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우크라이나에서 고전중인 러시아가 북한과 중국에 미사일 지원을 요청했다는 우크라이나발 기사에 대해 주북한 러시아 대사가 러시아가 북한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 무기를 요청한 적이 없다며 정면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과 러시아가 강력한 제재 탓에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비슷한 처지여서 군사적 협력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보도에 천소람 기자입니다.
우크라이나 침공 뒤 예상과 달리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어려움에 처한 러시아가 북한에 부족한 무기를 긴급히 공급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우크라이나 현지 보도가 나온 건 지난 5일.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지난달 중국과 북한을 방문해 미사일 공급을 요청했다는 내용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러시아와 북한 간 밀착이 주목받던 시점이라 당시 보도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앞서 북한은 유엔에서 압도적 지지로 채택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결의안에 찬성한 단 5개 나라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드로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 대사는 (12일) RFA에 장문의 전자우편을 보내 우크라이나 매체가 보도한 러시아와 북한의 미사일 협조에 관한 보도는 “진실성이 하나도 없다”며 러시아의 대북 무기지원 요청설을 정면 반박했습니다.
마체고라 대사는 이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상은 북한을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고 최근 2년 동안 러시아 대표단이 평양에 전혀 올 수 없었다”고 항변했습니다.
코로나 비루스 방역을 위한 북한의 엄격한 국경봉쇄 탓에 북한과 왕래가 쉽지 않은 상황을 언급하며 내심 억울하다는 태도를 보인 겁니다.
그는 나아가 러시아는 “역사상 단 한 번도 북조선 측에 미사일이나 다른 군사기술 장비를 부탁한 적이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또 “우리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나 다른 나라에 무기를 부탁할 가능성에 대한 추측 자체가 허황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마체고라 대사의 이런 태도는 1주일 전 RFA가 러시아 외무부와 주뉴욕 러시아 대사관 등에 보도 내용을 확인해달라고 요청했을 당시 응하지 않았던 데 비해 확 달라졌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군에 의한 민간인 집단학살 의혹 등이 제기되면서 나빠진 국제여론을 의식한 태도로 보입니다.
미국 국무부도 (4월11일) RFA에 보도 내용을 알고 있다면서도 보도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노 코멘트’라고 밝혔습니다.
국무부 대변인은 이어 미국은 북한을 포함한 다른 나라가 러시아에 물자지원을 하는지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북한에 대한 유엔의 제재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모든 유엔 회원국에 대북 제재를 이행하도록 독려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무기는 물론 관련 물자를 외국에 수출하는 것이 유엔 안보리 결의에 의해 금지된 행위임을 강조한 겁니다.
북한과 러시아 , 동병상련 입장
러시아와 북한을 둘러싼 ‘미사일 품앗이’ 의혹은 결국 두 나라가 자초한 셈이라고 한반도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 과정에서 구 소련 과학자들로부터 관련 기술을 전수받았을 가능성이 계속 제기돼왔기 때문입니다.
여기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동북아 지역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구도가 더 뚜렷해지고 있는 점도 이런 의혹에 한 몫 했다는 지적입니다.
조한범 한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북미 관계가 교착된 상황에서 북·러 관계를 강화해 돌파구를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합니다.
[조한범]북한은 제재라는 동병상련의 입장으로 러시아를 지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고, 러시아도 역시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상황이 맞습니다. 따라서 북한은 향후에도 북·미 관계가 교착된 상황에서 북·러 관계를 강화해서 돌파구를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어,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러한 보도는 러시아의 절박한 상황을 보여준다고 평가합니다.
[조한범]북한도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고, 탄약과 미사일 부분에 재고가 바닥난 러시아는 상당히 곤란한 입장이기 때문에 가랑잎이라도 붙잡고 싶은 입장이겠죠. 그러나 북한 역시 가난한 나라이기 때문에 탄약과 미사일의 재고가 충분하게 있을 리 없습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 도움은 줄 수 있겠지만, 러시아가 원하는 재고를 충족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하거든요. 따라서 그런 보도는 진위여부를 떠나서 러시아의 절박한 상황을 보여주는 거라고 볼 수 있고요.
북·러 간 '은밀한' 군사협력 가능성 커져

정성장 한국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러 간 군사협력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평가합니다.
[정성장]소련의 해체 이후, 북러 간 군사 협력은 상당히 위축되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북러 간 군사 분야의 교류는 있었어도 협력은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었는데요.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러 간 은밀한 형태의 군사협력 가능성이 커졌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국제적 고립과 경제제재에 직면한 러시아에 새로운 동맹국으로 북한의 가치가 상승하고 있다고 한국 부산외대 이신욱 교수도 내다봅니다.
[이신욱]소원했던 북·러 관계는 국제적 고립과 경제제재를 당하고 있는 러시아에게 새로운 파트너로서의 북한의 가치가 상승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중국과 연계하여 사회주의권 동맹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적 신냉전이 도래한 상황 아래서 사회주의권 국가인 북한, 중국, 러시아 간 신안보 동맹이 결성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고립된 북한에게 강력한 우방국이 돌아온다는 것은 다양한 방면에서 큰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이 교수는 평가합니다.
[이신욱]강력한 우방국이 돌아온다는 것은 국제적 고립 탈피, 경제 안보 파트너 확보, 에너지와 생산노동 협력 등 다양한 방면에서 북한에게 큰 기회라고 생각되고, 북러 양국은 국제 제재를 넘어서는 강력한 협력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만약 신냉전이 시작되고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 정상화가 시도된다면 북한은 국제 환경변화에 따른 가장 큰 수혜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량 국가’ 간 협력 도움 안 돼 vs. 미사일 기술 공유 가능성 있어

하지만 엄격한 대북제재에 직면한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받을 수 있는 도움은 많지 않다고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지적합니다.
[조한범]러시아가 원유를 제공할 수 있지만, 북한은 완벽한 고립상황에서 원유만으로 해결될 상황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전반적으로 국경 개방과 대북 제재 해제가 필요한데요. 러시아는 그런 효과를 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두 나라 간 협력을 통해 북한은 러시아의 군사적 기술과 식량, 에너지 등을 얻을 수 있다고 이신욱 교수는 진단합니다.
[이신욱]북한의 핵기술과 ICBM 기술은 구소련권에서 유출되었습니다. 북한이 자체 개발한다고 해도 자금력과 기술력이 부족하기에 (러시아와) 많은 군사 부분에서 협력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러시아의 최신예 전투기 도입, 킨잘과 같은 신무기 기술 등 군비 현대화 사업과 영변 원자로 현대화 사업, 러시아 전기공급 같은 에너지 협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소련 시대와 같은 협력이 가능합니다. 2020년 1월 이후 봉쇄되어 있는 북한에 제2의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리는 식량난이 현재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러시아가 대규모 식량 지원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북한과 러시아, 두 ‘불량 국가’ 간 협력은 서로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다고 조한범 선임연구원은 평가합니다.
[조한범]러시아 역시 마찬가지로 북한의 지지가 있다고 하지만 북한은 사실 국제적으로 '불량 국가'거든요.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 강화는 불량국가 간의 관계기 때문에 이미 국제사회가 러시아에 대한 비판 여론이 큰 상태에서 불량국가 간의 관계 강화는 크게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여기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는 러시아의 고전을 보며 북한이 오히려 쉽게 전쟁을 생각지 못할 거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정성장 센터장은 군사강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며 북한이 전쟁에 대해 보다 더 신중한 입장을 취하는 계기가 됐을 걸로 판단합니다.
[정성장]북한이 핵실험 혹은 ICBM 시험발사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하려고 하겠지만 반면에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고전하는 걸 보면서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고 상당히 어렵다는 걸 북한이 인식하게 됐을 거라 봅니다.
전 세계적인 지원과 지지를 받고 있고, 국민적 저항이 탄력을 받은 우크라이나.
이미 시작한 전쟁이 많은 희생을 초래했기에 아무 성과 없이 철수할 수 없는 러시아.
두 나라 간 전쟁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러시아가 북한과 신안보 동맹을 체결해 출구전략을 모색할지 관심거리입니다.
기자 천소람,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