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협의그룹, 구체적 이행방안 등 넘어야 할 산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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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26일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핵협의그룹' 창설을 통한 확장억제의 강화를 선언한 것이 한미 간에 신뢰도를 높이는 중요한 조치란 평가가 나오면서도 구체적 이행 방안이 없는 상징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병철 한국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RFA에 “핵협의그룹 창설이 구체화되고, 한국이 협의 이상의 역할을 하기까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고 내다보면서, “이를 계기로 한국에서는 ‘자체 핵무장론’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나온 ‘핵협의그룹’과 관련해 노정민 기자가 이병철 교수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

“핵협의그룹(NCG) 구상에 구체적인 내용 빠져”

이병철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이병철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기자] 이병철 교수님,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담은 '워싱턴 선언'이 나왔습니다.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ative Group, NCG)'의 창설을 선언했는데요. 우선 이번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교수님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병철] 네. 개인적으로 확장억제와 관련해 이번에는 좀 의미가 있는 결과가 도출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 그런데 확장억제와 관련해 한국 국민들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이 저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의 생각이지 않을까라고 짐작해 봅니다. 특히 확장억제라는 것은 레토릭(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 담겨야 했는데, 이번 '핵협의그룹(NCG)'이 신설된다고 하지만,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내용이 많이 담기지 않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말했지만, 미국의 핵잠수함이 한반도 내 기항지에 정기적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담길지가 숙제로 남았다는 점에서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총론은 있지만, 아직 각론이 없다는 말씀이신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핵협의그룹’ 창설까지 남아 있는 숙제는 무엇일까요?

[이병철] 네. 일단 '워싱턴 선언' 합의문의 내용을 보면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 억제는 핵을 포함한 미국의 역량을 총동원해서 지원된다"라고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까. 사실 이런 입장은 미국이 오래전에 NPR이라고 하는 핵억제태세가 많이 담긴 내용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러한 내용들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NCG를 통해서 한미 양국이 이를 구체화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봅니다. 왜냐하면 양국은 핵 위기 상황에서 여러 가지로 시뮬레이션 훈련(모의훈련)도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로 선언했기 때문에 앞으로 이러한 것들이 지속해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한미 간에 더 밀도 높은 대화가 진행돼야 할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한국 입장에서 본다면 NCG에서 협의 이상의 역할을 확보하려는 한국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한반도에 핵무기는 재배치하지 않겠지만, 핵잠수함을 포함한 전략자산 전개를 확대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건 어떤 의미일까요?

[이병철] (미국의) 전략 핵잠수함이 한국에 기항하는 빈도를 늘리겠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한국과 미국 간에 군사 공조의 확대 심화가 분명히 합의됐다고 보는데요. 이것은 북한이 도발하게 되면 미국의 핵잠수함이 이전보다 빈번하게, 정기적으로 한반도 부근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분명히 심리적인 안정감이 올라가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동시에 다른 핵잠수함이나 핵 폭격기든 기타 다른 전략자산들이 한반도로 동원되면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봅니다. 앞으로 한미 양국이 이 비용을 어떻게 계산할지, 예를 들면 방위비 분담과 관련해 어떻게 조정할지도 지켜봐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번 워싱턴 선언으로 한국에서 뜨겁게 달아오르던 '핵무장론'이 수면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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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루이스 미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 교수는 미 NBC 뉴스에서 “이번 선언은 순전히 상징적인 것이고 미국이 뒤에 있다며 한국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미 NBC 뉴스 캡처

“워싱턴 선언으로 한국 내 ‘핵무장론’, 수면 아래로”

[기자] 미국에서는 이번 ‘핵협의그룹’ 창설을 통해 확장 억제를 강화하는 것이 한미 양국의 신뢰를 높이는 중요한 조치라고 평가합니다. 또 북한의 섣부른 도발을 방지할 수 있다고 전망하는데요. 한편, 일부에서는 “상징적인 선언일뿐 군사적 가치를 갖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정작 당사자인 한국에서도 “이것이 북한의 핵 공격 이후 대응이지, 억제가 될 수 있을까”란 의문을 제기하는 것 같습니다.

[이병철] 사실 '억제' 내지 '예방'이란 측면에서 보면 '워싱턴 선언'이 좀 미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롭게 만들어질 NCG라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나토식 핵 공유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왜냐하면 나토식 핵 공유라는 것은 실제 유럽의 5개 나라에 배치된 미국산 핵무기를 놓고 이러저러한 계획들을 짠 것이라면, 앞으로 만들어질 NCG는 한반도에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은 상태에서 협의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북한 핵을 억제하는 데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북한이 핵을 쏜 뒤 (미국이) 핵무기로 공격이 가능할 경우 이렇게 하겠다는 이야기를 밝힌 것이기 때문에 사전 예방적이고 억제하는 것과는 조금 거리가 먼 선언이 아닌가라는 분석도 타당하다고 봅니다.

[기자] 이번에 한미 양국이 확장억제 강화를 선언함으로써 대북정책의 유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북한을 적대시함으로써 대화와 협상의 통로가 막혔다는 건데요. 사실상 바이든 행정부와 윤석열 정부에서 북한과 대화와 협상은 더 어렵지 않을까요?

[이병철] 당연히 저도 어렵다고 봅니다 . 이번 워싱턴 선언으로 남북 관계와 미북 관계가 더 경색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생각하고요. 당연히 북한에서 나오는 반응도 비난 일색이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과 미국 모두 국내 정치적으로 (한국은) 총선이 있고, 미국은 사실상 대선 국면으로 들어갔다고 보는데요. 북한을 상대로 획기적인 관계 개선은 어렵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북한으로서는 시간이 흐르면서 특히 미국을 상대로 최고조의 도발을 시도하고,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타개해 북한 주도의 국면 전환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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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154발의 토마호크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는 미국의 핵추진 잠수함. / AP (AP)

[기자]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선언했는데, 만약 미국에서 정권이 바뀌면 이번에 합의한 확장억제 강화 (핵협의그룹 창설) 노력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요?

[이병철] 말 그대로 선언이지 않습니까 .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선언이니까 만약에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 NCG의 운명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번 워싱턴 선언이 한국민의 핵무장 열기를 식히기 위해 고안한 상징적 협의체로 보기 때문입니다.

[기자] 마지막으로 공동기자회견에서 수위는 낮았지만, ‘대만’과 ‘우크라이나’가 언급됐습니다. 중국, 러시아를 자극함과 동시에 한미일 3각 공조가 강조되면서 북중러 대 한미일의 신냉전 구도가 더 뚜렸해졌는데요. 이번 한미정상회담 이후 동북아시아 정세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이병철] 말씀하신 대로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어느 때보다도 아주 선명해졌다고 봅니다 . 따라서 동북아 정세의 기류가 매우 불안정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매우 건조한 상태에서 산불을 더욱 조심해야 하듯이, 동북아 정세의 발화점이 낮아지는 추세니까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북한 등 모든 관련국이 어느 때보다도 각별히 유의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기자] 네. 교수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의 이병철 교수와 함께 한미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확장억제 강화 방안인 ‘핵협의그룹’에 관해 분석해 봤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