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올해 초 미국의 '핵과학자회'가 지구종말의 시계(Doomsday Clock)를 3년 연속 자정으로부터 100초 앞으로 설정했는데요. 당시 핵과학자회는 미국과 북한 간 대화의 진전이 없었지만,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실험을 하지 않은 것을 핵 위기를 완화하는 긍정적인 요인으로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달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추가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북한발 핵 위기 고조에 대한 핵과학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노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러시아 핵 위협 , 북 고강도 도발 등 반영 안 된 지구종말 시계
[레이첼 브론스] 전 세계 과학안보위원회 위원들은 올해가 작년보다 안전하지 않은 상황을 고려해 지구종말의 날 시계를 자정까지 100초 앞으로 설정하기로 했습니다. 지구종말의 날 시계는 더 안전하고 건강한 지구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를 상기 시켜 줄 겁니다.
2022년 1월 20일, 미국의 핵과학자회(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가 주최한 ‘2022 지구종말의 날 시계’ 행사에서 레이첼 브론스 회장은 자정까지 100초가 남은 상황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핵과학자회는 이날 발표한 ‘지구종말의 날 시계’의 평가 자료 중 핵 위기 부문에서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이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극초음속미사일 개발을 추진하는 등 핵 현대화와 확장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전쟁 직전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점도 반영됐습니다.
반면, 긍정적인 부문으로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험 유예, 즉 모라토리엄이 거론됐습니다.
미북 간에 정상회담을 비롯한 대화의 진전이 전혀 없었지만, 북한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재개하지 않은 점이 핵 위기를 낮춘 결정적 요인 중 하나로 평가된 겁니다.
또 미국과 러시아가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을 5년간 연장하기로 합의한 점도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핵과학자회는 밝혔습니다.
하지만, 지구종말의 날 시계가 발표된 지 한 달 만에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전쟁이 길어지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올해 초부터 잇따라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해 온 북한은 마침내 지난 3월 24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렸으며 다음 단계로 7차 핵실험 가능성까지 커졌습니다.
또 미국과 이란 사이에 진행 중인 핵 협상 타결도 여러 난관이 남은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핵 위기가 급격히 고조했다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핵과학자회 측은 최근 북한의 고강도 도발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커지고 있는 핵 위기에 관한 (3월 29일) RFA의 질의에 “과학안보위원회가 만나 현 상황을 논의했다”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핵 위협은 더 커졌다”고만 답했습니다.
올해 초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핵 위기의 잠재적 인화점이 될 것으로 예견했듯이 재래식 전쟁에서 의도치 않게 핵무기가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겁니다.
핵과학자회의 공동 의장인 샤론 스쿼소니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도 (3월 28일) RFA에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실험이 당장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양 욱 한국 아산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도 (3월 30일) RFA에 올해 발생한 우크라이나 사태와 북한의 도발 등으로 지구종말의 날 시간이 자정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관측했습니다.
[ 양 욱 ] 당연히 지구 종말의 날 시간이 짧아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 지금 러시아가 마치 핵을 사용할 것 같은 태세로 계속 우크라이나와 대치 중이고, 북한의 태도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리고 이란 핵 협상과 관련해서도 명확하게 어떻게 될 거라는 게 안 나오고 있잖아요. 핵무기 사용이 줄기는커녕 핵무기를 가진 일부 국가들이 어설프게 사용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공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지구 종말의 날 시간은 불리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상징적 메시지임에도 북핵 위기 무시할 수 없어”
지구종말의 날 시계는 2020년 이후 3년 연속 자정으로부터 100초 앞에서 멈춰있습니다.
일부에서는 현상 유지만으로 희망적인 신호를 엿볼 수 있다고 평가하지만, 핵과학자회는 그렇다고 핵위협으로부터 안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아니라고 잘라 말합니다.
특히 북핵 위기가 고조되는 점에서 많은 핵과학자들은 우려를 나타냅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을 지낸 올리 하이노넨 미국 스팀슨센터 연구원은 (3월 29일) RFA에 북한이 핵과 미사일에 대한 추가 시험을 계속하는 가운데 실제 행동에 나설지에 대한 추세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올리 하이노넨]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확실히 지구 종말의 시계는 바뀔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크라이나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에 평화협상이 이뤄진다면 앞으로 반년 정도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또 북한에 대해서 말하자면,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지를 지켜봐야겠죠. 북한의 위협이 실존적이라면 그때 재평가돼서 지구 종말의 날 시계를 바꿀 수 있을 겁니다.
반대로 지구종말의 날 시계를 크게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자정으로부터 초침이 얼마나 떨어져 있든, 숫자에 민감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저명한 핵과학자인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은 (3월 29일) RFA에 지구종말의 날 시계가 현 위기 상황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보여주는 상징성과 정치적 의미가 더 크다고 평가했습니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지구종말의 날 시계의 의미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정으로부터 100초 떨어져 있는 것과 50초 떨어져 있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이미 자정에 너무 가까워진 이상 위협에 대한 예측 변수로서 가치를 상실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핵과학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 고조하는 미중 갈등과 러시아의 핵무기 위협, 북한의 고강도 도발 등이 전 세계의 핵 위기를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특히 북한이 더 강력한 미사일을 개발하고, 더 많은 핵분열성 플루토늄과 농축 우라늄의 생산을 늘려갈수록 북핵 위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는 한층 커질 전망입니다.
이렇게 북한의 추가적인 고강도 도발이 예상되면서 북핵 위기의 고조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서둘러 미북 대화와 북핵 협상이 재개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 6자회담에서 직접 협상에 나섰던 조셉 디트라니 전 대북특사가 (3월 25일) RFA에 “이제는 대화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조셉 디트라니] 우리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는 것을 목격했고, 7번째 핵실험을 강행하는 상황을 다시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긴장을 고조시키는 움직임을 멈추고, 협상 테이블에 앉아 대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지난해 핵 위기가 완화된 부분으로 평가됐던 북한의 태도가 급변하고, 추가적인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실험 가능성이 예고된 가운데 국제사회의 우려를 나타내는 지구종말의 날 시계의 초침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관심입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