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농업 인센티브 도입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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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 분야를 중심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봅니다. 일본에서 언론인으로 활동 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 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해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과학 농사 큰 진전 없어… 포전담당제 때가 생산량 더 많아”

[기자] 박사님. 북한이 계속 ‘과학 영농’과 함께 과학을 중시하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과거에는 북한에서 과학자나 기술자가 사회적, 경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계층이 아니었다고 하는데요.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웠고요. 박사님께서 북한을 오가실 당시 북한 과학자들의 경제생활은 어땠습니까?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문성희]네. 제가 아는 한 대학교수는 그렇게 잘 사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대학교수는 장사를 못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 사회주의의 좋은 점을 가르치는데, 그런 사람이 자기 이익을 위해 부를 늘릴 생각을 하면 되겠는가”라는 게 이유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교육상 좋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대학교수나 교원들의 임금은 많지 않고, 군대나 당일꾼에 비해 배급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대학교수들의 생활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학교수라는 장점을 살려서 과외 같은 것을 하는 분도 계시겠지요. 그런데 이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과외를 한다고 해도 몰래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북한에서는 옛날부터 과학자들의 대우가 그렇게 좋지 못했습니다.

다만 , 미사일이나 핵 개발을 하는 과학자들 경우는 다르다고 봅니다. 북한에 과학원이 있는데 군사적인 연구를 하는 사람 중에는 이과대학을 나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과대학에 보내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역시 지금 북한에서 가장 출세할 수 있고, 국가적 사업이니까 최고영도자의 눈에도 띄고, 이런저런 좋은 점이 있기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지금은 핵무력뿐 아니라 농업에서도 과학을 중시하기 때문에 농업연구원의 연구자나 과학자들에 대한 대우가 한층 달라졌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들의 생활 수준이 여러 가지 면에서 충분히 보장될 것으로 보시나요?

[문성희] 앞서 말씀드린 제가 아는 대학교수는 나중에 미래과학자거리로 이사를 갔다고 합니다 . 농업연구자는 아니지만 공학 계통의 연구를 하는 교수입니다. 그전에는 평양 중구역이기는 하지만, 방이 비좁은 낡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최신 고층 고급아파트로 이사를 갔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과학자거리가 완공했을 당시는 북한에서 과학자들에 대한 대우가 많이 좋아졌을 시기입니다. 그것 자체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고급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고 해서 생활이 좋아졌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반 과학자들에게 배급 등의 혜택이 돌아간다고 생각하기 어렵고, 과학자들의 임금도 올라갔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에 역시 생활 자체는 자력갱생으로 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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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가 자라고 있는 북한 황해북도 황주군 용촌리의 논이 가뭄 때문에 심하게 갈라져 있다. / AP (Kim Kwang Hyon/AP)

[기자] 그런데미국내경제전문가중에는 “북한이 농업 생산력을 회복하고 생산량을 늘리거나 전반적인 번영을 되찾는 것이 과학적 발전이나 기술적 진보에 기반한다고는 생각치 않는다”고 말합니다. 과학 발전보다는 오히려 물질적인 보상(인센티브)을 보장해 생산성을 늘리도록 동기부여를 하고, 더 나은 농자재 등을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성희] . 저도 그 의견에 동감합니다. 농업의 과학적 발전이나 기술적 진보라는 것은 어제오늘 나온 이야기가 아닙니다. 적어도 제가 2003년에 평양특파원을 할 당시에도 농업과학원 연구자들이 열심히 연구를 하고 있었고, 그전에도 백설희라는 '공화국영웅'이 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14년에 걸쳐 알이 많은 벼 이삭을 개발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농업과학자들이 연구를 안 해 온 것은 아니지요. 그렇지만 비료와 농기계가 부족하고, 농기계가 있다고 해도 에너지가 모자라고, 그 외에 여러 가지 악조건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결국, 과학 농사에서 큰 진전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포전담당제를 실시했을 때 농업 생산량이 올라갔습니다. 농민들에게 남은 농산물의 처분권을 줬고, 그것도 국가가 현금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현물을 그대로 처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시장에서 팔고 돈벌이를 하는 농민들이 적지 않게 생겼다고 합니다. 모은 돈으로 휴대전화나 가전제품 등을 사는 농민들까지 생겼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기자] 북한은 투자한 만큼 결과를 중시하는 국가인데요. 예를 들어 농업 과학자들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눈에 띄는 농산물 증가로 이어지지 않으면 과학자들에게 무거운 책임이 뒤따르지 않을까요? 농업연구원을 취재하셨을 당시, 과학자들 사이에서 이점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지 못하셨나요?

[문성희] 네. 말씀하신 것처럼 북한은 투자한 것에 대해 성과가 없으면 책임을 추궁해 왔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백설희 영웅이 이루어 낸 성과도 나중에는 잘 안 되었고, 그 후에 백설희 씨가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또 이런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일일이 따질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도 사람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아무리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고 해서 곧바로 처벌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사람들이 위축돼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2003년에 제가 취재한 농업연구원의 과학자들도 저에게 별로 그런 걱정을 노출하지 않았고, 조선신보를 보니까 그 뒤에도 제가 취재한 농업연구원 관계자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경제 관리들이 실패를 이유로 처벌받는 경우도 있지요. 가장 큰 사건은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당시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박남기 씨가 숙청당한 것입니다. 이때는 경제적인 혼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에 북한 지도부로서도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을 볼 때 적극적으로 개혁조치를 취하려 하지 않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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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개성의 한 농장에서 가을철에 수확한 옥수수가 길가에 쌓여 있다. / AP (David Guttenfelder/AP)

“쌀∙옥수수 진열 판매 금지는 식량 확보 노림수”

[기자] 한 가지만 더 살펴보겠습니다. 일본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북한 시장에서 쌀과 옥수수에 대한 진열 판매가 금지됐다고 합니다. 장사꾼들의 집에서 몰래 파는 상황이라고 하는데요. 물론 양곡판매소에서는 판매하고요.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정책 변화라 할 수 있는데, 어떤 메시지가 있다고 보십니까?

[문성희] 옥수수는 몰라도 쌀에 관해서는 2005년 당시에도 양곡전매제를 시행한 뒤에 시장에서 못 팔게 했습니다. 제가 2011년쯤 북한에 갔을 때 시장에 들렀는데, 당시 쌀 판매는 금지돼 있었지만, 제가 쌀을 사고 싶다고 하면 "팔아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정책 변화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북한에서는 곡물 등을 농민 시장에서 파는 것이 금지됐지만, 2002년부터 실시한 경제개혁에 따라 시장에서 곡물 판매가 허락되었습니다. 쌀 시장가격을 낮출 목적이 있었죠. 하지만 그것이 잘 안됐기 때문에 국가가 통제하게 됐고, 지금까지도 그런 방식을 여러 번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평양은 몰라도 지방에서는 배급 자체가 없어진 지 오래됐기 때문에 사람들은 시장에서 쌀을 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005년에 양곡전매제가 시행됐지만 결국, 쌀 가격은 낮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시장에서 파는 것을 허락했지요. 저의 2011년 경험이 말해주듯이 시장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은 단속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 쌀이나 옥수수가 배급을 못 할 정도로 모자란다면 나라에서는 그것을 어떻게든 통제하려고 하겠지요. 지난 시기에는 가격조정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시장에 흘러 들어가 국가에 바쳐지지 않는 쌀을 어떻게든 회수하기 위해 그런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되는데, 그래도 집에서 몰래 쌀을 파는 장사꾼들이 있는 이상 쌀을 회수하려는 국가의 목적은 잘 달성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자] 네.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지금까지 언론인이자 학자인 문성희 박사와 함께했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