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려 나온 군중집회서 북 주민 열의 찾기 힘들어”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과업을 관철하기 위한 평양시 궐기대회가 지난 5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6일 보도했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과업을 관철하기 위한 평양시 궐기대회가 지난 5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6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0:00 / 0:00

앵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 봅니다. 일본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편집장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 기자 > 북한 당국이 연일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 관철을 독려하고 나섰습니다. 지난 주에는 김일성 광장에서 경제목표 달성을 위한 주민 궐기대회가 열리기도 했는데요, 북한에 계실 때 이런 대중운동을 자주 접해보셨을 듯한데요,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문성희 평양특파원을 할 때 평양시군중대회를 여러 번 취재했습니다. 10만 명 군중집회라고 하니까 평양시민 10만 명이 김일성광장에 모여서 집회를 한 뒤 구호를 외치면서 거리를 행진하는 것입니다. 10만 명이 한 군데 모이니까 박력이 있었어요. 다른 나라 같으면 10만 명을 한꺼번에 모은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평양에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봅니다. 그건 구역마다 할당이 있어서 정해진 인원수를 확보하면 동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집회에 참가하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동원되는 것입니다. 동원이니까 집회가 끝나면 사람들이 해산하는 모습이 퇴근길에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집회 참가도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임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기자 > 행사에 참가하는 주민들로서는 강제로 동원돼 어려운 과업을 달성해야 한다는 독려를 받게 돼 연초부터 마음이 무거울 듯한데요.

문성희 집회에 참가한 주민들에게 속마음을 들어본 적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무겁다 한들 저한테 그런 속내를 말할 리가 없습니다. 다만 아까도 말했듯이 동원이니까 별로 열정적으로 참가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고요. 주민들이 아마도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집회가 시작할 몇 시간 전부터 대기를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996년에 금수산태양궁전 앞마당에서 진행된 김일성 주석 3주기 행사를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같이 해외에서 온 사람들은 시작하기 30분 정도 전에 가도 괜찮았습니다. 이건 1호행사, 그러니까 당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참가하는 행사였기 때문에 들어가는 사람들 모두 몸 수색을 받아야 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정말 오랜 시간 대기를 해야 했어요. 김일성 주석 기일이라고 하면 7월 8일이니까 여름입니다. 그늘도 없는 장소에서 몇 시간이나 대기를 해야 했기 때문에 쓰러진 사람도 있었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행사에 참가해서 사람들이 마음이 무겁다고 하면 좀 다르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행사는 행사니까 참가하면 그만. 그 정도로 밖에 북한 주민들도 생각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나온 어려운 과업을 달성해야 한다고 독려를 받게 돼도 그것을 그대로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 만큼 있느냐 하는 것도 있지요. 물론 공장 지배인 같은 중책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무겁다고 생각합니다. 떨어진 과업을 달성하지 못하면 어찌할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겠지요. 극단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책임을 져야 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Picture1.jpg
평안남도 안주시의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에서 종업원들이 화학비료를 담을 비닐 포대를 재봉틀을 이용해 생산하고 있다. (2010년 9월) /사진 제공-문성희 박사

< 기자 > 한편 북한에서는 지금 농촌지원사업이 대대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듯한데, 협동농장에 거름을 지원하기 위해 전국에서 나서고 있다는 군요. 결국 비료가 부족하니까 거름을 모아 농촌으로 보내고 있는 상황인데, 도시지역에서 거름을 마련해 농촌에 보내는 것도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닐 듯한데요.

문성희 원래 화학비료를 보장할 수 있으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2010년이었던가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를 찾은 일이 있습니다. 안내를 맡은 공장 일꾼은 무연탄을 이용한 '주체비료' 개발에 성공했다, 앞으로 비료를 더 많이 생산해 많은 협동농장들에 공급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비료를 생산하는 공정도 보여줬고, 비료를 보관하는 창고도 보여줬습니다. 아마도 그 때는 타산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잘 되면 화학비료 수입에 그렇게 신경을 안 써도 좋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주체비료'에 관한 언급을 관영매체에서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거름에 기대고 있는 것이지요.

노동신문 보도를 보니까 특히 황해남도에서 질 좋은 거름을 농장에 보냈다고 하는데, 당 8기 4차 전원회의에서는 농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힘을 놓는 장소로 황해남도를 언급하고 있지요. 앞으로 황해남도의 농촌들에 대한 지원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 기자 > 그런데 북한 당국은 곡창지대든 산간지대든 할 것없이 알곡을 정보(3천평)당 1톤씩 더 생산하라고 농민들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곡창지대와 산간은 여건이 꽤 다를 듯한데 일률적으로 1톤씩 더 생산하라고 다그치고 있는데 이래가지고 성과가 과연 나올까 의문입니다.

문성희 네, 말씀하신대로 곡창지대와 산간은 다르지요. 그러니까 일률적으로 1톤씩 생산하는 것은 좀 이해가 안 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정보당 1톤이라는 것은 아득바득 애를 쓰지 않으면 달성못하는 높은 숫자는 아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2010년에 황해북도 사리원에 있는 미곡협동농장을 찾았습니다. 여기서 안내해주신 여성 일꾼이 말하던데 '강성1호'였던가 그런 이름의 벼가 있어서 이건 정보당 10톤을 생산할 수 있는 벼라는 설명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벼는 드물기는 하지만 다른 농장보다 확실히 정보당 수확고가 높은 좋은 농장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니까 1톤이라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목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지도부도 어느 정도 타산해서 1톤 정도는 생산할 수 있겠지, 산간벽지도 곡창지대도 할 것없이 1톤이라는 목표를 세우면 그것보다 많은 톤 수를 생산해내는 농장은 반드시 있다고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주의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겠지요.

이번 전원회의에서 하나 주목한 것은 북한 지도부가 주민들의 식생활을 변화시키려고 하고 있는 측면입니다. 이제까지 옥수수와 감자를 많이 생산하라고 하고 있었던 것을 벼와 밀 재배를 늘리라고 하고 있지요. 물론 북한 사람들의 식생활의 기본은 쌀이었어요. 이밥에 고기국, 기와집에 사는 것이 김일성 주석 시기부터 전해져 온 인민생활 향상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1990년대 말의 고난의 행군시기를 거쳐 최근까지도 모든 주민들이 흰 쌀밥을 매일 먹을 수 있는 상황에는 아직 이르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북한 지도부는 올 해 그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밀가루를 많이 이용하라고 하는데 이건 빵이나 우동, 파스타 같은 것도 식생활에 도입해가자는 것이라고 봅니다.

2011년에 벌써 “우리 식생활도 많이 달라졌다. 아침에는 빵과 커피로 그만이라는 사람도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하는 당 간부도 있었습니다. 스위스에서의 유학 경험도 있는 김정은 총비서는 북한 주민들의 식문화를 바꾸고 벼 생산에만 기대지 않는 그런 먹는 정책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듭니다. 옥수수와 감자에 기대고 있었던 식생활을 빨리 흰 쌀밥과 빵을 먹는 쪽으로 가져가고 싶다는 마음이 아닐까요.

<기자>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정우, 에디터 박봉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