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인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공개된 뒤 올해 최고의 흥행작으로 떠오른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에는 탈북민이 주요 등장인물 중 한 명으로 등장합니다.
‘탈북’, ‘총살, ‘강제북송’ 등 아픈 사연을 가진 이 극중 인물을 통해 북한의 인권 상황과 한국 내 탈북민의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나오는데요. 반면, 탈북민에 대한 편견, 오해와 함께 북한 당국의 체제 선전에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오징어게임’ 속 탈북민과 북한 인권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을 노정민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탈북, 강제북송 사연의 등장인물”
[지영 (이하 ‘오징어게임’ 중)] “북에서는 왜 내려 온 거야?”
[강새벽] “여기가 나은 줄 알고. 아버지는 강을 건너다 총에 맞아 강물에 떠내려갔고, 어머니는 중국에서 공안들에 잡혀서 다시 북으로 끌려갔고...”
한국 드라마 최초로 전 세계 90개국에서 시청률 1위를 차지한 ‘오징어게임’ 속 주요 인물인 ‘강새벽’의 대화 내용입니다.
드라마 속 ‘새벽’은 탈북민 출신으로 아버지는 탈북 과정에서 강을 넘다 총에 맞아 숨졌고, 어머니는 중국 공안에 붙잡혀 강제북송됐으며. 유일한 남동생은 보육원에 맡겨진 인물로 묘사됐습니다.
[브로커] 그게 맘 먹고 튄 브로커들을 찾을 방법이 없디. 당한 사람이 너뿐이 아니야. 몇 사람은 그것들 잡겠다고 단둥까지 직접 갔다가 오히려 공안에게 걸려서 북으로 다시 끌려갈 뻔했어. 다시 다른 브로커를 고용해야디. 그런데 니도 알갔지만, 또 새로 다시 시작해야 되니까니.
[강새벽] 얼만데요?
[브로커] 일단 니네 부모 소재 파악부터 다시 해야 되고, 요즘 국경경비가 삼엄해져서 강 건너는 비용도 많이 올랐고.
‘새벽’이 거액의 보상금을 놓고 목숨을 건 게임에 참가한 이유도 북송된 어머니를 데려온 뒤 동생과 함께 살기 위해섭니다. 또 마지막 게임을 앞둔 세 명의 생존자 중 한 명으로 드라마에서 차지하는 그의 비중은 꽤 큽니다.
북한의 대외선전매체인 ‘메아리’는 지난 12일 ‘이 드라마가 한국과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잘 꼬집었다’며 한국의 현실을 비판했지만, ‘강새벽’이란 등장인물을 통해 북한의 인권 현실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강새벽 (‘오징어게임’ 중)] 어릴 때 우리 마을에 전염병이 돌았어. 그때 마을 사람들이 매일 죽어 나갔는데, 군인들이 시체를 한군데에 모아 태웠어. 그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오빠까지 다 불에 탔어.
2020년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이수영 씨(북한 내 가족의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는 최근(10월 21일) RFA, 자유아시아방송에 ‘탈북’, ‘총살’, ‘강제북송’, ‘전염병’과 ‘집단화장’ 등의 내용이 오히려 북한 김정은 정권을 불편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에 대해 잘 몰랐던 전 세계 사람들 중 일부는 이 드라마를 통해 북한에 대한 관심을 두게 됐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수영 씨(가명)] 저는 북한 인권 상황을 알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가 있잖아요. 요즘은 북한 인권에 관해 관심을 안 갖는 사람도 많은데, 드라마의 인기를 통해서 관점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징어게임’을 시청했다는 그레그 스칼라튜 미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도 탈북민으로 등장한 ‘새벽’을 통해 북한을 비판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 아버지가 도강 중 총에 맞아 숨졌고, 어머니는 강제북송 당하고, 브로커에게 사기를 맞아 문제가 생겼고, 남동생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은 누나밖에 없고, 어떻게 보면 탈북민의 이야기죠. 오징어게임은 한국보다 북한을 비판하는 작품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
“탈북민에 대한 편견 생길까 우려도”
하지만 ‘강새벽’이란 등장인물을 통해 탈북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영국의 인권단체 ‘징검다리’의 박지현 대표는 최근(10월 18일) RFA에 ‘새벽’이 소매치기 출신으로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대변한 것이 같은 탈북민 출신으로서 불편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북한에서는 이런 모습을 체제 선전에 이용할 것이라고 박 대표는 덧붙였습니다.

[박지현 대표] 좀 많이 가슴 아팠어요. 왜냐하면, 많은 탈북민들이 한국에도 살고 영국, 미국에도 사는데요. 자본주의가 어떤 사회인지 알기 때문에 스스로 자립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굳이 탈북민을 그렇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매치기범으로 묘사했다는 것 자체가 아주 불편하고요. 북한에서는 북한 주민들에게 ‘자본주의 사회가 이렇게 나쁘다’, ‘당신들이 한류를 따라 배우고 있지만, 실제로 한국에 가면 탈북민은 사람대접도 못 받는다’는 선전에 힘을 실어준 것 같아서 저는 싫었습니다.
‘오징어게임’을 봤다는 박 대표는 ‘새벽’이라는 인물이 삶의 의지가 강한 성격의 소유자인데, 범죄자로 묘사함으로써 탈북민과 북한 인권에 관한 본질에는 전혀 접근하지 못했다고도 꼬집었습니다.
[박지현 대표] 이 드라마에 나오는 ‘강새벽’이란 인물은 강한 캐릭터잖아요. 자기 동생과 부모를 살리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인물인데, 그 모습을 좀 더 다르게 묘사했다면 더 멋있었을 거라 생각하니까 너무 슬펐고요. 돈이란 물질적인 것 때문에 무참히 죽어 나가는 사람들 가운데 탈북민이 있다는 것에 좀 분노했다고 할까요. 사람들이 집중한 것은 게임이었지, 탈북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드라마에서 굳이 탈북민이라는 캐릭터는 필요 없었다고 봅니다.
반면, 탈북민 출신의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8일에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인영 통일부 장관에게 “한국에 정착한 전체 탈북민들 중 56%가량이 취약계층으로 생활하고 있다”며 “오징어게임 속 강새벽의 사연은 드라마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에 가깝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수미 테리 우드로우윌슨센터 선임연구원은 최근(10월 14일) 미 외교전문지인 ‘포린어페어스’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오징어게임’의 성공 등으로 한국은 세계적인 문화 강국이 됐다”며 “이는 북한 주민들을 유혹함으로써 북한 독재에 도전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테리 연구원은 “한국 드라마를 통해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남한에 대한 동경이 더 커졌기 때문에 한국 문화가 북한에 들어가도록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 현명하다”며 “북한을 넘어 민주주의의 가치를 증진하기 위해 한국 문화를 활용할 기회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