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한반도 톺아보기' 저명한 한반도 전문가인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와 함께 북한 관련 뉴스를 되짚어 보는 시간입니다. 최근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분석하고 전망해 보는 시간으로 대담에 박수영 기자입니다.
<기자> '지상 낙원'이라는 허위 선전에 속아 북송됐다 탈출한 피해자 5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를 일본 도쿄지방재판소가 "시간이 오래 지나 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다"며 최근 (3월 23일) 기각했는데요. 원고 측은 이에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먼저, 판결 내용부터 자세히 짚어주시죠.

마키노 요시히로 :소송에 참여했던 원고 5명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북송 사업에 참여했고 2000년대에 중국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건너 탈북했다고 합니다. 원고들은 "북한이 '지상 낙원'이라고 한 선전은 허위이며, 북송된 후 아사자가 많이 발생했고, 이동의 자유도 제한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은 지금도 출국하지 못하고 있고 그들을 면회할 수 있는 권리도 침해당했다고 호소했습니다. 일본 법원 쪽에서는 일본 정부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북한 정부에 대한 소송은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북한 정부와 조총련이 사실과 다르게 선전했기 때문에 원고가 오판할 수밖에 없었다고 인정했습니다. 다만 일본 법원은 피해가 발생한 후 20년 정도가 지났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는 소멸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북한이 귀국을 권유한 지 이미 46년에서 58년 정도가 경과했고, 원고들이 일본에 귀국해서 소송하기까지 13년에서 17년 정도 걸렸기 때문에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원고들은 판결이 만족스럽지 않다면서 고등 법원에 항소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기자>피해자들이 북송사업은 '북한 정부가 주도한 범죄'였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뭔가요?
마키노 요시히로 :북한은 당시 북한이 '지상의 낙원'이라면서 일본에서 일어나는 (재일 동포에 대한) 차별이 없는 나라라고 재일 동포에 설명했습니다. 학교나 직업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하면서, 원하면 몇 년 후에 일본에 돌아가서 가족들과 다시 만날 수 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북한에 많은 돈을 헌금한 귀국자 이외에는 청진이나 함흥 같은 지방 도시에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학교나 직업도 자유롭게 선택하지 못했고 귀국자들은 집단 농장이나 광산에서 가혹한 노동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또 귀국자들은 자유롭게 일본에 돌아가지도 못했습니다. 귀국자들은 주로 편지로 일본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연락했지만, 검열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비판은 절대 쓰지 못했다고 하고요. 귀국자 사회에서는 일본에서 출발하기 전에 이미 사전에 정한 암호를 편지에 써서 일본에 남아 있는 가족들한테 절대로 북한에 오지 말라고 호소한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북한과 조총련이 당시 했던 선전 사업은 완전히 사기·허위행위라는 것은 이번 재판에서 인정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기자>그렇다면 당시 피해자들이 북송사업에 연루될 수밖에 없었고 또 일본 정부도 이를 막지 못했던 배경은 뭐라고 보시는지요?
마키노 요시히로 :당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 패배한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고, 재일 동포들도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일본에는 재일 조선인 즉,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도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한국의 이승만 정권이 재일 동포를 한국에 받아들이는 것을 반대했던 사정도 있고요. 일본 정부는 재일 조선, 한국인에 대한 복지정책으로 재정 부담이나 그런 정부 활동으로 인한 사회 불안을 우려하면서 귀국사업을 인정한 배경도 있었습니다. 일본 아사히 신문 등 여러 언론사는 당시 북한이 추진했던 천리마 운동을 선전하면서 귀국 사업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마련했습니다. 심지어 당시에는 북한이 경제적으로 한국보다 더 유리한 입장이었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으로 피해자들이 북송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만한 분위기가 마련됐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도쿄지방재판소는 지난 8월 김정은 총비서에게 법정 출석 명령을 내리기도 했지만, 재판 당일까지 북한 정부는 어떠한 반응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북한 정부는 북송사업에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 궁금합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북한은 이번 재판에서 대응하지 않고 계속 침묵했습니다. 그래도 2014년에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나 COI 보고서를 반영한 유엔 인권이사회의 북한 인권 결의안에 대해서 북한은 심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북한 노동신문은 북송 사업 60주년이었던 2019년 12월 평양에서 기념 보고대회가 열렸다고 보도하면서 "재일 동포의 귀국은 재일 동포들의 운명과 재일조선인운동의 강화발전에 큰 기회가 됐고, 인민대중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의 위대한 승리였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북한은 북송 사업에 대해서 사죄는 커녕 그 사업이 성공했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 사는 유명한 에세이 작가 오문자 씨의 아버지 오귀성 씨는 조총련에서 활동했지만 "북송 사업은 잘못된 사업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조총련은 그때 오귀성 씨의 말을 두고 "배신자"라고 비난했습니다. 조총련은 오귀성 씨를 비난하면서 이번 재판을 계기로 사죄나 잘못했다고 해명한 바가 전혀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북한은 앞으로도 상식 밖의 행동을 계속하리라 생각합니다.

<기자> <굿바이 평양>, <가족의 나라>등 북송사업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많습니다. 동유럽으로 이주한 북한 전쟁고아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김일성의 아이들>을 제작한 김덕영 감독도 최근 <이상한 낙원>이라는 북송사업 관련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데요. 영화 <이상한 낙원>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해주시죠.
마키노 요시히로 :김덕영 감독은 1965년생이고 어렸을 때 북한과 일본을 왔다 갔다 한 화물선 '만경봉호'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북한이나 조총련은 무서운 사람들이지만 가난해서 일본에서 생활할 수 없는 사람들이 북한에 간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탈북했던 사람이나 북한을 방문한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김 감독은 북송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3~4년 전부터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김덕영 감독은 이미 이번 재판에 참여한 원고 중의 한 사람인 가와사키 에이코 씨가 한석규라는 필명으로 2007년에 출판한 <일본에서 북으로 돌아간 사람의 이야기>를 한국어판으로도 출판한 바 있습니다. 감독님은 지금도 가와사키 씨를 온라인을 통해 계속 지지하고 있다고 하고요. 원래 2020년 중에 영화가 완성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신종 코로나비루스 때문에 감독님이 일본에 돌아가지 못해서 완성이 좀 늦어지고 있다고 저는 듣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달에 감독님을 인터뷰했는데 올해 중에 일본을 방문해 이번 재판 상황을 영상에 담아서 영화를 완성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기자>네, 마키노 기자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수영,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