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 상인의 성공 요건은 좋은 인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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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앞세웠던 북한에서도 시장경제는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지 오래입니다. 이제 북한에서도 ‘돈’은 사상이나 이념을 넘어 삶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자 가치가 됐는데요. 특히 돈을 버는 경제활동의 주체로 여성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탈북 여성 경제인의 시각으로 북한 실물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보는 '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한 경공업 분야 무역일꾼 출신 탈북민 김혜영 씨와 함께합니다. 진행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 오늘도 김혜영 씨와 함께 합니다 . 혜영 . 안녕하세요 . 북한에서도 장사에 있어 중요한 것이 자본과 인맥이 아닐까 싶은데요 . 그중에서도 인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죠 ? 우선 일반적으로 북한 장사에서 인맥은 얼마나 중요한가요 ?

[김혜영] 북한에서 인맥은 형성하는 과정이 참 쉽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인맥이 없으면 모든 일이 힘든데요. 장사의 길도 막히고요.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저 또한 북한에서 인맥이 많았기 때문에 일도 잘 풀리고, 돈도 제법 많이 벌었거든요. 북한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 돕는 것이 인맥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무역이나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인맥은 매우 중요하고요. 중요도에서 거의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면 됩니다.

- 북한에서 장사에 필요한 인맥 의 범위는 어디까지 라 할 수 있을까요 ?

[김혜영] 북한은 지역 간에 이동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또 북한은 여러 계층별로 서열화가 돼 있고, 통행증 없이는 사람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니까 인맥을 구축하는 것이 정말 힘들거든요. 그래서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해당 지역의 주민을 잘 알아두고, 갈등도 일으키지 말고 장사를 해야 앞날이 편합니다.

가장 필요한 인맥은 역시 돈주인데요. 어느 지역에 아는 돈주가 있으면, 그 사람의 인맥을 통해 물건을 대주는 업주를 알게 되고, 새로운 장사품목도 소개받을 수 있습니다. 또 뒤를 봐주는 법 기관이나 안전기관 등의 간부들도 알아둘 수 있습니다. 이들과는 뇌물을 받고 뒤를 봐주는 인맥 관계가 형성되는데요. 그래야 도나 시에서 큰 장사를 할 수 있고,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겁니다. 간부들도 나라에서 배급이나 돈을 더 주는 것이 아니기에 이렇게라도 해서 뒷돈을 받지 않으면 생계유지가 안 되거든요.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인맥이 형성되는 나라가 북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북한 상인들 인맥을 쌓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 ? 나가는 돈주들과는 인맥 쌓기가 쉽지 않다고 하셨 는데요 . 어떻게 하면 이들을 인맥으로 만들 있나요 ?

[김혜영] 일단 돈주들과 인맥을 형성하라면 이들의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주들이 시키는 일이나 심부름을 잘 해주고, 돈주를 위해 위험한 일을 감수하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무역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돈 거래도 잘하는 사람이여야겠죠. 또 자신이 진실한 사람, 투명한 사람이라는 것도 보여줘야 합니다. 북한에서는 워낙 감시가 심하고, 아무나 쉽게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진실된 사람을 인맥으로 삼으면 그를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저도 북한에서 돈주를 해봤지만, 무조건 아부를 떠는 사람은 멀리했습니다. 거짓 없고, 성실하고, 눈치 빠른 사람을 좋아했는데요.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제가 거래하는 모든 품목과 거래처 등을 알려주진 않았지만, 저와 동행하거나 지켜주는 사람으로 3명 정도 사람을 뒀습니다. 잘 해줄 때는 잘 해주고요. 서로 경조사를 챙겨가며 인간적인 유대감과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과 노력이 필요한데요. 그래도 가장 좋은 인맥은 역시 믿을 수 있는 가족이나 친척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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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일, 설 명절을 맞아 양강도 혜산시 골목 상권에서 장을 보는 북한 주민들. / 은하별TV 캡쳐

- 처음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인맥이 필요할 텐데요 . 이들은 어떻게 인맥을 만드나요 ? 처음 인맥을 소개해주는 사람이 있나요 ?

[김혜영] 시장에서 처음 장사하는 사람들도 역시 시장의 돈주를 재빨리 인맥으로 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돈주와 거래에서 물건도 빨리 팔아주고, 돈 관리도 잘해주면 저절로 가까운 인맥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지역의 돈주와 연이 닿으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아는 사람에게 소개도 부탁하고, 돈주에게 잘 보이려고 적지 않게 아부도 합니다.

가정환경도 무시 못 하는데요. 기본적으로 토대가 없거나 거주지가 멀리 있는 사람들은 인맥 쌓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돈주들도 이런 사람들과는 친해지려 하지 않는데요. 검열 등 안 좋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들을 믿을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처음 장사하는 사람들은 우선 가족이나 친지부터 인맥을 구축해가고요. 고향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사람들, 친구들로 인맥을 넓혀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아는 사람들끼리 서로 도우면서 장사를 시작할 수 있는데요. 토대가 보장되지 않으면 돈주나 높은 사람과 인맥을 쌓을 기회가 없기 때문에, 아무리 성실하고 장사 수완이 좋아도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다는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 북한 내에서 인맥도 중요하지만 , 중국 무역업자 ( 대방 ) 들과 인맥도 필요하고 중요하지 않습니까 ? 북한 사람과 달리 중국 대방들과 인맥은 어떻게 쌓고 관리하나요 ?

[김혜영] 제가 있을 당시에도 그랬지만, 북중 국경이 봉쇄되기 전에도 중국에서 친척 방문객들이 국경연선으로 많이 드나듭니다. 그들 중에는 함께 무역을 해보자고 권유하는 중국 조선족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서로 간에 문서로 계약을 맺고 개인 무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 손전화로 긴밀하게 연락하면서 인맥을 유지해왔죠.

중국 대방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신용입니다. 물건값을 떼어먹지 않고, 대금 납부를 잘해주고, 서로 약속도 잘 지키면 좋은 인맥이 형성되는 겁니다. 그렇게 중국 대방과 인맥을 잘 쌓으면 또 다른 대방과 연결되면서 돈을 잘 벌 수 있는데요. 북한 내에서 거래하는 것과는 규모나 금액 면에서도 큰 차이가 있죠. 제가 있을 때도 트럭 몇 대 분량의 중국산 물건들을 들여와 북한에서 팔 수 있었는데, 그것은 다시 전국에 있는 제 인맥들을 동원해 유통합니다. 그러면 저는 앉아서 돈을 벌 수 있었고요. 인맥을 잘 이용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중국 상인도 돈을 벌고, 북한 상인들도 돈을 벌면서 참 재미있게 장사했던 생각이 납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럴 수 없으니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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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제1 백화점에서 열린 소비재 전시회에서 제품을 살피는 북한 주민들. / AP (Cha Song Ho/AP)

- 북중 국경이 봉쇄된 2 년이 넘었고 , 전화 통화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 대방과 인맥도 많이 끊어졌을 텐데요 . 다시 인맥이 이어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 지 않을까요 ? 북한 상인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줄까요 ?

[김혜영] 중국 대방들에는 북한이 중요한 거래처이긴 하지만, 그들이 손해 볼 일은 거의 없습니다. 북한이 안 되면 얼마든지 다른 나라와 거래할 수 있으니까요. 중국 대방들은 어떻게든 돈을 벌 겁니다. 하지만 북한은 다릅니다. 중국이 아니면 다른 거래처나 판로를 찾을 수 없으니까요. 중국의 대방 중에는 오랫동안 거래하던 북한 상인들의 손전화 요금도 대신 납부해주면서 소통을 유지했지만, 지금은 북중 국경이 너무 오랫동안 봉쇄되면서 요금 대납을 중단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북한 상인 중에는 손전화를 처분한 사람들도 있다고 하고요.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지고, 인맥도 끊어지는 거죠. 국경이 열린다 해도 다시 연락하기가 쉽지 않고요. 그렇게 한 번 끊긴 인맥을 다시 구축하기도 어렵습니다만, 국경이 다시 열리기를 기다리는 중국 대방이나 북한 상인들은 서로를 기억하면서 때를 보고 있을 겁니다. 어떻게든 다시 연락될 수 있죠. 또 국경이 다시 열리면 북한 상인들도 거래할 중국 대방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테고, 중국도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북한과 무역을 환영하기 때문에 금세 인맥이 형성될 거라 봅니다.

-네. 오늘은 북한에서 장사와 인맥에 관해 살펴봤습니다. 돈 버는 재미와 돈맛,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전직 북한 무역일꾼 출신인 김혜영 씨와 함께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