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재미와 돈맛] 고물가 속 장사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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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앞세웠던 북한에서도시장경제는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뿌리내리기시작한 지 오래입니다. 이제 북한에서도 ‘돈’은사상이나 이념을 넘어 삶의가장중요한 수단이자 가치가 됐는데요. 특히돈을 버는경제활동의 주체로여성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탈북 여성 경제인의 시각으로북한 실물경제의 현재와 미래를들여다보는 '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한 경공업 분야 무역일꾼 출신 탈북자김혜영씨와 함께합니다. 진행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 오늘도 김혜영 씨와 함께 합니다. 혜영 씨. 안녕하세요. 전 세계가 고물가 상황을 겪는 가운데 북한도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산 제품은 없어서 못 팔고, 가격도 치솟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북한 상인들은 어떤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김혜영]말씀하신 대로 북·중 국경이 봉쇄되고, 밀수에 대한 단속도 강화된 이후 북한 시장에 중국산 물건이 들어오지 않았고요. 수출까지 금지되면서 북한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판매할 특정 물건이 없고, 가격도 비싸면 장사에 큰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요. 그럼에도 어떻게든 물건을 구하려는 노력도 많습니다. 첫째로 직접 자신이 만든 물건을 파는 거죠. 제일 잘 되는 장사는 식료품 장사인데 개인이 농사를 지은 것이나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을 만들어 소량으로 포장해 팔기도 합니다. 또 옷이나 양말 등도 재봉틀로 직접 만들거나 비누, 치약 등도 개인이 만들어 파는데요. 없는 상황에서도 모든 자원과 방법을 총동원해 자력갱생의 정신으로 대처하는 겁니다.

- 북한 주민 중에는 특정 물건이 꼭 필요한 사람도 있을 테고요. 상인들도 계속 장사해 먹고살려면 어떻게든 물건을 구해 장사해야 할 것 같기도 한데요. 그럼 두 번째 대응은 무엇인가요?

[김혜영]예전에는 북·중 국경 지역에 중국산 물건이 쏟아져 들어오면 수요를 막론하고 각 지방과 평양까지 여러 곳으로 거래돼 팔려나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죠. 남포항을 통해 평양 인근으로 들어온 물건이 지방으로 유통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평양에서 팔리는 물건들, 즉 외화상점이나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조미료나 식자재, 간식 등을 확보해 지방으로 판매하는 상인들이 있는 겁니다. 물론 처음 사는 가격이 비싸지만, 이를 여러 개로 나눠 파는 건데요. 예를 들어 맛내기의 경우 1~2kg짜리를 사서 여러 개의 작은 봉투에 나눠 담아 많은 사람들에게 팔거든요. 그러면 처음 산 가격보다 2~3배의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겁니다.

- 중국에서 수입되지 않는 품목 중에는 북한에서 자체 생산해 공급하는 품목들이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도 김정은 총비서의 자력갱생 방침 이후 생산 공장마다 열심히 노력했다고 하는데요. 그것이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도 했고요. 그럼 상인들은 자체 생산한 물건을 어떻게 확보하나요?

[김혜영]현재 북한에서 어떤 공장들이 돌아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가공 식료품이나 공산품 공장들이 조금씩 운영되고 있으리라 봅니다. 또 북한에서는 당의 방침에 따라 새해 들어 더욱 열의를 보이기도 합니다. 요즘이 그런 때죠. 북한 공장이 자체 생산해 만든 물건들이 시장에 유통된다면, 그 과정에서 물건을 확보하려는 상인들의 경쟁도 치열합니다. 따라서 부정부패도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공장 지배인이나 간부들에게 뇌물을 주고 먼저 빼돌려 시장에 비싼 값으로 되파는 겁니다. 이런 일들은 늘 있었는데요. 국경이 막히면 국내 공장들에서 생산되는 물품이 이렇게 지방에까지 유통되고, 상인들이 자체적인 아이디어를 내 장사하면서 어떻게든 이윤을 남깁니다.

- 하지만 국내산 품질이 매우 나빠서 오래 쓰지 못하거나 사용하기 불편하다고 하는데, 어떤 경우입니까? 그나마 잘 팔리는 국내산 물건은 무엇일까요?

[김혜영]아무래도 국산품은 생산성이 많이 떨어지고 질도 나빠서 북한 주민들도 기피합니다. 게다가 지금은 북한이 수출을 못 하니 자금이 부족할 테고, 생산량이나 질이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에서 만든 건전지의 경우 국산품은 부식이 빠르고, 건전지 안에 있는 내용물이 새어 나오기도 합니다. 일반용도 그렇고, 공업용도 질이 나빠 금방 수명이 다하지만, 그것마저도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사는 거죠. 비누나 화장품도 원료부터 좋지 않기 때문에 향기부터 사용 후 느낌, 효과까지 중국산 또는 한국산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농기계의 경우 낫과 망치 같은 것은 아예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어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나마 북한 주민에게 잘 팔리는 국산품은 수산물입니다. 양식해서 파는 물고기나 집에서 키우는 토끼, 닭, 돼지 등이 있고요. 평양이나 지방에서 집마다 가축을 기르고 이를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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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평양의 화장품 공장에 전시된 생산 제품들. / AP (Ng Han Guan/AP)

- 중국산 수입품을 팔던 상인들이 요즘은 물건이 없어 국내산으로 눈을 돌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럼 이들의 수익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김혜영]요즘은 무역업자들이나 상인들이 중국으로 수출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수출 상품들이 국내 시장에 비싸게 풀리기도 하고, 평양의 대형마트 등에 공급되기도 할 겁니다. 이 과정에서 충분한 자금력과 인맥이 있는 상인들은 국내에 풀리는 수출 상품들을 재빨리 확보하는 거죠. 북한에서도 돈을 빨리 융통할 수 있는 상인들이 그만큼 물건도 많이 차지할 수 있고요. 돈도 벌 수 있는 겁니다. 반면, 그렇지 못한 상인들은 물건 확보가 어렵고, 돈을 벌 기회도 적어지게 되는데요. 북한에서도 돈이 돈을 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북한 사람들의 특징이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소비를 안 하는 습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소비와 수요가 줄면서 물가가 안정화되는 측면도 있다고 하는데, 동의하십니까?

[김혜영]옛날에는 그랬습니다. 지금도 없는데 어쩌겠습니까. 없는 대로 살아야지요. 하지만 이제 북한의 인구 구성도 장마당 세대로 바뀌었고, 젊은 세대들은 한때 돈주가 됐거나, 돈을 벌어 잘 먹고 잘살아 봤고, 외국물도 경험해 본 사람들입니다. 그만큼 수준이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경험했던 물질적 풍요는 잊을 수가 없고요. 그래서 장사를 아무리 통제해도 멈추지 못하고, 좋았던 시절을 갈망하면서 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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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개성시 길가에서 야채를 팔고 있는 주민들. /AFP (ED JONES/AFP)

- 요즘 북한 사회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 즉 양극화가 심하다고 합니다. 물가가 올라도 잘 사는 사람은 큰 상관이 없다고 하네요. 혜영 씨가 북한에 있었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어떨까요?

[김혜영]맞습니다. 지금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렵다 해도 이미 돈을 벌었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돈을 굴려 더 많은 이익을 만들어냅니다. 이미 시장경제의 혜택을 누렸던 사람들은 장사에 능하고요. 그 과정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 사회적 양극화는 오래 전에 형성됐습니다. 북한도 돈이 만능인 사회가 됐는데, 그 돈의 맛과 능력을 충분히 경험한 세대들은 아무리 상황이 어렵다 해도 자금과 인맥을 동원한 기회를 노려 또 잘 벌 겁니다. 반면, 마땅한 현금 수입이 없는 사람들은 당장 굶어 죽을 위기에 놓였거나 길거리 장마당에 나가보지만, 여의치 않은데요. 당국 차원의 복지나 지원도 없지만, 혹 있다 해도 양극화를 좁혀가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네. 오늘은 고물가 국면에서 북한 상인들의 장사 전략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돈 버는 재미와 돈맛,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전직 북한 무역일꾼 출신인 김혜영 씨와 함께했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