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재미와 돈맛] 국경봉쇄∙통제강화로 북 시장 위축

북한 개성시 골목길에서 과일과 채소 등을 파는 북한 주민들
북한 개성시 골목길에서 과일과 채소 등을 파는 북한 주민들 (/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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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계획경제를 앞세웠던 북한에서도시장경제는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뿌리내리기시작한 지 오래입니다. 이제 북한에서도 '돈'은사상이나 이념을 넘어 삶의가장중요한 수단이자 가치가 됐는데요. 특히돈을 버는경제활동의 주체로여성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탈북 여성 경제인의 시각으로북한 실물경제의 현재와 미래를들여다보는 '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한 경공업 분야 무역일꾼 출신 탈북 김혜영씨와 함께합니다. 진행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

  • 오늘도 김혜영 씨와 함께합니다 . 혜영 씨 안녕하세요. 혜영 씨. 우선 최근 코로나 상황과 관련해 북한 내부 또는 북중 국경 에 관해 들으신 것이 있으면 전해 주시죠 .

[김혜영] 네. 제가 전해 들은 소식은 북한 지방 도시에서 코로나에 따른 봉쇄와 통제 등으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사망자 소식도 들리고요. 사람들이 약보다 식량을 먼저 달라고 아우성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탈북민들이 북한 가족에게 돈을 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고요. 송금하려 해도 수수료가 여전히 50%가 넘어서 한국 내 탈북민들이 북한의 가족이나 친척에 선뜻 돈을 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제가 중국 단둥에서 전해 들은 소식에 따르면 현지 코로나 방역의 강화로 그곳에 있던 탈북민이 많이 적발됐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탈북민들을 북한으로 보내려 하는데, 오히려 북한에서 코로나를 이유로 받아주지 않아서 중국 감옥에 갇힌 탈북민들도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감옥에서 이들에 대한 처우도 열악하고요. 코로나 때문에 북한 주민도, 중국 내 탈북민들도 모두 어려운 상황인 듯합니다.

  • 코로나 대유행 이후 북한의 시 장 활동이 크게 위축 된 것 같습니다 . 김정은 시대 들어 시장 많이 생 500개 가까이 되고, 많이 현대화 된 것도 확인됐는데요 . 혜영 씨가 북한에 있었을 때 시장 모습은 어땠습니까 ?

[김혜영] 제가 북한에 있을 때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김정일 시대를 맞으면서 극심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을 때였습니다. 그래도 경제력이 있거나 일본 또는 중국에 친척, 연고자들이 있는 사람들은 북한으로 먹을 것, 입을 것 등의 물건을 많이 들여왔습니다. 또 북한 사람들의 친척 방문도 가능했기 때문에 북중 국경 다리를 통해 많은 물건이 오가면서 시장이 활성화됐습니다. 밀수하는 사람도 많았고, 중국산 물건이 북한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또 이때는 너도나도 시장에 물건을 들고나와 물물교환을 하거나 뭐든 파는 일이 늘상 벌어졌습니다. 각자 자리를 맡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장마당을 꾸렸는데요. 개인들이 모여 형성된 장마당이라 국가에서 뭐라 할 수도 없었고, 통제도 그리 심하지 않았습니다. 또 고난의 행군 당시에는 당국이 주민들의 생활을 책임지지 못했기 때문에 장사를 눈감아줄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것이 오늘날까지 북한 시장이 발달하게 된 배경입니다.

  •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이후 시장은 더 많아지고 현대화됐는데요 . 오늘날 북한 시장은 이전과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 십니까 ?

[김혜영] 제가 최근 인터넷 동영상으로 본 북한 시장은 제가 북한에 있을 때보다 많이 발전돼 보였습니다. 특히 평양의 대형마트는 한국의 마트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였고요. 각 도시의 시장도 점점 개수가 많아지고, 그 규모도 커졌습니다. 야외에 마련된 시장에 지붕이 만들어지거나 매대도 체계적으로 정리했고요. 그만큼 시장을 더 적극적으로 장려한 듯한 모습이었는데, 제가 2018년에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에서 발표한 한 보고서를 보니까 북한 당국이 매년 시장 임대료로 거둬들이는 세금이 미화로 5천900만 달러라고 하더군요. 김정은 정권의 입장에서 시장 임대료는 주요 수입원이고요. 시장을 장려하는 하나의 이유가 됐다고 봅니다. 또 현대화된 대형마트나 국영백화점, 외화 상점 등을 통해 일반 시장과 경쟁하는 모습도 보였고, 이것이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수요를 채우는 역할도 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시장을 통해 북한 중산층의 발전이 가능했던 것도 과거와 다른 점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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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보통강백화점에서 평양 시민들이 식품을 사고 있다. / AP
  • 그런데 코로나 대유행 이후 북한에서 시장 역할이 많이 축소된 듯한 분위기인데요 . 특히 어떤 부분에서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요?

[김혜영] 일단 북중 국경이 막힌 지 3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무역이나 중국 친척 방문 등이 일절 막히면서 물건이 부족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시장만 번듯하게 지어놓으면 뭐하겠습니까. 물건이 없으니 사람도 없고, 장사가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죠. 또 하나는 김정은 정권이 시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 건데요. 특히 비사회주의에 대한 투쟁을 선언한 이후에 장사 품목이나 장사 시간 등을 더 엄격하게 단속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장사는 더 힘들어졌고, 골목에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눈치를 보며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정도입니다.

최근 인터넷 동영상에 나온 북한의 대형마트나 시장의 모습을 보면 겉보기에는 수준급으로 잘 꾸몄지만, 이는 평양 상류층의 생활에 불과한 선전용에 불과하고요. 상품의 종류가 많지 않거나 일부 매장은 비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만큼 물건이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김정은 총비서가 최근 중앙집권적 통제를 강화하면서 북한 시장화가 점점 퇴조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 실제 무역과 시장을 경험하신 분으로써 시장 활동이 위축되면 어떤 영향이 가장 클까요?

[김혜영] 당연히 뭐든 풍족하지 않겠지요. 과거에는 중국 상품, 일본 상품, 심지어 한국 상품까지 시장에서 팔 수 있어서 다양한 물건을 구매할 수 있었고요. 이것으로 돈을 번 돈주도 많이 생기고, 북한 사람들도 돈의 가치를 알면서 생활 수준도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단속 때문에 돈주들이 많이 잡혀갔다고 합니다. 애초 물자가 부족하고 시장에 내놓을 물건도 제한적이니 돈이 돌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요. 지금은 대부분 일반 주민들이 생계를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 시장이 위축되면서 당연히 먹는 것, 입는 것 등 생활 수준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실제 북한에서 전해 듣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이는 틀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지방 도시의 시장도 코로나 때문에 거의 닫혀 있는 상태인데요. 그 동안 전국에 500개 가까운 시장이 생기고 꾸준히 확대해왔지만, 왜 더 적극적으로 이를 활용하려 하지 않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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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에서 개성으로 가는 고속도로 인근에서 농산물을 파는 노점상 / AccessDPRK.com (Uwe Brodrecht)
  • 물론 최근 시장이 위축됐지만 , 그래도 북한 시장이 갖는 역할과 상징성은 여전하지 않을까요?

[김혜영] 코로나 대유행 이후 북한 시장의 성장이 정체되고 활동이 위축된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시장을 통한 경제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북중 국경이 열리고, 무역이 재개될 때까지 시장 물가는 계속 오르고, 시장은 더 불안해질 겁니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은 오히려 미사일 발사에 엄청난 돈을 쓰고, 시장 활동을 제한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요. 김정은 정권이 더는 정체성을 위해 시장을 단속하거나 핵실험과 미사일 등으로 자원을 낭비하지 말고, 북한 주민들을 살리기 위해 시장을 다시 활성화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 오늘은 점점 위축되는 북한 시장의 모습을 짚어봤습니다 . 돈 버는 재미와 돈맛 ,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북한무역일꾼 출신 탈북민 김혜영 씨와 함께 했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