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계획경제를 앞세웠던 북한에서도시장경제는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뿌리내리기시작한 지 오래입니다. 이제 북한에서도 ‘돈’은사상이나 이념을 넘어 삶의가장중요한 수단이자 가치가 됐는데요. 특히돈을 버는경제활동의 주체로여성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탈북 여성 경제인의 시각으로북한 실물경제의 현재와 미래를들여다보는 '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한 경공업 분야 무역일꾼 출신 탈북민 김혜영씨와 함께합니다. 진행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 오늘도 김혜영 씨와 함께합니다 . 혜영 씨 안녕하세요 . 최근 북한에서 원화의 가치가 하락하고 , 원화 당 미국 달러나 중국 위안화에 대한 환율이 다시 오른다고 하는데요 . 북한 내에서 여전히 원화보다 외화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나요 ?
[김혜영] 최근 북한에 송금했던 지인을 통해 브로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여전히 북한 내에서는 원화보다 중국 위안화를 더 선호하고, 실제 시장에서도 위안화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동안 북한 시장에서 외화 사용에 대한 단속이 심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직접 무역회사의 외화 보유액과 유통 등을 관리하고, 무역 회사가 가진 외화를 원화로 바꾸라는 지시까지 있었는데요. 국가가 엄격하게 외화 관리를 하면서 무역회사나 돈주들은 갖고 있던 외화를 방출할 수밖에 없었고요. 그래서 한때 미국 달러나 중국 위안화의 가치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최근 북한 시장의 환율을 조사한 일본의 대북 매체인 ‘아시아프레스’의 보도를 보니 국경 지역에서 달러당 원화가 거의 8천 원에 육박하고, 중국 위안화는 900원에 가까울 정도로 올랐는데요. 다시 북한 원화보다 외화가 귀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 최근 위안화와 달러 환율이 오르는 원인을 살펴보니 북중 무역 재개가 임박하면서 무역 회사들이 필사적으로 외화를 모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 외화를 모은다는 것 이 무슨 의미인가요 ?
[김혜영] 그건 당연합니다. 북한 돈으로 어떻게 무역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무역할 때 달러나 위안화 등 외화가 필요한 데, 그 동안 외화벌이도 잘 안돼서 보유한 외화가 많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국내에 있는 외화를 더 끌어모아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죠. 왜냐하면 코로나 대유행 이후 북중 국경 봉쇄 때문에 일반 주민들도 외화를 축적할 수단이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대북 송금도 어렵고요. 북중 간에 무역과 인적 교류가 끊어지면서 외화 거래가 막혔습니다. 이미 외화가 부족한데, 갑자기 이를 확보하려니 달러나 위안화의 가치가 급등할 수밖에 없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환전상들이 환율 차이를 이용한 돈벌이에 나서겠지만, 이전만큼 쉽지 않을 겁니다.
- 혜영 씨 도 북한에서 무역을 할 때 주로 외화로 거래하셨죠 ? 북한 무역에서 외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큰가요 ?
[김혜영] 제가 북한에서 무역을 했을 당시는 북한 돈으로 아예 거래할 수 없었습니다. 대중 무역이 제일 많았는데, 북중 무역 초장기에는 중국 경제도 지금처럼 좋지 않아서 중국 위안화가 어떤 화폐인지조차 몰랐습니다. 무조건 달러 거래였죠. 그때는 달러 위조지폐가 많았기 때문에 이를 가려내는 기계까지 외국에서 들여왔습니다. 일본 엔화도 많이 사용했는데요. 북한 돈은 누구도 쓰지 않았고요. 국내에서도 북한 원화를 외화로 바꿔쓸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당연히 무역에서 달러를 선호할 것이라 생각하고요. 중국 위안화도 많이 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북한 당국의 외화 단속에도 결국 , 북한 돈에 대한 불신 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 북한 돈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
[김혜영]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차지하는 경제적 역할이나 규모가 작기 때문에 북한 돈의 가치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북한 내에서만 통용되는 거죠. 외화벌이용 약초나 고사리 등 무역회사에 바치는 할당량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사들일 때도 북한 원화로 지급합니다. 절대 달러나 위안화를 주지 않죠. 또 북한 당국이 이전에 화폐교환을 자주 했고, 그때마다 열심히 모았던 자산을 다 잃게 되면서 북한 돈의 가치를 믿지 않게 된 겁니다. 자산을 보호해주는 은행과 같은 안전장치도 없다 보니 개인 자산을 모두 달러나 위안화로 바꾸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 된 겁니다.
그러다가 북한 돈을 달러나 위안화로 바꿔주고 이윤을 챙기는 환전상들이 등장했고, 이들은 물건보다 돈을 거래하는 일에 더 큰 재미를 보게 됐죠. 외화가 하나의 상품이 된 겁니다. 또 북한의 외화 상점에서 물건을 사는 것도 달러나 위안화가 당연할 만큼 외화가 북한 시장 경제를 주도하는 주요 화폐가 됐는데요. 그러다 보니 김정은 시대에 외화를 단속하고 북한 돈을 쓰라고 하지만, 이미 시장에서는 크게 신뢰하지 않고 있습니다.
- 북한 의 조선중앙은행이 작년에 ' 돈표 ' 라는 것을 발행했는데요 . 임시 화폐 ( 쿠폰 ) 같은 겁니다 . 그런데 돈표도 잘 안 쓴다고 하는데요 . 돈표에 대한 불신 도 크다고 할 수 있나요 ?
[김혜영] 당연히 안 쓰죠. 공식 화폐도 신뢰하지 않는데, 돈표를 믿겠습니까. 돈표도 북한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의도에서 만든 거라 생각하지만, 주민들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달러, 위안, 유로, 엔 등을 바랍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언제 어디서나 통용할 수 있는 안정된 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돈표와 같은 임시 화폐는 더욱 안 쓰려고 하죠. 게다가 돈표로 살 수 있는 품목도 한계가 있습니다. 거래가 안 되는 품목들이 많은 겁니다. 그러니 시장 경제를 통해 화폐 가치의 중요성을 알게 된 북한 주민들은 더 외화를 선호할 수밖에 없고요. 지금도 시장에서는 단속을 피해 위안화로 거래하고, 필요할 때마다 북한 원화로 바꿔 쓴다고 합니다.

- 최근 북중 무역 재개 분위기에 대해서 들어보신 내용이 있나요 ?
[김혜영] 지난달 말 단둥에서는 코로나 통제가 해제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대중교통도 단계적으로 정상화했고요. 그러면서 북중 국경과 북한 시장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고 합니다. 코로나의 위기에서 좀 벗어난 듯한데요. 이런 상황에서 북한도 무역을 재개하려면 돈이 있어야 할 겁니다. 그것이 달러나 위안화 등을 많이 확보해야 하는 이유인데요. 아마 무역회사들이 그 준비로 바쁜 날들을 보냈을 것 같은데, 그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앞으로 무역이 재개되고, 시장도 활성화해서 다시 지역과 생활 경제가 회복됐으면 좋겠습니다.
- 네 . 오늘은 김혜영 씨와 함께 최근 급등한 외화 환율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 ' 돈 버는 재미와 돈맛 '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전직 북한 무역일꾼 출신 탈북민 김혜영 씨와 함께 했습니다. 김 혜영 씨 , 고맙습니다 .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