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중앙서 지원없이 지방 간부들 기강잡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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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 봅니다. 일본에서 북한 전문 언론인으로 활동 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 기자 > 북한이 지난해 국토관리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지역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문 박사님, 먼저 북한 당국의 이번 비판, 어떻게 봐야 할까요?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문성희 : 북한은 김정은 정권 들어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간부 등 뭐든 할 것없이 공개적으로 비판해왔습니다. 부정적인 것도 숨기지 않고 공개해왔지요. 예를 들어 건설 중인 아파트가 붕괴돼서 사람들이 죽은 사고가 있었는데 그 사실도 공개하고 책임을 물었습니다. 이번 비판도 그런 연장선에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놀랄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국토관리분야에 대한 비판은 그동안 그리 많지 않았다고 봅니다. 아마도 국토관리를 잘 수행했다면 방지할 수 있었던 수해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새삼스럽게 비판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제가 1996년에 북한에서 수해 지역을 취재했을 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침 고난의 행군 시기였는데 모두 난방을 해결하기 위해 산에 있는 나무를 제멋대로 베고 있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산에 나무가 없어져서 토사 유출을 방지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수해 피해가 컸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어요. 그 뒤 나무심기 운동이 활발히 벌어졌는데, 지금 다시 생활이 어려우니까 나무를 멋대로 베거나 그것을 군이나 시 단위에서 묵인하고 있을 수도 있지요. 그런 현상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고 단순히 일을 잘 안 하는 간부들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만큼 중앙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 지방 간부들이 있다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기자 > 말씀하신 대로 말씀하신 대로 간부들의 무책임과 태만이 큰물 피해를 낳았다면서 간부들의 기강을 다잡고 있는 듯 합니다.

문성희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런 측면은 있다고 봅니다. 지금 여러가지 사정은 있다고 보지만 중앙의 지시가 제대로 수행되지 않는 그런 현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 중앙에서는 자신들이 여러가지 보장을 못 하면서 지방의 책임을 묻고 그것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을 사상적인 측면에서 추궁을 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 상상됩니다. 책임을 아래 단위에만 묻는다고 할까요? 그렇지만 아래 단위 간부들에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우선은 근본적인 해결 방도를 중앙에서 찾거나 도와 주어야 하는데 그런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지방에 전부 맡긴다고 할까요, 그렇게 되니까 결국은 지방 간부들도 고민이 많겠지요. 그런 측면에서 지방을 중심으로 간부들의 기강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노동신문을 통해서 공개적으로 특정 지방을 콕 찍어 비판을 하면서 다른 지방 간부들에게도 간접적으로 경고를 주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지방 간부들 입장에서 본다면 이렇게 비판을 받으면 처벌이 동반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지요. 그러니까 당분간은 긴장을 해서 중앙의 지시를 관철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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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북한 주민들이 홍수로 무너진 제방을 재건하고 있다. /AP

< 기자 > 노동신문은 치산치수사업을 제대로 하지 않아 지난해 큰물을 미리 막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의 치산치수사업, 주로 어떻게 이뤄지던가요?

문성희 :치산 측면에서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산에 나무를 심는 운동을 전국적으로 벌였습니다. 제가 2003년에 평양 특파원으로 있을 때 그런 일이 한창 벌어졌습니다. 평양 교외에 있는 산에 재일동포들이 가서 나무를 많이 기증했습니다. 그래서 거기가 '애국림'이라는 호칭을 받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여성 상공인들이 기부를 해서 북한에 간염을 예방하기 위한 백신을 만드는 공장을 지었는데 거기 이름이 '애국예방약공장'이었습니다. 이렇게 북한에서는 해외동포들이 기부를 해서 지어진 공장 등에 대해서는 모두 '애국'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붙입니다. 이야기가 좀 다른 길로 샜네요. 하여튼 북한에서 치산이라고 하면 나무를 심는 것이 주된 사업이었습니다.

치수 측면에서는 물의 흐름을 제어하는 그런 노력이 많이 취해졌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서해갑문이지요. 이것도 제가 1996년에 직접 현장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그 때 대동강 물의 양이 갑자기 늘어나서 수심이 올라간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서해갑문이 위력을 발휘해서 높아졌던 수심이 다시 낮아진 적이 있어요. 현장 사람들은 ‘서해갑문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평양시내가 온통 물바다로 되었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갑문을 각지에 세우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는 특히 1995년부터 1996년에 걸쳐서 매해 엄청나게 큰 수해가 있었기에 그 뒤 치산치수사업에 많은 힘을 돌렸다고 생각을 합니다. 다만 정책은 세워도 그것이 그대로 이뤄졌는가 하는 것은 의문이고, 그러니까 지금 지방 간부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 기자 > 중장비가 부족한 북한에서는 하천정비나 제방공사에 주로 주민들이나 군인들이 변변한 도구도 없이 동원되지 않나요?

문성희 :네, 그렇습니다. 하천정비나 제방공사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건설에도 군인이나 주민들이 많이 동원이 되고 있다고 봅니다. 북한은 '동원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한 번은 이런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평양에서 남포 방향으로 자동차로 이동하고 있었을 때인데 많은 주민들이 대동강변에서 공사에 참가하고 있는 것이에요. 2010년대 전반의 일이라 시간이 많이 흘러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무슨 공사였던지 이제는 잊어버렸는데요. 하여튼 그 공사에 여성도 많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것도 각자가 자기 집에서 가져온 공사도구 같은 것으로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기본적으로 건설현장에 건설 전문가가 배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공사 방법이 예사였습니다.

희천발전소에서도 공사를 하는 모습을 목격했는데 어린 병사들이 낡은 마대자루를 이용해 시멘트 등을 운반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인력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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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함경남도 곳곳에서 폭우가 이어지면서 주민 5천명이 긴급 대피하고 주택 1천170여호가 침수됐다고 조선중앙TV가 5일 보도했다. 사진은 지붕만 남기고 물에 잠긴 주택들. /연합

< 기자 > 북한은 산과 하천이 많고 해안선이 많다며 국토관리가 곧 경제건설이라고 노동신문은 지적했습니다. 실제 북한에서는 큰물 피해가 자주 발생했었죠?

문성희 :네, 제가 아는 것 만으로도 1990년대 중반에 큰물 피해가 자주 발생했지요. 현장 취재도 했기 때문에 얼마나 큰 피해가 있었던가 하는 것을 직접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정은 정권에 들어서도 큰물 피해가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김정은 총비서가 직접 수해 지역을 돌아보고 상황을 파악한 것은 북한 관영매체의 보도 등을 통에서 알 수가 있지요. 저는 이런 지도자의 스타일은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중앙의 간부들이 큰물피해 현장을 직접 찾아서 수해가 자꾸 발생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잘 파악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노력도 없이 지방에만 책임을 묻는 것은 틀렸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나무가 모자라서 토사 유출을 방지하지 못한다든가 하는 건 인재적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집도 더 튼튼한 집을 지어야 하는데 큰물 피해가 발생하면 쉽게 무너지는 그런 집을 없애야 하지요. 자연재해는 피할 수 없지만 그래도 피해를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정우,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