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외부문화유입 단속강화는 위기상황 방증”

0:00 / 0:00

앵커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객원교수 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와 함께 북한 관련 뉴스를 되짚어 보는 '한반도 톺아보기' 입니다. 최근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분석하고 전망해 보는 시간으로 대담에 박수영 기자입니다.

부진한 경제성과 …최고인민회의에 책임 전가 노림수

<기자>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8차 회의가 17일과 18일 이틀에 걸쳐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개최됐습니다. 동아시아에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한미일 협력도 강화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대남∙대미 메시지를 내놓으리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이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김정은 총비서도 참석하지 않았는데요. 이번 최고인민회의는 어떤 점이 가장 두드러졌다고 보시는지요?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 신문 외교 전문기자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 신문 외교 전문기자 (사진 제공-마키노 요시히로)

마키노 요시히로 :북한은 원래 최고인민회의를 매년 4월쯤 개최해왔는데요. 최근에는 1월에 열고 있습니다. 연말에 당대회나 당 중앙위원회를 열어 중요한 방침을 결정하고, 최고인민회의가 그 방침에 따라 자세한 내용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노동당이 최고인민회의의 지도기관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동시에 좋은 성과가 나지 않는 경제 부분을 내각이나 최고인민회의에 책임을 묻는 것 같습니다. 작년 말에 열린 당 중앙위원회에서 구체적인 경제 목표에 대한 보도는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최고인민회의에서 경제 부문 중 해결해야 하는 12개의 중요 과제를 거론하면서 목표를 달성하는 (해로 지정)했습니다. 경제 분야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이 책임은 내각이 진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김정은 총비서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노림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역으로 보면, 그 정도로 북한의 경제 상황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16일 김책제철소같은 기관과 경공업 공장들을 당 간부들이 방문했다고 보도했는데요. 반면 김정은 총비서는 최근 기관과 공장의 현지 시찰을 안 하고 있습니다. 최고 지도자가 현지 시찰을 하면 반드시 지도자 권위를 높이는 정도의 성과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반대로 보면, 그 정도의 성과를 기대하지 못한다는 뜻인 것 같은데요. 요즘에 그 정도로 북한 경제 상황은 좋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오빠” 등 남한 말투 단속 대상자 80% 젊은층

<기자>북한은 또 최고인민회의에서 문화어를 지키고 외래어를 단속하겠다는 내용의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채택했습니다. 이는 지난달부터 예고해왔던 건데요. 북한이 문화어를 보호하는데 열을 올리는 이유는 뭐라고 봐야 할까요?

마키노 요시히로 :평양문화어를 보호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에는 주로 세 가지 정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단일 민족으로서 조선민족, 즉 한민족을 중시하는 북한의 전통적인 정책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이는 김일성 주석이 강하게 주장한 정책인데, 1960년대부터 계속되어온 정책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한국 드라마나 할리우드 영화 같은 외부정보유입을 막고 싶은 노림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한국에 대한 강력한 적대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은 연말에 대구경 600mm 방사포의 전달행사를 노동당 본부 앞에서 열었습니다. 이 방사포는 부산까지 공격할 수 있는 무기이고요. 김정은 총비서는 당 중앙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한국은 우리의 명백한 적이다"라는 언급도 했습니다. 이렇듯 한국에 강한 적대감 때문에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1.JPG
Foreign reporters and their government guides follow, in newspapers and broadcast on television, the address by North Korean leader Kim Jong Un to the Workers' Party of Korea (WPK) congress, at a hotel in central Pyongyang 북한 평양에서 사람들이 신문에 실린 김정은 북한 총비서의 노동당 대회 연설을 읽고 있다. /Reuters (Damir Sagolj/REUTERS)

<기자>북한은 지난 해 11월 비사회주의 행위자를 대상으로 한 비판모임에서도 "남조선 말을 쓰지 말고 고상한 문화어를 쓰라"는 지시를 내리는 등 조선어 보호에 이전부터 큰 관심을 기울여 왔는데, 어떤 배경인지요?

마키노 요시히로 :한국말을 강하게 의식한 조치는 이미 2년 전부터 시작해 왔습니다. 2020년 12월 해외 드라마 시청, 음악 감상, 판매 등을 금지했던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 9월에는 청소년 생활 습관에 나라가 개입하는 '청년교양보장법'도 제정했습니다. 북한이 한국 드라마나 할리우드 영화 같은 문화침투에 심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한국 국가정보원이 2021년 7월 국회 정보위원회에 북한 당국의 대응에 대해서 보고했습니다. 이 보고에 따르면 북한 젊은 층 사이에서 아내가 남편을 '여보'라고 부르지 않고 한국식으로 '오빠'라고 부르는 등 한국의 영향이 많이 확대되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한국말을 쓰는 인간은 혁명의 적"이라 규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정은 총비서도 회의에서 공세적으로 나오고 사회주의 수호전을 추진해야 한다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단속 대상자는 80%가 10대부터 30대까지의 청년, 청소년층이라고 합니다. 북한은 젊은층 중심으로 나라나 당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 많아지는 상황을 경계하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은 말투뿐 아니라 청소년의 한국식 옷차림, 문화, 생활 방식을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북, 중국식 발음과 한자 사용 비방도 여전해”

<기자>그런데 조선문화어보호법이 아닌 평양문화어보호법이라 명시하는 것이 눈에 띕니다. 한국으로 치자면 한국어 보호법이 아닌 서울말 보호법과 같은 건데, 어떤 이유로 이처럼 표기하는 건지요?

마키노 요시히로 :네, 말씀하신 대로 조선문화어가 아닌 평양문화어라고 칭했는데, 이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평양문화어는 북한이 1960년대에 만들었던 말입니다. 그 당시 김일성 주석이 북한을 단결시키는 수단으로 '조선민족의 나라'라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같은 사회주의인 구소련이나 중국은 다민족 국가인 것으로부터 차별화하고, "조선은 조선민족의 단일 민족국가"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일성 주석은 조선민족을 결정하는 세 가지 요소인 언어, 문화, 혈통을 중시했다고 합니다. 그 세 가지 요소가 겹치는 재일교포도 같은 조선민족이라고 규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선민족이 쓰는 조선말의 표준어로 평양문화어라는 말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북한에도 지방에는 다른 사투리도 많이 있었죠. 다만 공식 언어로 쓰는 표준어가 평양문화어인 것입니다. 그리고 김일성 주석은 평양문화어를 지키기 위해 사회과학원에 언어 연구를 강조했다고 합니다. 또, '리'나 '련'은 한국말로 하면 '이'와 '연'인데 '리'와 '련'으로 발음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사진 2.jpg
최고인민회의 주석단에 포착된 김영철 북한이 지난 17∼1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8차 회의를 개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김영철 전 통일전선부장(붉은색 원)이 주석단 두번째줄에 자리하고 있다. /연합 (나기성/YNA)

<기자>북한이 과거 "조선어가 다른 나라 언어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한 사례도 있다고요?

마키노 요시히로 :네, 김일성 주석은 항상 남한의 말은 "외래어가 많고, 민족 언어의 특징을 잃어버렸고, 멸망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주석단에 앉아있던 김영철 전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의 경우에는 남북 군사협의에 출석한 후 한국이 쓴 말을 비방한 바 있습니다. 김영철 부장은 협상에서 항상 험악한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한국 쪽에서 그를 독사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한국 쪽 회담 출석자가 인사말로 "전화위복이라는 말도 있다. 남북 관계가 지금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개선될 때도 있으리라 기대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김영철 부장은 "전화위복이라는 말은 중국의 고사성어다. 너희들은 그렇게 중국이 좋으냐"고 비판했다고 합니다. 한편, 평양문화어는 김일성 주석의 정치적인 목적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영향은 항상 받고 있습니다. 북한은 과거 중국 사람의 이름을 조선식으로 읽었습니다. 예를 들면, 시진핑 주석은 시진핑이라 부르지 않고 '습근평'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정일 정권 말기 2011년에 일시적으로 현지 중국식 읽기로 변경한 바 있습니다. 그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10년 5월, 8월 그리고 2011년 5월에 중국을 방문해서 후계자 승계에 대한 지지를 호소한 바 있었습니다. 그때 중국 사람의 이름을 현지식으로 읽은 것은 중국에 대한 배려였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그런데 김정은 체제가 된 후 시진핑 주석은 2014년 7월 북한보다 먼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김정은 총비서는 화가 나서 북한 내 중국 드라마의 방영을 금지하는 등 심하게 반발한 바 있습니다. 그때부터 중국 사람들의 이름 읽는 방식을 다시 변경해서 조선식 읽기로 돌아갔습니다. 지금 북한과 중국 관계는 2018년에 회복됐지만 읽는 방식은 여전히 조선식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언젠가 현지식으로 바뀌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자>네, 마키노 기자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수영,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