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개혁∙개방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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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기자> 김정은 총비서는 과거 한 때 경제개혁과 개방정책 추진에 의욕을 보이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게 아닌가 하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문성희 박사님, 이번 8차당대회나 최고인민회의 내용을 보면 북한의 경제개혁이 후퇴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 데요?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 (사진 제공:문성희))

문성희 :네, 그렇습니다. 대표적인 경제개혁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에 대해 최고인민회의에서는 그 "생활력을 발양시켜 나가는 데서 지장이 있었다"고 총화하고 있어요. 이건 말 그대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잘 집행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는데, 좀 더 생각해보면 집행을 하려고 해도 그것을 방해하는 주객간적 조건이 있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들인가요?

문성희 :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과 함께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농촌에서의 포전담당책임제 등 개혁정책을 추진해왔지요. 7차당대회에서의 보고 등에서 직접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와 포전담당책임제를 언급하는 등 이런 정책을 밀고 나가겠다는 강한 의사를 표명해왔습니다. 그렇지만 경제 제재가 지속되고 게다가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경제 침체가 심화되었습니다. 원래 경제개혁정책을 추진하자면 외자가 들어와야 하는데 그 가능성이 거의 없다면 개혁정책을 추진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기자> 그러니까 외자도입이 어려워 개혁정책 추진이 어려워졌다는 말씀이신데 외국 투자자 입장으로선 경제개혁이 보장되지 않아서 투자를 꺼리고 있지 않을까요?

문성희 : 그런 측면은 있겠지요. 자본주의 나라 기업들이 투자를 했는데 경영 방식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그런 우려도 있지 않습니까? 해서 역시 개방과 개혁은 세트로 운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기자> 개방정책도 현재로선 추진력을 많이 상실한 상태인가요?

문성희 :개방 정책이야말로 제재가 풀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지요. 그렇지 않아도 과거에 무역 관계에서 신용을 상실케하는 일들이 있어 북한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려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봅니다. 합영법이 시행된 직후에는 재일동포 상공인들이 합영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이것도 비즈니스라기보다 애국적 성의를 바치는 그런 측면이 컸다고 봅니다.

<기자> 재일동포들이 북한에 투자했다가 별로 재미를 못 본 모양이군요. 어떤 걸림돌이 있었나요?

문성희 : 구체적인 기업 이름까지는 여기서는 말하지 않겠는데, 일본에서도 유명한 재일동포 상공인이 북한에 투자해서 양복 공장을 만들었는데, 결국은 그렇게 돈을 벌지 못했고 오히려 손해를 본 사례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조금씩 후퇴를 하게 된 것이지요. 물론 그 분들은 돈벌이보다 북한의 경제적 발전을 위해서 어느 정도는 희생을 각오했겠지만 그래도 손해가 막대해지면 후퇴할 수 밖에 없었지요.

<기자> 그렇지만 북한에는 현재 경제특구가 5개, 경제개발구가 19개나 있지 않나요? 이런 경제 특구와 개발구를 해외투자 유치에 활용하면 되지 않나요?

문성희 : 네, 물론 경제특구 중 가장 먼저 지정된 나선은 잘 돌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과의 경협이 중심이었던 개성공업지구는 한국이 철수를 한 뒤 재개하지 못하고 있고, 금강산관광지구 역시 2008년에 한국인 관광객 피살 사건이 있은 뒤 관광자체가 중단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황금평-위화도 건설, 신의주 일부지역 특구에 대해서도 추진되고 있다는 보도가 없습니다.

<기자> 북한 전역에 경제개발구를 설치했는데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문성희 :네,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로 경제개발구법이 제정되고 전국 곳곳, 심지어는 평양에까지 경제개발구가 설치되었습니다. 경제개발구를 만들어도 거기에 들어가려는 기업이 없으면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최근에는 경제특구나 경제개발구에 관한 언급조차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기자> 그런데 금강산관광지구는 남측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투자할 수 있게 하지 않았나요?

문성희: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금강산뿐만이 아니라 갈마에 비행장을 건설하거나 갈마관광지구 건설도 추진하고 있었지요. 원산과 금강산을 국제관광지구로 건설해서 외국인 관광객들을 많이 들어오게 할 구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갈마관광지구나 비행장 건설이 완공되었다는 소식도 없고, 아예 8차당대회에서도 전혀 언급이 없었습니디. 아마도 여기 건설은 중단된 상태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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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북도 사리원시 미곡협동농장 한 켠에 걸려 있었던 농장원 ‘노력일공시’ 표. 각 농장원들이 얼마만큼 일했느냐를 평가하는 표로 분조 인원수가 21-23명임을 알 수있다. (2008년 8월) 사진 제공-문성희

<기자> 결국 개혁, 개방정책이 중간에서 좌절되고 있는 듯한데요. 근본적으로는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문성희 :김정은 위원장은 아마도 북미 관계 개선을 실현해서 그것을 토대로 개혁, 개방정책을 추진하려고 생가했었지요. 그러니까 2013년부터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와 포전담당책임제를 추진해왔다고 봅니다. 원래는 2012년 2월에 북미간의 합의가 있었지요. 이것이 잘 추진됐더라면 2013년부터 실시하던 개혁정책이 잘 추진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북한은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같은 해 4월에 로켓 발사 실험을 했지요. 이것은 실패했지만 미국은 북한이 약속을 어겼다며 합의가 추진되지 않았지요.

<기자> 미북 관계가 그 시점에서 개선됐더라면 개혁, 개방정책도 잘 추진 되었을 거라는 말씀이신데요?

문성희 :네, 그렇습니다. 북한은 2013년 3월에 핵 개발과 경제건설을 동시에 추진하는 '새로운 병진노선'을 발표했는데, 이것도 목적은 국방비의 지출을 줄이고 경제건설에 힘을 싣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생각과는 달리 북미 관계는 오바마 정권 시기에는 안 움직였지요. 그렇지만 2018년에는 북미관계가 획기적으로 전환합니다. 북미 정상회담이 처음으로 열렸으니까요.

<기자> 그럼 이것이 북한 경제개혁, 개방 추진에 있어서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네요.

문성희 :그렇다고 봅니다.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 남북 정상회담이 진행됐지요. 거기서 문재인 한국 대통령은 아마도 핵 문제가 해결되면 경제 문제가 잘 풀릴 것이라고 자신의 구상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제시했다고 봅니다. 구상의 내용에 대해서는 1년 전인 2017년 6월에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에서 발표한 새로운 경제지도구상이라고 봅니다. 남북 경협으로 북한의 경제를 회복시키는 구상이지요.

<기자> 그러나 경제 제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은 남북 경제협력 재개도 불가능하는 것이 아닌가요?

문성희 :네, 그렇습니다. 북미 관계를 개선시켜야 남북관계도 북일관계도 개선 방향으로 나간다는 것은 북한도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북미 간에 핵 문제를 해결해야 경제 제재 문제도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도 잘 알고 있지요. 제재 문제가 해결되어야 본격적인 남북 경협도 재개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남북 정상회담 직후에 북미 정상회담을 한 것이고 우여곡절은 있어도 이번 만큼은 좋은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했지요. 아무리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해도 미국 대통령과 북한 최고지도자의 회담이 실현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성공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기자> 그렇지만 결국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은 결렬됐는데요.

문성희 :네, 이것은 북한에서 개혁, 개방 정책이 좌절되는 큰 계기가 되었지 않나 싶습니다. 동시에 2019년 신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언제라도 재개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것도 북미관계 개선을 예측해서 나온 제안이라고 봅니다.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제재도 완화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개성공단 사업도 금강산 관광도 재개되기 때문이지요.

<기자> 미북관계 개선이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자 북한이 개혁, 개방 정책을 일단 중단했다는 말씀이신가요?

문성희 :네, 그렇다고 봅니다. 제도상은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나 포전담당책임제를 아예 없앤 것은 아니다고 생각을 합니다만 잘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것은 물론 객관적인 조건도 있겠지만 북한 내부에 개혁을 잘 알고 추진하는 인재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어요.

<기자>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지요.

문성희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전원회의가 2월 8일부터 11일까지 진행이 되었는데, 거기서 김 위원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지금 나라의 경제를 추켜세우는데서 제일 걸린 것은 인재가 부족한 것이며 모든 사업을 대담하게 혁신하자고 하는 지금 새형의 인재를 키우는것은 절실한 과제로 제기되고있다." 그러니까 김 위원장의 의도를 잘 파악하고 그것을 실천해가는 그런 인재들이 모자라다는 것이지요.

<기자>북한에서 취재와 연구활동을 하실 당시 만나본 경제관료나 학자들이 많으실 텐데요, 실제 경제개혁과 개방을 위한 지식과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셨는지요?

문성희 :경제관료들은 어느 정도 경제개혁, 개방에 대한 지식이 있었습니다. 특히 합영을 추진하는 분들은 중국 등 외국에도 자주 갔다오시고 해서 어느 정도 외국 사정도 잘 알고 계셨어요. 다만 학자들은 여전히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원칙만 강조하고 있었지요. 질의응답시간에 제가 좀 반발을 해서 "북한도 시장경제를 도입하는게 좋지 않으냐?",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시장경제의 방법도 있지 않으냐?"고 했더니 굉장히 비판을 받았지요. 물론 그 분들이 저한테 속내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 분들 사이에서는 자본주의경제에 대해서도 연구를 하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제 앞에서는 그런 언두는 보이지 않앗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실지 현장에서 사업하는 관료들은 어느 정도 지식이 있지만 학자들은 잘 모르는 것이 아닌가, 중국과 같은 개혁개방정책은 오히려 비판적으로 배우고 있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기자>그렇지만 북한 스스로 이제껏 인재 육성에 애쓰지 않았던 것 아닌가요?

문성희 :물론 그렇지요. 북한에 평양과학기술대학이라는 대학이 있는데, 거기서는 한때 유럽이나 한국계 교원들이 북한에서 특별히 선발된 우수한 학생들이 서방의 경영 방식 등을 배우고 있다는 이야기었어요. 김 위원장의 의도를 잘 이해해서 북한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려면 북한에서만 배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 유학시키거나 그런 방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기자>마지막으로 북한 당국이 앞으로 미북관계 개선 등 정세가 나아지면 다시 개혁, 개방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시는 지요?

문성희 : 북한 지도부는 이제까지도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가 그것을 후퇴시키는 것을 반복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에서 공급이 차례지는 것에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시장이 번성하고 아래서의 시장화가 촉진되고 있다고 봅니다. 그 흐름은 이제 되돌릴 수 없다고 보기에 지도부의 정책에는 상관없이 경제의 시장화는 촉진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