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의 날 특집] “내가 꿈꿨던 여군과 너무 달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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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북한 군사력에서 여군들이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이 작지 않습니다. 최근 북한 당국이 고급중학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장군님의 군대가 되라'며 병력을 모집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여학생들도 지원하고 있지만, 이들이 감당해야 할 복무 환경과 인권 실태는 매우 열악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입대가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던 여군 출신 탈북민들조차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절대 입대를 선택하지 않겠다”며 고개를 젓는데요.

[세계여성의 날] 맞아 천소람 기자가 이들의 소회를 들어봤습니다.

“열악한 복무 환경에 강제 노동까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7살부터 27살까지, 약 10년 동안 북한에서 여군 장교로 복무한 탈북민 김단금( 비단금TV) 씨.

어린 시절 그의 눈에 여군들의 모습은 멋있기만 했다고 지난 7일, RFA 자유아시아방송에 말했습니다.

[김단금] 우리 집 앞에 사단 지휘부가 있었어요. 여군들이 군복을 입고 지나가는 게 너무 예쁜 거예요. 그래서 매일 보면서 ‘군대에 가야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김 씨가 군인의 길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북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였습니다. 부모가 당원이 아니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군복을 입은 자신의 멋진 모습을 상상했던 것과 달리 김 씨가 경험한 군대의 현실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김단금] 군대에 가면 나의 처녀 시절이라는 것 자체를 생각하면 안 돼요. 멋 부릴 시간도 없고, 하전사(초급 병사) 생활할 때는 (멋 부릴) 생각조차 못 해요. 또 평양 날씨가 엄청 춥거든요. 칼바람이 부는 속에서 근무하고, 얼음 구멍을 까서 머리를 감고, 빨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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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시간에 개인 정비와 식사 준비를 하는 북한 여군들. 보급품 부족으로 개인 위생용품을 직접 세탁해 재사용하고 있다. / 사진 캡처 – 은하별 TV

평양에서 군 복무를 했지만, 식사는 염장무와 염장 배추뿐이었습니다. 심지어 기본적인 위생용품도 제공받지 못했습니다.

[김단금] 배도 고팠어요. 주는 양이 성에 차지도 않고, 밥이라는 게 밥 한 그릇과 배춧국, 염장무에 염장 배추가 다였어요. 그리고 생리대도 안 줘요. 여자들에게 가재천을 1m씩 주거든요. 그걸 사등분해서 사용하고 빨아 쓰면서 지냈죠. 군관이어도 우리 때는 생리대가 없었어요.

북중 국경 지역을 돌며 북한 주민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던 강동완 한국 동아대학교 교수도 추운 겨울철 북한 여군들이 강가에서 빨래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강동완] 한겨울에 압록강 변에 나와 물을 길으러 가는 북한 군인들도 볼 수 있었고요. 일반 북한 주민들도 영하 30도가 넘는 날씨에 압록강 물에서 빨래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요. 군인들이라고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남자 군인이나 여자 군인이나 다 같이 빨래 더미를 들고나와 빨래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고, 심지어 한 겨울에 얼음을 깨고 물을 길어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또 무더운 여름철에는 여군들이 농촌과 건설 현장 등에 동원됩니다.

인터넷 동영상 공유 웹사이트인 '유튜브'에 소개된 영상( 은하별TV)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군들이 바위나 흙더미를 등에 짊어지거나, 사람 키보다 높은 돌기둥을 어깨에 메고 운반하기도 합니다.

북한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중사로 전역한 탈북민 손나정 씨도 최근 RFA 자유아시아방송에 상반기 훈련을 마친 북한 군인들이 농사나 건설 현장에 투입된다며 아무리 힘든 작업에도 남녀 구분이 없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손나정] 북한은 사람이 다 날라야 하거든요. 돌은 끈으로 해서 메는 것이 더 빠르고, 들것으로 돌을 나르는 것도 많이 해봤습니다. 군에 입대하면 남녀가 없습니다. 군인만 존재할 뿐이죠. 무조건 남자든, 여자든 해야 하는 일인데요. 여자들이라도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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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에 건설 현장에서 작업 중인 북한 여군들 / 은하별 TV 캡처

여군 복무기간 5년… 면회, 외출도 없어

북한에서 여군들의 복무 기간은 5년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1일,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의 주민 소식통에 따르면 본격적인 초모절을 맞아 북한 각 지역에서 고급중학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군대에 나갈 것을 강요하는 여러 행사와 모임이 진행됐습니다.

이 소식통은 군사동원부(신병모집 기관)가 대학추천을 받은 학생을 제외한 졸업반 남학생 전체와 초모생 명단에 이름이 오른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예비 담화를 했으며, 학교 청년동맹에서는 졸업생 모임에서 “모두가 장군님의 군대가 되자’는 내용의 해설 담화를 진행했다고 이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여군들의 경우 5년간의 군 복무 기간 면회나 외출, 휴가 등을 주지 않고, 부모들은 열악한 군 복무 생활 가운데 자녀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알 수 없는 실정입니다. 또 군대에서 상급자에 의해 공공연히 이뤄지는 성범죄에도 무방비로 노출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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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n soldiers parade to mark the 60th anniversary of the signing of a truce in the 1950-1953 Korean War in Pyongyang 2013년 7월 27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한국전쟁 휴전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북한 여군들이 행진하고 있다. / Reuters (Jason Lee/REUTERS)

강동완 교수가 북중 국경에서 바라본 여군들의 모습도 어쩌면 아직 10대에 불과한 소녀들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강동완] 국경에서 바라보는 북한 군인들의 모습은 대부분 굉장히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북한 군인들의 평균 신장이 아주 작다고 얘기를 하는데요. 북한 여군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신체가 굉장히 왜소하고, 주로 압록강 변 혹은 텃밭에서 일을 하는 모습이기 때문에 우리가 상상하는 북한 군인들의 모습과는 좀 다른 모습이죠.

10대의 나이에 입대한 김단금 씨에게도 첫 2년간 군 복무는 참 힘든 시기였습니다. 본인의 선택으로 간 군대였지만, 군대 생활은 결코 녹록지 않았고, 최고 지도자의 신년사와 10대 원칙 등을 암기하기 위해 밤을 새우기 일쑤였습니다.

[김단금] 남한테 지지 않으려고 신년사, 10대 원칙도 암기하고 통달하고 그래요. 밤새도록 안 자고 암송하고, 훈련도 열심히 하고 남보다 어쨌든 더 잘해야 됐어요. 전사 때 사격을 잘해서 1년 만에 표창 휴가를 갔어요. 일반 군인들은 못 가죠. 휴가 없어요. 특별하게 훈련을 잘해서 표창 휴가를 받아야 집에 갈 수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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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diers stand in front of the podium with portraits of North Korea founder Kim Il-sung and the late leader Kim Jong-il after a military parade to celebrate the centenary of the birth of Kim Il-sung in Pyongyang 2012년 4월 15일, 평양에서 열린 김일성 탄생 100주년 열병식 후 군인들이 김일성(왼쪽)과 김정일(오른쪽)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연단 앞에 서 있다. /Reuters (Bobby Yip/REUTERS)

“군 복무 후회스러워… 다시 돌아간다면 입대 안 할 것”

김 씨는 북한에서 여군을 지원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꽃다운 청춘을 군 복무에 바친 것이 자랑스러웠고, 이를 바탕으로 대학도 가고, 당비서와 간부까지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에 정착한 뒤 김 씨의 생각은 바뀌었습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도 군대에 지원하겠느냐’고 묻자 ‘싫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기자]만약 17살로 돌아간다면 다시 여군에 지원하실 건가요?

[김단금] 한국에 와 보니 여기 국군은 장교도 혜택이 많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후회되더라고요. 그때는 뭘 모르고 얼떨결에 했죠. 의지도 넘쳤고요. 지금 생각하면 북한 군은 지원하고 싶지 않아요.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한 게 대단한 것 같아요. 그때는 왜 그렇게 펄펄 날면서 했는지 모르겠어요. 한겨울에 추운 줄도 모르고 얼굴 내놓고 그렇게 살았어요. 10년을. 그걸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 거죠.

손나정 씨도 한국에 와 보니 왜 자신이 입대해 그런 비참한 생활을 했는지 후회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손나정] 체제를 너무 잘 못 만나서 한창 꽃피워야 할 때, 연애하고 공부하면서 누려야 할 시기임에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저런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안쓰럽죠. 제가 분 복무할 때는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내가 왜 이런 생활을 했을까’, ‘정말 바보처럼 살았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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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North Korean soldier stands guard along the banks of the Yalu River 2013년 6월 25일, 북한 여군이 중국 접경 도시 단둥 맞은편 신의주 인근 압록강 유역을 따라 보초를 서고 있다. /Reuters (Jacky Chen/REUTERS)

강 교수는 북중 국경 지역에서 바라본 여군들의 모습이 ‘소녀’ 그 자체였다고 말합니다. 젊은 남녀 병사들이 몰래 돌을 던지며 장난을 치거나 손을 잡기도 했으며, 단둘이 걸어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강동완] 아무래도 북한 군인들 역시 10대에서 20대 초, 중반의 젊은 남녀 청춘들이고 그들도 꿈이 있고, 그들 역시도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분명히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감정이 생길 텐데, 북한 체제 내에서 그렇게 자신들의 감정이라든지 또 꿈을 위해서 살아가지 못하고 정말 김정은의 호위무사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고요.

지금도 많은 북한 여군들이 국가를 위해 자신의 청춘을 던지는 가운데, 열악한 군 복무 환경과 공공연히 행해지는 인권 유린의 현실 속에 이들의 후회는 커져가고 있습니다.

[김단금] 그 사회에서 살 때는 모든 것이 다 당연하게 느껴졌는데, 지금 한국에 와서 보니 ‘북한 사회라는 게 저런 사회였구나’라는 걸 느껴요.

기자 천소람,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