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재미와 돈맛] 쓸 돈 없고 돈이 돈이 아닌 요즘 북한

[사회주의계획경제를 앞세웠던 북한에서도시장경제는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뿌리내리기시작한 지 오래입니다. 이제 북한에서도 '돈'은사상이나 이념을 넘어 삶의가장중요한 수단이자 가치가 됐는데요. 특히돈을 버는경제활동의 주체로여성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탈북 여성 경제인의 시각으로북한 실물경제의 현재와 미래를들여다보는 '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한 경공업 분야 무역일꾼 출신 탈북 김혜영씨와 함께합니다. 진행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

- 오늘도 김혜영 씨와 함께 합니다. 혜영 씨. 안녕하세요 지난달 북중 화물열차 운행이 재개된 이후 시장에서 일부 품목에 대한 가격이 소폭 내렸다고 합니다 . 곧 무역이 재개될 거란 예측 기대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 이런 기대만으로 가격이 하락할 수 있나요?

[김혜영] 단기적으로는 그럴 수 있습니다. 다만 앞으로 북중 국경이 열려 중국산 물건이 더 들어올 거란 기대감이 생길 수는 있지만, 현재 국경이 다 열린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 북한 신의주를 통해 들어온 화물은 평양 시민과 당 간부들, 중앙당 일군들, 군인들의 생계를 위해서, 그리고 여러 가지 의약품들과 국가적으로 필요한 물자들이 먼저 들어왔으리라 봅니다. 며칠 전 지인이 북한의 가족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요. 여전히 두만강과 압록강 다리를 통한 무역 길은 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신의주로 들어간 물자들이 지방까지 오지도 않았고요. 지금도 국경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여전히 장사가 매우 어렵고, 물가와 송금 수수료도 높다고 합니다. 이번처럼 국가 차원의 무역만으로 시장 물가가 잡히기는 쉽지 않습니다. 더 국경이 열리고, 개인적인 무역이 재개되기 전까지 물가 하락 효과는 제한적일 거라 생각합니다.

- 북중 화물열차 운행이 재개되면서 위안화, 달러화에 대한 환율 올랐다고 합니다 . 갑자기 환율이 오르니까 시장이 혼란스 럽다고 하는데요 . 그동안 외화 단속 때문에 북한 돈으로 거래하던 물건 값을 어떻게 책정할까에 대한 혼란이 생겼다는 겁니다 .

[김혜영] 저도 과거에 무역을 했을 당시 가장 민감했던 것이 환율이었습니다. 환율 변동에 따라 이익에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이번에도 북한 당국이 그동안 시장에서 외화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단속해왔습니다. 그래서 북한 돈으로 거래를 했고, 실제로 북한 원화당 중국 위안화, 미국 달러화의 환율도 낮았는데요. 갑자기 환율이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북한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뜻이잖아요. 그럼 북한 돈으로 거래하는 물건의 가치도 떨어질 수 있으니까 장사하는 사람으로서는 그렇게 팔고 싶지 않은 겁니다. 당연히 돈주들이나 상인들이 당장 물건값을 정하는 데 있어 혼란스러울 수 있는데요. 물론, 수요와 공급에 따라 시장 물가가 정해지지만, 한편으로는 상인들이 부르는 게 값일 때가 많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물건이 부족할 때는 더 그렇습니다.

- 화물열차 운행 재개 직후 조사된 시장 물가표를 함께 보셨는데요.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김혜영] 일단 물가가 너무 많이 오른 것 같아 할 말을 잃었습니다. 아무리 내린 가격이라고 하지만, 조미료가 1kg에 북한 돈으로 17만 원, 고춧가루가 7만 원이란 말에 어이가 없는데요. 제가 북한에 있었을 때도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물가 수준이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북한 돈에서 5천 원이 제일 높은 단위였는데, 지금은 1만 원이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물가가 오르니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북한에서도 ‘요즘은 쓸 돈이 없다’, ‘돈이 돈이 아니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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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화물열차 운행이 재개된 이후 함경북도, 양강도, 평안북도 지역에서 조사한 시장 물가 현황 (1월 19일 기준) /아시아프레스 제공

- 물가표를 보면 조미료나 고춧가루, 들기름, 설탕 등의 1kg 가격이 여전히 비쌉니다. 일반 주민들이 1kg씩 구매할 것 같진 않은데요. 그럼 상인들이 산 뒤 이를 분산해 판매하는 건가요?

[김혜영] 그렇죠. 지금 여유가 있는 돈주라면 몇 kg씩 사서 이를 최대한 많이 나눈 뒤 이익을 남겨 판매할 겁니다. 몇 달 전 저희 어머니가 ‘요즘 조미료(가격)가 1만 원이라서 사 먹지도 못한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하는데요. 상인들이 처음부터 비싼 가격에 샀기 때문에 아무리 조금씩 많이 나눠 판다고 해도 각종 비용에 이익까지 붙이면 실제 일반 주민들이 사기에는 큰 부담이 될 겁니다. 게다가 요즘처럼 물건이 부족한 때는 부르는 것이 값이고요. 또 아무리 비싸도 사 먹어야 할 것들이 있으니까요. 이래저래 일반 주민들의 부담만 커지고 있습니다.

- 물가표에서 다른 생필품의 가격은 어떻던가요?

[김혜영] 가격을 보면 의류냐 샴푸, 치약 등도 매우 비싼 수준인데요. 최근 소식을 들어보니 한국에서 저렴하게 팔릴 만한 수준의 옷이 북한에서 더 비싸게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 사람들의 특징은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살거든요. 예를 들어 샴푸가 없으면 비누를 사용하면 되고요. 비싼 생필품을 무리해서 사는 것은 아니고, 소비를 줄이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물가가 하락하는 효과도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식료품에 비해 다른 생필품이 비싼 것은 주민들에게 매우 큰 문제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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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보통강구역의 경흥식료품상점. /AP (Cha Song Ho/AP)

- 마지막으로 최근 북한이 최고인민회의에서 '기업의 무역 자율화 ' 대신 '중앙통제'로 회귀하는 결정 내렸습니다 . 이제 무역을 해도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국가가 정하는 것만 하라는 건데요 . 무역일군들이 이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김혜영] 그렇게 된다면 무역하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을 겁니다. 국가로부터 모든 승인을 받아야겠죠. 정식 국가무역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무역하기는 더 어려워질 거라 봅니다. 또 무역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은 철저히 검토해서 모두 당으로 들어갈 테고요. 전에는 개인이 국가를 내세워 돈으로 무역와끄를 만들고, 중국 대방을 만나 거래할 기회가 많았는데 앞으로는 절대 못 할 겁니다. 이는 시장경제를 제한하고, 진정한 당의 사람으로 개조하겠다는 목적도 있겠죠. 국가가 모든 것은 생산하고, 무역을 총괄하면서 주민들의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사회주의 체제로 돌아갈 거라 생각합니다.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돈주들의 입장에서는 내 돈으로 무역을 하고 장사를 해야 이윤이 생길 텐데, 앞으로 개인 장사가 어려워지면 돈주들의 이윤이 줄어들게 되고, 그만큼 시장 활동이 위축되면 연쇄적으로 악영향이 생길 수 있는데요. 당연히 무역일꾼들을 비롯해 주민들은 개인적으로 수입을 올리지 못하게 되니까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결정이라고 봅니다.

- 네. 오늘은 화물 열차 운행 재개 이후 시장 물가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돈 버는 재미와 돈맛,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전직 북한 무역일꾼 출신인 김혜영 씨와 함께했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