것 투성입니다.

이는 지방의 협동농장뿐 아니라 황해도의 곡창지대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지적입니다.

[권태진] 인력만 공급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올해 북한이 예년보다 농사를 잘 짓는다는 보장은 하나도 없습니다.

북한 당국이 농업 우선주의를 앞세워 생산량 증대를 꾀하고 경제회복과 인민들의 삶의 질 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협동농장에서 들려오는 소식과 전문가들의 전망은 ‘예년보다 나아질 것이 없다’ 입니다.

턱없이 부족한 필수 비료와 농자재,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원자재값의 폭등 등 국내외 어려움 속에서 김정은 정권의 새로운 농업정책이 성패의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