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부유층 자제들, 돈 써서 노력동원 피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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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 봅니다. 일본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편집장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기자> 북한이 사회주의애국운동 전개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문 박사님, 북한 당국이 연초부터 대중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먼저 북한의 대중운동, 직접 옆에서 지켜보셨을 텐데, 어떻던가요?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문성희 북한의 대중운동 형태부터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는 실제 현장에 나가 일을 하는 방법이 있지요. 농촌동원 같은 것도 하나의 대중운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농민들 뿐만이 아니라 청년이나 대학생들, 그리고 간부들이 직접 현장에 나가는 것으로, '나라 일에 직접 한 몸 바치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교양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 하나는 물건이나 돈을 바치는 방법이 있습니다. 애국미헌납운동 같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저는 북한에서 여러 차례 대중운동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하나는 농촌 총동원이지요. 취재를 위해 간부들과 만나고 싶다고 해도 ‘지금 농촌지원에 나가 있다’면서 만날 수 없다고 답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농촌에 가니까 대학생들이나 청년들이 농촌 일을 돕고 있었어요. 하지만 농장 입장에서 본다면 이건 결국 부담이 된다고 했어요. 왜냐면 모내기 같은 것은 전문가가 해야지 학생들이 가서 곧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아요? 결국 학생들에게 맡겼다가 농민들이 다시 모내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한 번 심어놓은 모를 빼고 다시 심어야 하니까 더 부담스러운 것이지요. “이렇다면 아예 안 왔으면 좋겠다”는 소리까지 들어본 일이 있어요. 그리고 아파트 건설 같은 것도 물론 군인 건설자들이 맡기는 하지만 대학생들도 동원됩니다. 그런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고층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떨어져 숨진 사람도 있다고 들어본 적이 있어요. 물론 제가 직접 보지는 않았고 소문이기 때문에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한 번은 총동원기간에 휴양소로 놀러 간 일이 있어요. 남포에 가는 길이었던가, 주민들이 나와서 도로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중년 여성들의 모습도 보였어요. 그 때 한 남성이 제가 탄 자동차를 멈추면서 이렇게 말하는거에요. “지금 총동원기간인데 어디 놀러갑니까?” 당시 그 분의 말은 ‘모두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너희들은 어디 놀러가느냐?’는 것이지요. 분노가 가득한 표정을 10년 이상이 지난 오늘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저도 정말 부끄러웠다고 할까, 잘 먹지도 못하는데 총동원이라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눈앞에 두고 소풍을 갔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부터 즐길 수는 없었지요. 이렇게 총동원 기간에 놀러 가는 것은 기본적으로 금지돼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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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열린 북한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결정을 관철하기 위한 근로단체들의 궐기대회 모습. /연합뉴스

잠시 언급했듯이 이렇게 현장에 가는 것만이 아니라 애국미헌납운동처럼 뭔가 물건을 바치는 것도 하나의 대중운동입니다. 제가 자주 북한을 오고 갈 때도, 창광거리나 희천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쌀 등 식량과 맥주, 담배 뭐 그런 것들을 증정하는 것이 ‘애국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인정되고 있었습니다. 돈을 바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돈을 바친 사람들 중에 한 젊은 여성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사람은 머지 않아 당원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기자> 그런데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사상무장까지 독려받는 주민들로선 그리 달갑지 않을 듯한데, 주민들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문성희 주민들이야 매해 대중운동에 참가하고 있기 때문에 습관이 되고 있다고 할까요? 별로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들은 못 보았습니다. 물론 자기들끼리 불만을 말하고 있을 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놀러가는 사람들을 엄하게 비판한 것은 그만큼 불만이 쌓여 있다고도 할 수 있지요. '우리는 동원돼 이렇게 아득바득 일을 하는데 너희들은 뭐냐?' 뭐 그런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종의 약속이라고 할까요? 북한은 어릴 때부터 집단주의사상을 교양받고 자랍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표어까지 있습니다. 해서 '동원이라는 것이 결국 모든 국민들을 위한 것이니까 의미가 있다'고 그렇게 교양받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표면상 대중운동을 비판하지는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역시 동원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돈이 있는 집 아이들은 동원을 피하기 위해 돈으로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방관청에서도 그것으로 돈이 들어오면 나쁠 것 없기 때문에 동원에 참가하지 않는다면 일종의 ‘벌금’이라고 할까요, 그런것으로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평양시군중시위 같은 것도 모두 동원입니다. 인민반 등을 통해서 하달이 옵니다. 그렇게 하면 참가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요. 물론 이런 군중대회에 참가하는 정도는 참을 만해서 별로 저항이 적지만 건설 현장 동원같은 경우는 가기 싫으니까 돈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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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지난 주말 지방 곳곳에서 대규모 궐기대회를 열어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정을 철저히 이행할 것을 다짐했다. 지난 10일 조선중앙통신은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결정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평안북도, 평안남도, 황해북도, 황해남도, 강원도, 함경북도, 함경남도 궐기대회가 8일에 각각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기자> 결국 이런 대중운동은 사상무장을 통해 경제난을 극복해 나가려는 방안인 듯한데 주민들을 다그치기만 해서 효과가 있을까요?

문성희 대중운동으로 경제문제가 해결된다면 북한은 벌써 강성대국이 됐을 것입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생각인데, 대중운동은 별로 효과가 없는 듯 싶습니다. 뭔가 국가적으로 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만 효과가 있지, 실지 그것으로 경제를 회복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주민들만 고생하는 것이지요. 대중운동이니까 그 기간에는 뭔가 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생기지요. 북한에서는 당대회 등이 있기 전에 '150일전투' '200일전투' 이런 식으로 목표 수치를 내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대중운동을 하지만 그것으로 많은 성과가 나왔다고는 듣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무리를 해서 보이는 성과를 올리려고 하니까 나중에 부실공사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니까 일시적으로는 성과가 나왔다고 과시를 하지만 나중에 그것이 가짜 성과였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면 '열심히 노력했던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그런 마음도 생긴다고 봅니다. 사상무장이라고 하지만 북한 사람들도 이런 대중운동으로 경제가 갑자기 좋아진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민들도 그렇게 열심히 참가하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기자> 앞서 잠시 언급하셨지만 청년조직을 중심으로 이미 애국미 헌납 운동이 이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주민들의 잉여 생산물을 국가가 가져가려는 의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군요.

문성희 네, 북한에서는 김정은 정권 첫 시기부터 포전담당제를 실시했습니다. 분조보다 작은 단위가 하나의 포전을 맡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족끼리 하나의 포전을 맡는 경우가 많아지지요. 포전담당제의 좋은 점은 국가에 바친 뒤에 남은 곡물 등의 처분권이 농민들에게 부여됐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남은 곡물을 국가가 직접 농민들에게서 되샀는데 포전담당제에서는 농민들이 현물을 그대로 시장에서 처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시장에 곡물을 파는 농민들도 생기고 해서 많은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번 돈으로 가전제품을 산 농민들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잉여 생산물이 농장에는 적지 않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식량난에 대비해서 비축해 놓았을 수도 있지요. 그런 잉여 생산물을 국가에 바치도록 독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신문 등을 보니까 애국미를 헌납한 사람들을 좋게 평가하는 보도들도 나오고 있는 듯한데, 이런 방식으로 농민들에게 잉여 생산물을 바치라고 독려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그런데 이미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에 대한 자율 처분권을 확대하는 농업 개혁 조치는 최근들어 계속 후퇴해 왔는데요, 과연 국가에 헌납할 쌀이 남아 있을지 걱정입니다.

문성희 네, 저도 그 측면이 궁금합니다. 김정은 정권 첫 시기에는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등 경제개혁정책을 실시했습니다. 농산물에 대한 자율 처분권을 확대하는 포전담당제도 일종의 개혁정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노이 북미 회담이 결열된 뒤 북한에서는 개혁이 침체되었다고 봅니다. 최근에는 경제개혁보다 통제경제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포전담당제도 흐지부지되고 있다고 보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과연 잉여 생산물이 있을까'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다만 농민들도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일정한 곡물은 비축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기에 고난의 행군을 겪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다시는 그런 고생을 겪고 싶지 않다는 절실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정우, 에디터 박봉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