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한반도 톺아보기' 저명한 한반도 전문가인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와 함께 북한 관련 뉴스를 되짚어 보는 시간입니다. 최근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분석하고 전망해 보는 시간으로 대담에 박수영 기자입니다.
<기자>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는 최첨단 무기인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발사하고 나섰지만, 북한은 여전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옹호하는 입장인 듯한데요. 북한이 러시아 편에 설 수밖에 없는 역사적 배경은 뭔가요?

마키노 요시히로 :북한은 원래 '스탈린이 만든 나라'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구소련은 김일성 주석을 최고 지도자로 지정하면서 한국전쟁에서 파괴된 북한의 재건을 지원했고, 북한에 대한 군사 지원이나, 시장 가격이 아닌 우호 가격으로 거래하는 등 경제 지원도 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평양의 고층 아파트는 1960년대까지 난방 설비로 온돌이 아닌 (러시아의 전통 축열식 벽난로인) 페치카를 많이 썼다고 합니다. 구소련은 당시 북한이 독자적으로 치료하지 못 하는 병에 걸린 북한 고위 당국자를 모스크바에서 무상 치료하는 비밀 협정도 맺었다고 합니다. 김일성 주석은 그 당시 "북한에는 국산 제품이 없고 나사 한 개까지 다 소련제"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1960년대에는 구소련과 자주외교 노선투쟁으로 평양 김일성 광장에 있던 거대한 스탈린 초상화, 그리고 70년대에는 마르크스와 레닌 초상화도 철거당했습니다. 그래도 1991년 12월에 소련이 붕괴할 때까지는 소련이 북한에 군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지원해왔습니다. 북한 입장으로서는 구소련은 군사, 경제적으로 불가결한 존재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기자>한편 1990년대에는 소련군 장교 교육기관 프룬제 군사대학에서 유학한 북한 학생들이 쿠데타를 모의하자 이를 눈치챈 러시아가 당시 러시아 대사에게 이를 고발한 사건도 있었죠. 이 사건도 북러 관계에 영향이 있었으리라 보이는데요?
마키노 요시히로 :프룬제 대학은 모스크바 시내에 있는 학교입니다. 프룬제 대학에 오래 유학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한 번 파견되면 5년간 유학한다고 합니다. 한 학년마다 70명, 다 합쳐서 350명이 파견됐습니다. 대학에서 헝가리나 불가리아 같은 동유럽 유학생과 같이 공부했는데 구체적인 전술을 학습할 때는 나라별로 따로 공부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나라마다 위협이 되는 상대방이 다르다는 사정 때문입니다. 북한 유학생들은 한국이나 미국, 일본의 전술이나 군사 정보를 공부하고 동유럽 국가의 유학생들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대해서 학습했습니다. 한편, 소련의 정보기관 KGB는 북한 유학생들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밀매행위를 하고 있는 사실을 북한 당국에 보고하겠다며 여러 가지로 협박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후에 KGB를 위해서 일하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강요했다고 합니다. 유학생들이 북한에 돌아가서 간부가 된 다음에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손성필 주 러시아 북한 대사가 이런 사실을 파악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보고하면서 수백 명에 달하는 북한군 장교가 국가 반역죄로 처형당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사건으로 북한과 러시아 사이에 큰 충돌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기자>그렇다면 구소련이 붕괴한 후 러시아는 북한에 어떤 입장이었는지요?
마키노 요시히로 :소련이 북한에 대해 방위 의무를 가지고 있었던 '북·소 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이 1996년에 무효가 됐습니다. 그리고 2000년에 체결된 '북·러 친선, 선린 및 협조에 관한 조약'에는 북한을 방위해야 한다는 항목은 삭제됐습니다. 러시아는 소련과 달리 북한에 경제 협력만 하고 군사 협력은 안 한다는 방침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11년 8월에 러시아 동시베리아의 울란우데를 방문해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했습니다. 한국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회담에서 러시아제 전투기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당시 저도 울란우데까지 가서 취재했는데 러시아 쪽에서는 김 위원장이 울란우데 시에 있는 헬리콥터 공장을 시찰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이는 러시아가 "전투기를 지원할 생각은 없고 민생용 헬리콥터를 제공하겠다"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다른 관계자에 따르면, 2015년 4월 김정은 총비서의 특사로 러시아를 방문했던 현명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러시아에 방공 미사일 시스템 S-300이나 원자력 잠수함의 설계지원을 요청했지만, 러시아는 협력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소련이 붕괴했을 때 북한은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같은 구소련 출신의 핵미사일 기술자 50명 정도는 섭외했지만, 이는 개인 간 거래였을 뿐이고 정부 차원의 군사지원은 다 없어졌다고 듣고 있습니다.
<기자>김정은 총비서가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지 7년만인 2019년 4월, 김정은 총비서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첫 북러 정상회담이 열렸죠. 이후 현재까지 양 정상 간 회담은 없었는데요. 당시 상황과 둘의 관계 그리고 현재는 또 어떤지 궁금합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당시 푸틴 대통령은 김정은 총비서에게 냉정하게 대응했다고 합니다. 러시아와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정상회담 당시 푸틴 대통령은 미국이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 (FFVD)' 에 변함없는 입장이라는 것을 김정은 총비서에게 전달하면서 "북한도 미국의 입장을 배려해야 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푸틴 대통령의 언급에 반발하면서 "미국은 어떤 보상도 없이 북한을 완전히 무장 해제하려고 하고 있다, 절대 속이지 말라"는 생각을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에 전달해 달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 총비서는 그 당시에 푸틴 대통령에게 제재 완화에 대해서 협력도 구했다고 합니다. 북한 노동자를 받아들이고, 북한의 수산물이나 광물도 러시아가 수입해야 한다고 호소한 겁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핵 문제에 대해서 "러시아는 북미 대화를 지지하고 있고 6자 회담을 열고 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만 답변했다고 합니다. 경제 관계에 대해서도 러시아는 수산물이나 광물을 수입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기 때문에 유일하게 "북한 노동자만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군사 협력에 관한 이야기도 없었습니다. 또 러시아는 김정은 총비서 환영 행사를 영빈관이 아닌 블라디보스토크역 앞에서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푸틴 대통령은 김 총비서가 돌아가기 전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당시 저에게 "일정상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환영 행사 영상도 김정은 총비서 뒤쪽에서 러시아 사람들이 졸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면서 "러시아가 너무 냉정하게 북한에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 시대에 들어서 북한에 냉정하게 대응해 왔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기자>그런데도 앞서 지난 2일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나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결의안에 141개국은 찬성표를 던진 가운데 북한을 포함한 5개국만이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앞으로 북한과 러시아 관계는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마키노 요시히로 :러시아가 북한에 냉정하게 대응해온 상황에서도 북한은 유엔 특별총회에서 러시아를 지지했습니다. 북한 소식통은 북한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싸움' 구도로 보고 있지 않고 '러시아와 미국 같은 서방국과의 대결' 구도로 보고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러시아를 비난하는 것은 북한에게 미국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지지하는 것과 똑같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또 북한은 핵이나 미사일을 개발하는 이유가 미국의 위협 때문이라고 설명해왔습니다. 이번에 미국을 지지한다고 하면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정당성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북한은 러시아를 계속해서 지지하리라 생각하고 있고요. 그리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은 최근 "러시아는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을 중심으로 러시아, 북한 세 나라의 블록 체제가 강화되리라 예상합니다.

3월 23일 도쿄 지방법원 밖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찍은 원고들은 북한으로부터 보상을 원하고 있습니다.
<기자>한편, 북한 정부를 상대로 한 재일 북송 사업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재판 결과가 23일 나왔는데요. 재판 결과와 일본 내 반응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마키노 요시히로 :귀국사업은 1959년부터 84년까지 진행됐던 사업이고, 재일 교포와 이들과 결혼한 일본인 여성 등을 포함해 거의 9만 3천 명 정도가 당시 '지상 낙원'이라고 선전된 북한에 갔습니다. 이번에 귀국사업으로 북한에 갔다가 탈북한 가와사키 에이코 씨 등 5명이 한 사람당 1억 엔(약 80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북한에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동경지방법원은 23일 판결에서 북한은 일본이 인정하는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일본 재판소가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조선총련과 함께 허위사실로 재일 교포들한테 귀국을 권유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이러한 행위를 한 후 소송까지 46년 이상이 경과되어 배상 청구 권리가 소멸했다고 하면서 원고 5명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가와사키 에이코 씨는 "재판소가 귀국 사업이라는 인권 문제에 여러 가지로 대응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소송이 인정되지 못해 울고 싶다, 인권 문제에 시효가 있으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원고단 변호사는 "북한 정부의 인권 침해를 일본 재판소에서 재판할 수 있다는 방침을 제시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국내에서 일어났던 권유 행위를 일본 법률로 재판할 수 있다면 일본인 납치 문제 같은 것도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가능성도 남았다"고 평가했습니다. 원고 5명은 이번 판결에 불만이 있으며 고등 법원에 항소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저는 들었습니다.
<기자>네, 마키노 기자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수영,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