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로개방 고대했는데 특별방역조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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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북한 당국이 호흡기질환의 확산을 이유로 닷새간 특별방역 기간을 선포하고 평양에 봉쇄 조치를 취한 중에 북한의 한 무역업자가 직접 중국에 전화를 걸어 북∙중 간 육로무역 개방의 지연에 아쉬움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최근 중국에서 코로나 환자가 급증하고, 대규모 정치행사를 앞둔 북한에서도 호흡기질환 사례가 증가함에 따라 방역 조치에 더 신경을 쓰는 분위기여서 북중 간 육로 개방 시기가 더 늦춰질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박수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무역업자 "소통이 또 늦어져서 안 됐습니다 "

북한 평양이 닷새간 특별방역 기간(1월 25일부터 30일까지) 중이던 지난달 27일, 중국 단둥의 한 대북 무역업자는 북한 무역업자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북한 무역업자는 ‘어떻게 지내시냐’는 안부 인사와 함께 ‘연초부터 소통이 좀 될까 했더니 또 이렇게 늦어져서 참 안 됐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이 무역업자는 RFA에 올해 초부터 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주, 중국 훈춘과 북한 나진∙선봉 등 북중 간 육로 개방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봉쇄가 계속되는 가운데 북한 무역업자로부터 걸려 온 이 전화는 당분간 국경이 열리기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을 줬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특히 훈춘 세관의 경우 중국 무역업자들이 세관 쪽으로 물건을 옮기는 등 개방 움직임이 분주했다가 다시 멈춰 섰다며, 최근 닷새간의 평양 봉쇄 조치를 볼 때 이미 북한에서도 올해 초부터 코로나 확산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또 북중 세관의 개방 여부는 늘 북한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데, 곧 열 것 같은 분위기였다가 다시 연기된 것은 중국의 코로나 확산이 영향을 끼친 탓도 있지만, 이번 특별방역 기간 선포를 보니 북한에서도 조심하려 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이 무역업자는 관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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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산으로 봉쇄된 북한 평양의 미래과학자거리 / 연합뉴스

실제 지방 도시에서도 인민반별 위생 반장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감지되기도 했습니다.

탈북민 최송죽 씨는 최근(1월 30일) 지인을 통해 양강도에서 독감과 폐렴의 확산에 대비한 방역을 강조한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RFA에 전했습니다.

[최송죽] 아이들한테 폐렴이 많이 온다고 합니다. 폐렴이 지금 코로나 증상과도 비슷하죠. 몸이 아프고, 기침하면 가슴도 아프고, 어른들도 코로나가 아닌 다 폐렴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북한 당국에서는 독감과 폐렴이라고 하면서 전염성이 있으니 마스크를 잘 끼고 다니고, (방역) 같은 것도 해야 한다고 선전하면서 인민반에서는 위생 반장들이 나와 회의도 한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유니세프(UNICEF) 전 평양사무소 보건담당관을 지낸 나기 샤픽 박사는 최근(1월 30일) RFA에 “폐렴과 독감이 코로나와 비슷한 증상을 수반하지만, 이 증상이 젊은 층에 치명적일 경우 코로나가 재확산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나기 샤픽] (코로나 증상과 비슷한) 발열 등을 수반하는 독감과 폐렴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질병들은 사람의 나이에 따라 정도가 다릅니다. 보통 이런 질병들은 나이가 많거나 다른 만성 질환을 가진 사람들, 또는 아이들에게 매우 심각합니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그 정도가 심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증상을 보이는) 모든 사람이 코로나 환자라는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 환자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와 유엔아동기금은 (1월 27일) 특별방역기간 중 북한 내 상황을 묻는 RFA의 질의에 “북한으로부터 어떠한 관련 정보도 받지 못했다”고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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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n is seen on closed street amid fears over COVID-19, in Pyongyang 코로나 확산으로 통제된 북한 평양의 모습 / Reuters (KYODO/via REUTERS)

“평양보다 지방과 북∙중 국경 지역이 더 위험”

북한 당국이 지난달 30일 0시를 기해 닷새간의 특별방역조치를 종료했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북중 국경을 비롯한 지방 도시가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나기 샤픽 박사는 평양에서 봉쇄 조치를 내렸지만, 이미 북·중 국경 지역에 더 많은 코로나 감염자가 있을 수 있다고 관측했습니다. 실제 북한 당국은 이미 평양과 양강도 혜산 등 일부 시∙도를 ‘준 안전지대’로 선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나기 샤픽] 북·중 국경 지역에는 (통계치보다) 더 높은 숫자의 코로나 감염자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어떤 나라라도 국경을 100%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탈북민 출신인 김 혁 한국 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 선임연구원도 (1월 30일) RFA에 이미 지방에 코로나 의심 환자가 예상보다 많을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김 혁] 단지 5일간만 통제한 것이 애매하긴 하지만, 평양을 통제한다는 것은 지방에도 (호흡기질환이) 많이 확산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은 닷새간 평양 봉쇄 조치와 관련해 북한이 대규모 행사와 북∙중 무역 재개 등을 앞두고 예방 차원에서 시행했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오는 2월 8일 ‘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과 2월 16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생일(광명성절)’ 등 대규모 정치행사를 앞두고 코로나 대유행을 예방하기 위한 사전 조치의 성격이 크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호흡기질환 증가 사태가 심각했다면, 닷새 만의 방역 조치로 끝나지 않았을 거란 주장도 적지 않습니다.

[김 혁] 사실 이번 코로나 정책은 과거와 다른 양상이 있습니다. 지난해의 경우 코로나 방역은 대외적인 영향을 더 크게 봤거든요. 대외적인 영향이라고 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서방의 강세 등이 많이 작용하면서 내부적인 소요 사태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코로나가 활용됐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같은 경우는 (주요 정치) 행사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사전적인 통제 측면이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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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단둥에서 북한으로 물품을 운송하는 중국 트럭 운전사와 트럭 / AP

조한범 한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도 1월 30일 RFA에 “북한은 지난해 열병식 직후 코로나가 확산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 특별방역 기간 설정을 2.8 건군절 행사를 치르기 위한 사전 조치의 성격으로 보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최근 중국에서 코로나 환자가 급증하고 북한에서도 호흡기질환 환자가 늘어난 가운데 북한의 대규모 정치행사들이 예정되면서 북한 당국도 방역에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올해 초 북중 간 일부 국경 지역에서 육로 개방 가능성이 컸지만, 당분간 열리기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 북중 국경의 분위기입니다.

이런 가운데 샤픽 박사는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무역 물자를 들이기 위해 코로나 방역 조치를 강화하는 듯 설명했습니다.

[나기 샤픽] 북한은 언제까지 계속 국경을 봉쇄할 수 없기 때문에 북·중 국경 개방과 자국민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고 있는 듯합니다. 즉, 통제된 개방인 거죠. 따라서 중국으로부터 물건을 들여오더라도 코로나 영향이 없을 때까지 대기시킨다거나 국경 지대에서 이동하는 사람들을 격리한다거나 할 수 있겠죠. 북한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중국과 무역을 영원히 차단할 수는 없으니까요.

김정은 북한 총비서는 지난해 9월 8일 최고인민회의의 시정연설을 통해 코로나 방역 조치를 강조했습니다.

당시 김 총비서는 ‘국가 방역 능력 건설’이란 주제 아래 “새로운 변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방심하지 말고,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백신 접종을 책임지고 실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기자 박수영, 에디터 박봉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