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앞세웠던 북한에서도 시장경제는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지 오래입니다. 이제 북한에서도 '돈'은 사상이나 이념을 넘어 삶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자 가치가 됐는데요. 특히 돈을 버는 경제활동의 주체로 여성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탈북 여성 경제인의 시각으로 북한 실물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보는 '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한 경공업 분야 무역일꾼 출신 탈북자 김혜영 씨와함께합니다. 진행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 오늘도 김혜영 씨와 함께 합니다. 혜영 씨. 어느덧 올해의 마지막 시간인데요. 북한은 여전히 코로나비루스의 영향을 피해 가지 못했고, 경제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던 한해였습니다. 2021년 북한 주민의 생활을 어떻게 정리해볼 수 있을까요?
[김혜영] 그 어느 때보다 힘든 한해였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간간히 북한에서 전해 들은 소식 중에 희망적인 내용은 전혀 없었으니까요. 말씀하신대로 북한은 코로나의 영향을 전혀 비껴가지 못했고요. 많은 사람이 먹을 것이 없어 영양실조에 걸리기도 하고, 갑자기 장마당 장사를 못 하게 하면서 돈의 유통도 막혀버렸습니다. 또 북·중 국경이 계속 막히면서 대부분 식재료와 생필품까지 부족해졌죠. 돈주들의 돈은 바닥을 보였고, 많은 돈주들이 검열에 적발돼 붙잡혀 들어가면서 여러 가지로 고난의 한 해였습니다.
며칠 전 제 지인이 어렵게 북한의 가족과 연락이 닿았다고 합니다. 그 가족이 하는 말이 '여전히 이동 통제와 야간 통행 금지, 시장 단속 등으로 먹고사는 생계 수단이 막혀 있고, 돈과 먹을 것이 없어 너무 살기 어렵다'며 송금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송금 수수료가 50%나 되기 때문에 한국에서 약 200만 원의 돈을 보내도 정작 북한의 가족이 받는 금액이 5천 위안밖에 되지 않아 가족을 돕는 일도 순탄치 않았던 한해였습니다.
- 북한에서 여성들의 사회활동과 경제적 힘도 계속 향상돼 왔지만, 올해는 장사가 어려워지면서 여성들의 사회적·경제적 지위와 활동에도 지장이 많았을 것 같은데, 어땠다고 보십니까?
[김혜영] 북한에서 여성들의 위상은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 높아졌는데요. 여성들이 장마당에서 모든 장사와 거래를 주도했고 가정을 이끌어나간 데 반해, 남성들은 직장을 잃고 여성들의 장사를 돕거나 아이들을 돌보게 되면서 북한은 여성들의 시대로 변해갔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물론 올해 장사가 어렵고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였지만, 여성들의 지위, 경제적 영향력 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잘해 나갈거라 생각하는데요.
북한에는 김여정, 현송월 등 지도체제부터 여성들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또 여성들은 간부 등용도 쉽고, 신체적으로 약하지만, 악착같이 이겨내는 것이 북한 여성입니다. 또 유명 호텔의 식당 지배인이나 인민 생활 봉사직업의 대부분이 여성들이기 때문에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와 권위가 높아진 점도 있지만, 세대별로 남성들의 역할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여성들의 활동 범위가 넓어졌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올해로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집권한 지 10년이 됐습니다. 김 총비서가 지난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새로운 계획을 세웠는데요. 새로운 경제발전계획의 수단으로써 선택한 것이 '자력갱생'입니다. 당분간 계속 그럴 것이란 관측이 많은데요. 전직 무역일꾼 출신으로서 가능하다고 보시나요?
[김혜영] 언제는 자력갱생을 멀리했나요. 자력갱생은 오래전부터 외쳐 온 북한의 총동원 구호입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 무역일꾼으로 일했을 때도 늘 듣고 외치던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북한 주민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국가와 당이 우리에게 해 준 것이 뭐가 있냐'는 거죠. 내 힘으로 장사해서 먹고, 입었으며, 집도 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때부터 아버지, 손자 세대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자력갱생을 그칠 줄 모르니 답답한 마음입니다.
저도 무역일꾼으로 일해봤지만, 어떻게 중국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지금도 지방에는 생필품 공장들이 거의 가동되지 않습니다. 식료품 공장도 그렇고, 종이 만드는 공장도 섰습니다. 또 어느 공장에도 남아 있는 설비가 없습니다. 농업도 마찬가지죠. 농기계도 부족하고, 여전히 소로 농사를 짓는 곳이 북한입니다. 인력이 부족해 농사철마다 전 국민이 총동원돼야 하는 상황인데, 중국의 의존도를 줄이는 자력갱생이 과연 가능할까요. 아직은 중국에 의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올해 김정은 정권이 시장에 깊숙이 개입했습니다. 외화 사용도 단속하고, 시장 통제도 심해졌습니다. 이에 따른 파장과 영향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김혜영] 외화 단속이 목적이라면 평양에 있는 외화상점이나 외화를 쓰는 상권부터 없애야죠. 외화 사용은 아무나 단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 주민들이 자국 내에서, 시장 등에서 사용하는 것을 통제하는 건데요. 어느 특수계층만 외화 사용이 허용되고, 일반 주민들은 안 되고, 게다가 장사도 못 하게 하니 북한의 민생경제가 최악이라는 말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또 시장을 단속하면 도대체 어디에서 먹을 것과 입을 것, 생필품들을 얻을까요. 외화 단속 때문에 탈북민 가족이 송금을 해도 다시 북한 원화로 바꿔야 하는데, 환율이 지금도 낮기 때문에 중국 위안화를 북한 원화로 바꿀 경우 돈의 가치가 훨씬 떨어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래도 북한 주민들은 중국 돈 사용이 편해졌습니다. 또 중국 화폐는 앞으로도 바뀔 일이 없으니 안전하고요. 중국을 상대로 무역을 하는 기관에서도 북한 돈으로는 절대 무역을 못 합니다. 그래서 달러나 중국 위안화를 쓰는데, 아마 북·중 국경이 열리고 무역할 때면 다시 쓰게 되겠죠. 지금은 단속 때문에 조금씩 북한 돈으로 바꿔 쓰겠지만, 이미 북한 돈을 신뢰하지 않은 지 오래됐기 때문에 아는 사람끼리는 여전히 중국 돈으로 거래한다고 들었습니다.
- 북한이 경제발전을 위한 내부역량의 강화를 위해 북한의 관료주의, 부정부패 등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이에 대한 대책 마련도 강조되는데요. 관료주의, 부정부패의 척결 의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가능할까요?
[김혜영] 북한에서 부정부패가 왜 기승을 부릴까요. 모든 것이 부족하고 살기 어려운데 부정부패가 안 나오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누구나 배고픔 앞에서는 당, 권력은 물론 수령도 없어집니다. 그러니 부정부패는 당연히 당의 잘못인 겁니다. 물론 김정은 정권이 '인민대중제일주의'를 내세워 사상 통제를 강화하고, 구조적 문제점을 개선하면서 민심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부정부패 근절을 내세우고 있는데요.
하지만 그동안 뇌물이 북한 주민의 경제활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이를 통해 장사도 하고, 무역도 하면서 상권이 돌아갈 수 있었던 거죠. 예를 들어 국가의 자산을 자신의 이익으로 돌리거나, 공평한 분배를 저해하는 부정부패는 당장 척결해야 하지만, 일반 주민들의 상행위에서 나타나는 뇌물 등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북한은 그렇게라도 해야 먹고살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개혁이 있기 전까지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부정은 계속될 거라고 봅니다.
- 이제 연말입니다. 곧 새해도 앞두고 있는데요. 요즘 철에 북한 주민들이 서로 주고받는 선물이 있을까요?
[김혜영] 북한 주민들도 이맘때면 선물을 주고받으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 명절을 뜻깊게 보내려고 합니다. 음식을 나눠 먹고, 따뜻한 방한용품을 선물하거나 어린이들에게는 학용품이나 용돈을 주기도 하는데, 요즘처럼 민생경제가 최악인 시기에는 하고 싶어도 못 해주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일단 중국에서 물건이 많이 들어오지 않는 데다, 가격도 비싸고, 일단 사줄 현금도 없기 때문인데요. 어쩌면 올해 연말과 새해가 북한 주민에게는 서글픈 날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북한 주민들이 따뜻하고 행복한 연말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네. 돈 버는 재미와 돈맛,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전직 북한 무역일꾼 출신인 김혜영 씨와 함께했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