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계획경제를 앞세웠던 북한에서도시장경제는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뿌리내리기시작한 지 오래입니다. 이제 북한에서도 ‘돈’은사상이나 이념을 넘어 삶의가장중요한 수단이자 가치가 됐는데요. 특히돈을 버는경제활동의 주체로여성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탈북 여성 경제인의 시각으로북한 실물경제의 현재와 미래를들여다보는 '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한 경공업 분야 무역일꾼 출신 탈북민 김혜영씨와 함께합니다. 진행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오늘도 김혜영 씨와 함께 합니다. 혜영 씨 . 안녕하세요. 혜영 씨 , 북한에서는 3월부터 본격적인 농사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농사 준비가 시작되면 필요한 물건도 많을 텐데요. 이와 관련된 장사 품목은 뭐가 있을까요?
[김혜영] 북한 농촌에서 봄철은 참 필요한 것이 많은 시기입니다. 저도 요즘 북한의 협동농장마다 농사 준비로 정말 바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특히 올해는 김정은 총비서가 농업 생산 증대를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기 때문에 더 그렇다고 하는데요. 봄철 농사 준비는 모든 인력이 총동원되는 전투 기간이라고도 합니다. 농사 준비에 필요한 것이 정말 많죠. 기본적으로 종자와 비료가 있어야 하고, 농기구는 필수입니다. 농기구를 돌릴 연료와 비닐 등도 반드시 필요하고요. 하지만 매년 농사 준비 시기가 되면 늘 부족한 것이 많다는 것이 문제인데요. 협동 농장에서는 국가가 어느 정도 지원해준다고 하지만, 충분치 않고요. 개인 농사를 짓는 주민들은 개별적으로 시장에서 농자재를 사야 합니다. 심지어 비료를 대신할 인분까지 사야 할 정도니까요.
- 북한에 ' 건재상점 ' 이라는 곳이 있다고 하는데 , 건재상점은 어떤 곳이고, 무엇을 파는 곳인가요 ?
[김혜영] 네. 봄철 농사 준비 기간에 가장 바쁜 곳 중 하나입니다. 한국의 철물점과 같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농기구를 비롯해 철로 만든 대부분의 물건을 파는 곳입니다. 삽, 곡괭이 등 농기구부터 망치, 못 등 건설 현장에서 필요한 재료들, 집수리에 필요한 각종 물건들을 파는 상점이죠. 북한에서는 상업 분야를 졸업한 사람들이 건재상점으로 배치돼 판매하는 일을 합니다. 건재상점은 누구나 다 이용할 수 있는데요. 집에서 필요한 간단한 도구 (드라이버, 펜치) 등도 팔기 때문에 남자들이 많이 찾습니다. 또 농사철에 학교에서 농기구를 내라고 하면 이 건재상점에서 구매해 학교에 바치기도 합니다.

- 북중 국경이 봉쇄된 지 2년이 넘었는데, 건재상점에 물건이 충분하지 모르겠습니다. 북한 자체적으로 농기구를 생산하기도 하겠지만 , 개인이 농기구 를 만들어 시장에서 파는 경우도 많나요 ?
[김혜영] 건재상점 물건은 중국에서 들여오지 않습니다. 북한에 기본적으로 철이 많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생산∙제작해 이 건재 상점으로 보내게 되죠. 그런데 요즘은 수요는 많은데, 이를 생산하는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또 공장에서 물건을 만든다 해도 건재상점에서 아주 싼 국정 가격으로 팔리기 때문에 공장으로서는 이득이 거의 없습니다. 요즘은 개인이 농기구나 철물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면 값도 비싸게 받고, 돈도 제법 벌 수 있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농사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에는 장사가 잘됩니다. 북한에서 밀수가 활발하던 때는 중국에서 건재 제품들을 종합세트로 들여와 팔기도 했는데요. 지금은 북중 국경이 막혔기 때문에 개인이 만들어 파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 아까 말씀하신 대로 협동농장에서는 국가에서 농자재를 대주지만 , 개인이 뙈기밭을 일굴 때에도 필요한 것들이 많 지 않습니까 . 농번기를 맞아 농자재를 파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 이때 돈을 많이 버는지 궁금합니다.
[김혜영] 이제는 협동농장에도 농자재가 너무 부족하니까 매번 전 인민이 총동원 기간에 농기구들을 모아 농장에 가져다 주는데요. 이것들도 결국, 개인들이 시장에서 파는 것을 사다가 농촌에 지원하는 겁니다. 종자 씨도 시장에서 팔기 때문에 이걸 사다가 농촌에 지원하기도 하고, 개인이 직접 자기 밭에 심기도 하고요. 또 북한에서는 비료 대신 인분을 많이 사용하는데, 인분까지도 장마당에서 팔거든요. 이것을 사다 농촌 지원에 필요한 할당량으로 내는 것이죠. 이처럼 북한에는 부족하지 않은 농자재가 없기 때문에 농사와 관련된 것은 어떤 것이든 잘 팔리고, 이를 통해 돈을 벌 수 있습니다.
- 시장에서 농기구의 가격은 얼마나 할까요 ?
[김혜영] 수요와 공급에 따라 매년 달라지는데요. 북한이 최근 농촌의 기계화를 천명했지만, 여전히 농기구가 필요한 농장이 많습니다. 그래서 농장이나 개인들은 농사철이 시작되기 전부터 농기구 확보에 전력을 다하는데요. 북한 자체적으로 농기구 생산이 많으면 가격이 내려가고, 적으면 가격이 올라가죠. 웬만한 농기구는 북한 돈으로 몇 천 원씩 하는데, 가격이 싸면 그만큼 찾는 사람도 많습니다. 원자재인 철이 충분하고, 공장도 잘 돌아가면 그만큼 농기구도 많아질 텐데, 올해는 김정은 총비서가 농업 생산 증대를 최우선 목표로 정한 만큼 농기구 생산과 확보에도 주력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농번기를 맞아 농촌 동원도 많이 할 텐데, 협동 농장 근처에서 이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예를 들어 음식 장사를 한다 든 지 , 기타 품목을 파는 사람들 말입니다 .
[김혜영]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농장을 오가는 길목에서 장사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다못해 물이라도 팔거나, 더운 날에 얼음과자라도 팔 수 있으니까요. 북한의 농촌 동원 기간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어린 학생들부터 어른까지 총동원 전투 기간입니다. 집에서 새벽에 출발해 늦은 저녁까지 일하고 돌아오거든요. 예전에는 농장에서 자면서 일했는데, 지금은 농장에 먹을 것도 없고, 자는 장소도 마땅치 않아서 요즘은 매일 농촌 지원 전투를 오가며 하는 겁니다. 그러니 개인별로 도시락을 싸가기도 하지만,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돈을 모아 두부밥이나 다른 먹거리들을 사서 점심시간에 나누어 먹기도 합니다.
- 농촌 지원 전투 기간은 시장도 많이 분주할 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북한에서 비닐 장사가 잘된다면서요 ? 왜 그런가요?
[김혜영] 북한에서도 비닐은 참 귀합니다. 농촌에서는 모를 키울 때도 필요하고, 가정에서는 유리 대신 창문의 바람막이로도 쓰이고요. 여러 방면에서 쓰이기 때문에 많이 필요합니다. 장사하는 사람들도 비닐봉지는 필수거든요. 중국에서 들여온 비닐봉지를 장사꾼들이 삽니다. 그리고 이 봉지로 음식이나 물건을 넣어 파는 거죠. 한국의 재래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요. 시장에는 비닐봉지만 파는 상인도 있습니다. 봉투를 들고 시장을 걸어 다니면서 필요한 장사꾼들에게 돈을 받고 파는 거죠. 또 북한에서 제일 잘 팔리는 것 중 하나가 포대입니다. 농촌 동원 등에서 돌이나 흙, 인분 등을 나를 때 아주 유용한데요. 하지만, 제대로 된 도구나 제품이 없어 비닐이나 포대로 일상생활을 유지해나간다는 것도 참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네. 오늘은 북한 농번기에 특수를 누리는 장사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 돈 버는 재미와 돈맛,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북한 무역일꾼 출신 탈북민 김혜영 씨와 함께 했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