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인도적 위기상황 감추려 미국의 지원 제안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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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 봅니다. 일본에서 북한 전문 언론인으로 활동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기자> 북한을 둘러싼 국내외적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올 한 해 북한의 경제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문 박사님, 먼저 현재 북한이 처한 상황, 어느 정도나 심각한지 짚어볼까요?

문성희 네, 올해 북한경제는 이른바 '퍼펙트 스톰'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하는 경제 전문가도 있을 정도입니다. 모든 경제적 악재들이 동시에 발현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북한은 오랫동안 경제 제재를 받아왔습니다. 제재만이라면 아직 버틸 수 있어도 2020년부터는 코로나비루스를 막기 위한 국경봉쇄로 외부에서 물자가 안 들어오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지요. 그리고 올 2월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러시아와 북한간 경제관계 역시 거의 단절상태에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도 코로나 확산으로 인한 도시 봉쇄 등이 계속되면서 여러모로 경제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어서 지금은 북한에 대한 지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곡물가격 등이 폭등하고 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오르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북한의 대외 무역에도 영향이 있겠지요. 북한이 곡물을 수입하고 싶어도 가격이 비싸면 다른 해보다 수입량이 적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일본에서도 생필품이나 식료품 등의 가격이 많이 올랐는데 북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그리고 올 봄에는 북한에서도 코로나 감염자가 발생했기 때문에 농촌 지원 등에 지장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북한의 경제 상황이 어렵다는 것은 이런 악재가 존재하는 이상 당연히 추측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상황을 외부에서 쉽게 파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국경봉쇄가 아직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혹 기근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북한이 발표하지 않는 이상 확인할 방도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국제적인 관심도 없어지지요. 북한내에서 혹 심각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외부에서 지원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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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들이 신의주에서 수입 밀가루를 배급하고 있다. /REUTERS

<기자> 북한이 조만간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에 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인데요?

문성희 식량 부족으로 인한 기근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선은 북한 당국이 군량미를 풀겠지요. 몇 년 전에도 김정은 총비서의 지시로 군량미를 풀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군량미를 푼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유사시를 위해 비축하는 쌀도 있겠지요. 만약 북한 당국이 이런 비상 조치를 취한다면 그 때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에 처했다고 외부에서 판단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아직 그런 상황까지는 안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상황이 이렇게 어렵지만 북한 외무성은 대북지원 의사를 밝힌 미국을 향해 강한 어조로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요, 아직은 여유가 있다는 의미로 봐야 할까요?

문성희 네 그렇다고 봅니다. 아직은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다만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도주의적 위기가 있다고 한들 미국의 지원은 절대 받지 않겠다,' 뭐 그렇게 북한 지도부가 결심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북한 외무성은 미국이 인도적 지원 의사를 밝히면서 동시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 추가 제재를 추진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인도적 지원을 말하기 전에 북한에 대한 적대시정책부터 철회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북미 간 대화가 이뤄지고 있었을 때 미국이 쌀 50만 톤을 북한에 지원하는 대가로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시험을 동결하는 데 합의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동시행동의 방법으로 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미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은 미국이 북한의 핵 포기를 위한 대화만 요구하면서 인도주의적 지원을 말하는 것은 뭔가 다른 의도가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거지요. 그리고 북한에 인도주의적 위기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은 측면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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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평천구역에서 봉사대원들이 격리된 주민들에게 식량, 남새(채소), 땔감을 비롯한 물품들을 공급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자> 북한이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나 러시아로부터 도움을 바라고 있는 건가요?

문성희 그런 측면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는 유엔 결의에 반대한 5개 나라 중 하나입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국이나 유럽 나라들과의 관계가 악화된 러시아와 대만 문제로 미국과의 관계가 미묘한 중국의 편을 들고 있는 것을 과시하고 있는 것을 봐도 이 두 대국의 도움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북한을 도와줄 수 있는 나라는 이념이 가까운 러시아와 중국뿐이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북한이 도움을 청하고 싶어도 러시아와 중국은 국내 문제로 바쁘고 더군다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적인 제재를 받고 있고 그 영향으로 국내 경제에 큰 타격을 받고 있기 때문에 북한을 도울 여력은 없다고 봅니다. 평양주재 러시아 대사관 직원들도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당국과 제대로 논의를 하기도 어렵습니다. 중국도 코로나 감염자 확산 등 국내문제를 처리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역시 북한을 지원할 여력이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다만 중국은 북한에서 불미스러운 사태가 일어나면 그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에 비해 북한을 지원할 가능성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그렇지만 북한이 이런 태도를 고집한다면 자칫 외부의 지원도 차단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데요, ‘침묵의 기근’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네요.

문성희 네, 북한에서 기근 등이 있다고 한들 국제 사회가 그것을 알 수 없으면 아무리 도와주고 싶다고 해도 도와줄 수 없지요. 제가 1996년에 수해 등으로 기근이 일어났을 때 마침 평양특파원으로 수해 지역을 취재했습니다. 그 기사가 나오자 마자 일본에서 동포들이나 NGO (민간단체) 등이 지원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도 많은 지원이 있었습니다. 역시 북한이 어려운 사정을 외부에 솔직하게 이야기했기 때문에 지원이 이뤄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북한이 상황이 어렵다면 그 어려운 상황을 솔직히 말해서, NGO나 유엔기구 등의 지원을 적극 받아들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결국 기근이 일어나서 희생되는 것은 북한 주민들이니까요.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정우, 에디터 박봉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