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재미와 돈맛] 설 장마당 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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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앞세웠던 북한에서도시장경제는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뿌리내리기시작한 지 오래입니다. 이제 북한에서도 '돈'은사상이나 이념을 넘어 삶의가장중요한 수단이자 가치가 됐는데요. 특히돈을 버는경제활동의 주체로여성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탈북 여성 경제인의 시각으로북한 실물경제의 현재와 미래를들여다보는 '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한 경공업 분야 무역일꾼 출신 탈북자김혜영씨와 함께합니다. 진행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

- 오늘도 김혜영 씨와 함께 합니다. 혜영 씨, 우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지난 1월 1일 설 명절에 촬영된 양강도 혜산 장 골목길을 보니 장을 보는 사람들로 북적이더군요 . 어떻게 보셨습니까?

[김혜영] 네. 동영상 속의 장소는 혜산 시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인데요. 공식적으로 시장에서 장사를 못 하니까 시장 주변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모습입니다. 무엇이 거래되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니 배추와 무가 보이고요. 수산물과 곡식도 파는 것 같습니다. 국수 장사도 보이고요. 또 작은 상자에 일회용품이나 기타 잡화 물건을 담아 파는 것도 같습니다. 설을 맞아 설날에 먹을 쌀이나 술, 고기, 기름, 땔감, 또는 설 선물 등 필요한 물건을 사려는 것 같습니다.

북한 당국에서 시장을 통제하기 때문에 정식 시장은 열리지 않는 상태라고 하는데, 영상에서 골목 상권의 거래가 활발한 것을 보면 시장 길목까지는 단속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단속하면 주민들이 설 준비를 할 수가 없겠죠. 아마 골목 안쪽과 위아래로 장사꾼들이 길가에 쭉 늘어서 있을 겁니다.

- 그래도 설을 맞아 시장도 북적이고, 차량도 많이 돌아다니 는 모습을 볼 때 , 코로나 국면의 불경기 느껴지지 않 습니다 . 설날 때문이라 그럴까요 ? 요즘 양강도 혜산시의 경기는 어떻다고 하나요 ?

[김혜영] 저도 요즘 주변 사람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이나 지인들과 전혀 전화 통화를 할 수가 없어서 최근 소식은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상에서 본 것처럼 설날을 보내기 위해 장마당에서 먹거리도 사고, 사람들이 북적이니 마음이 좀 놓입니다. 이 날 만큼은 장사하는 사람들도 돈을 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북한 사람들도 코로나비루스 때문에 많이 힘들었는데, 설날 만큼은 단속도 안 하고 이렇게 사람들이 여유롭게 물건을 사고파니 올 설날은 잘 보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주차장'이라는 팻말인데요. 제가 북한에 있을 때는 주차장이라는 장소조차 없었는데, 지금은 차로 물건을 날라야 할 만큼 장사가 활발해진 것 같습니다. 또 누군가는 주차장을 만들어 주차비도 받겠죠. 원래 북한에는 빈 공간이 많아 아무 곳에나 차를 세워도 뭐라는 사람이 없었는데, 주차비를 받는 것도 자본주의 형식의 새로운 돈벌이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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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일, 설 명절을 맞아 골목 상권에서 장을 보는 양강도 혜산 시민들. / 은하별TV 캡쳐

- 추운 날씨에 장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나 물건을 파는 상인들 모두 두꺼운 옷을 입고 있더군요 . 매서운 겨울 날씨에 장사하는 상인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은데요 . 겨울철 장마당의 고충은 무엇일까요?

[김혜영] 양강도의 겨울철은 정말 추운데요. 평균 영하 20도 이하는 계속 유지된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옷이 매우 두껍고 무거운데요. 동복으로서 주로 군인들이 입는 겨울 군복을 많이 입습니다. 솜을 많이 넣고 만든 옷이죠. 바지도 마찬가지고요. 신발은 겨울 동화라고 하는데, 이것도 군인들이 주로 신는 것으로 깊이가 깊고, 솜을 많이 넣어 만듭니다. 또 개털로 만든 군인 외투가 있는데, 이런 옷은 아무리 추워도 따뜻합니다. 장교들만 입고, 가격도 비싸거든요. 어디서 구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입는 장사꾼들은 그나마 돈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이런 옷이 없는 사람들은 그저 옷을 많이 껴입거나 수건을 얼굴과 목에 두르고, 신발에는 털이나 솜을 잔뜩 넣은 뒤 장사하러 나오는 겁니다. 추운 날씨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와 있어야 하는데, 너무 추울 때면 물병에 따뜻한 물을 넣어 옷 속에 품고 나오기도 합니다. 또 어떤 장사꾼들은 매대 옆에 장작을 넣고 모닥불을 피워 조금이나마 추위를 극복하기도 하는데요.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겨울철은 매우 힘든 시기입니다.

- 최근 남한의 한 연구기관에서 전망하기를 일 년 넘게 미국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서 돈주들이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었고 , 북·중 접경 지역 에 사는 사람들도 큰 타격을 입었을 것으로 관측했습니다 . 그러면서 북한 당국이 계속 자력갱생 밀어 붙이면 장마당이 설 자리가 없다고 전망했는데요 . 실제 외화로 장사도 하고, 무역도 해보신 경험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혜영] 그 전망은 당연합니다. 요즘 북한은 장마당 세대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고, 이미 돈맛을 봤습니다. 장사해서 돈을 벌었고, 외화를 사용해 본 사람들입니다. 그 과정에서 북한 당국에 많이 빼앗겨도 보고, 수많은 검열로 피해를 보기도 했는데요. 지금처럼 시장과 외화 단속으로 북한 주민들의 피해가 커지면 정권에 대한 원망과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장마당 세대들은 단속하면 단속할수록 더 단결하고, 살길을 찾아 나서거든요. 북한 주민들이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계속할 수는 없을 겁니다. 무역도 재개해야 하고요. 코로나 국면이 지나면 시장도 다시 서야 합니다. 코로나 대유행 이전으로 돌아가면 돈주들이나 상인들이 돈을 더 잘 벌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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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일, 설 명절을 맞아 골목 상권에서 장을 보는 양강도 혜산 시민들. / 은하별TV 캡쳐

- 설날 골목 시장 에 관한 영상을 보면 , 북한 당국이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외화 사용도 단속하면서 시장을 통제하고 있지만, 북한 주민의 삶의 기반은 역시 장사를 통한 시장 경제인 것 같 다는 생각이 듭니다 . 혜영 씨 생각은요 ?

[김혜영] 당연합니다. 기본적으로 국가가 식량과 의약품, 생필품 등을 보장해주지 않는데, 삶의 기반이 당연히 시장일 수밖에 없고요. 배급체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돈이 있어야 물건을 살 수 있으니 장사가 바탕이 되는 것도 당연합니다. 시장 활동이 보장됐을 때에는 북한 주민들도 비교적 잘 살았습니다. 또 시장에서 단순히 장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직업들이 있으니까요. 먹고사는 수단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가 끝나기 전까지 북·중 국경이 열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고요. 북한 당국이 시장 경제에 더 개입하면 그 어려움은 북한 주민의 몫이 될 겁니다. 북한 주민들이 극심한 경기 침체와 생활고를 겪고 있는데요. 어서 시장이 열리고 장사를 보장해주는 것이 북한 당국이 해야 할 시급한 대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끝으로 올해 북한에서는 설 명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한데요. 음식을 잘 해 먹었는지 모르겠고요 . 어땠다고 들으셨나요 ?

[김혜영] 북한에서는 설날에 떡국을 먹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떡과 만두, 국수, 튀김류, 과일들과 나물, 반찬 등이 주요 음식이고, 남성들은 술을 즐겨 찾죠. 고기나 수산물을 넣어 탕 같은 것도 많이 끊여 먹습니다. 잔칫날 음식처럼 해 먹는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요즘 식용유 구하기도 어렵고, 밀가루를 비롯해 식자재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고 하는데 설날 장마당의 모습이 활기차다고 하지만, 현금 부족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그렇게 풍족한 설날을 보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네. 오늘은 설날 장마당 분위기를 함께 살펴봤습니다. '돈 버는 재미와 돈맛'. 오늘 대화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전직 무역일꾼 출신 탈북 여성 김혜영 씨와 함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