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 분야를 중심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봅니다. 일본에서 언론인으로 활동 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 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해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북한에서 노동의 의미 달라… ‘당이 준 임무’”
[기자]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지난 1일은 북한에서 ‘근로자의 날’이었습니다. 이날을 대대적으로 기념하면서 근로자의 역할을 강조했는데요. 북한에서 생각하는 노동자의 의미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문성희] 매우 어려운 질문인데요 .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북한 집권당의 이름이 '조선노동당'이고 당 기관지는 '노동신문'입니다. 조선노동당이란 명칭은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당이란 뜻으로 볼 수 있지요.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에서 노동자는 혁명의 주력부대라는 위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노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 측면에서 보면 다른 나라에서 쓰이는 노동자의 개념과는 다르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농민에 대해 '낡은 사상을 가진 뒤떨어진 계급'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농민들을 잘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서 가장 힘이 있는 계급은 노동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근로자라는 말도 자주 쓰입니다. 노동당 이론잡지가 있는데, 그 잡지의 이름은 '근로자'고요. 농민에 대해서도 '농업근로자'란 말을 씁니다. 5월 1일은 북한의 명절로서 이날은 노동자들을 위로하는 뜻도 있어서 휴일입니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이날만큼은 직장에 안 가도 되는데요. 대성산 아래 있는 공원이나 모란봉 등에서는 직장 동료들끼리, 아니면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모여 낮부터 들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저도 2003년에 조선신보 평양 특파원을 할 때 들놀이를 취재했는데요. 북한 주민들과 함께 음식을 즐겼던 기억이 납니다.
[기자] 한편으로 북한에서는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 환경을 생각하기보다 생산 과업을 달성해야 하는 노동력으로만 보는 것 같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신성한 노동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문성희] 앞 서 말씀드렸듯이 북한에서는 노동자의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나라의 혁명과 건설에 이바지하는 일꾼이라고 봐야겠지요 . 당에서 명령이 내려지면 그것을 무조건 관철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임무라고 교양을 받아왔기 때문에 인권과 노동 환경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나라가 잘돼야 자기들도 잘 산다는 것이죠. 과거에 개성공단에서 한국 중소기업 관계자들도 경험했다고 생각하는데, 북한 근로자들이 노동자의 인권 의식이 희박하기 때문에 기업에서 주는 임금이 적든, 많든 고맙게 받았고, 잔업 같은 것을 한다고 해도 자신들의 인권이 침해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매우 순진한 노동자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제 추측입니다만, 외국기업들이 북한에 진출해서 가장 좋게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북한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이나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 등을 하지 않는 점일 겁니다. 그것은 노동 자체가 당이 준 임무로 여기도록 교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에게 '신성한 노동의 의미'에 관한 질문이 과연 통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김정일 총비서의 가르침을 높이 받들고, 당이 내세운 과업을 무조건 관철하는 것이 노동이다"란 답이 돌아오겠지요.

북 , 자동차보험 활성화… 혜택 가능성엔 의구심
[기자] 다음 소식으로 최근 북한이 자동차보험 사업 활성화에 나섰다고 합니다. 조선민족보험총회사에 따르면 “경제발전의 가속화에 따라 운수 수단 수요가 커지고, 이에 따른 보험봉사 활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보험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결국, 보험이라는 제도가 사적 재산을 인정하고, 그것을 보상해 주는 개념인데요.
[문성희] 북한도 사람이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보험이라는 개념은 당연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
가령 생명보험일 경우 일정 보험금을 보험회사에 냈다가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면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습니까 . 그런데 북한에서 보험 혜택이 과연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좀 의문이 듭니다. 예를 들어 북한에서 어떤 사람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사람이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내고 있었다면, 사망보상금이 유가족에게 지급돼야 하는데, 저는 그런 이야기를 북한에서 들어본 적이 없어서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동차보험 사업의 활성화라고 했지만, 현재 북한에서 자가용 소유자가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한국통계청에 따르면 북한의 자동차 등록 대수가 2021년 기준으로 25만 대 정도 된다고 하죠. 한국의 1% 수준에 불과하다고 하는데요. 물론 최근에 북한에서 자동차 대수가 많아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공용차일 것이고 자가용이 그렇게 많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개인이 보험을 필요로 하는 상황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혹시 박사님께서는 북한에서 개인 승용차를 가진 북한 주민을 만나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문성희] 제가 2003년에 평양 특파원을 할 때 한 여성 배우를 취재했는데요. 그 여성 배우가 취재 현장에 자신이 직접 승용차를 운전하고 나타난 것에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아, 이 사람은 역시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죠. 당시 저는 북한에서 비싼 자동차를 살 수 있다는 것에 한 번 놀랐고, 더군다나 일반인 여성이 자동차를 운전할 줄 안다는 것에 두 번 놀랐습니다. 그만큼 북한에서 일반 사람들이 승용차를 갖는 것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고요.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또 한 가지 궁금한 것이 북한에서는 은행도 잘 믿지 못해 저축이나 금융거래를 안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보험도 마찬가지로, 돈만 내고 나중에 혜택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지 않을까요?
[문성희] 네. 북한에서는 은행에 돈을 맡겼다가 나중에 그것을 회수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 집에다 돈을 모아놓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들었습니다 . 그렇게 집에 저축해 놓은 돈도 2009년 화폐교환 당시 국가에 빼앗긴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그런 저축도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북한 돈이 어느 정도 모이면, 그것을 외화로 바꾼다는 이야기도 들어봤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과연 보험 제도가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할지는 좀 의심스럽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보험금만 뺏기고 혜택을 못 받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보험제도라는 것이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보상을 받기 위해서 미리 보험금을 내는 것인데, 이건 완전히 자본주의적 발상이거든요. 과연 사회주의 나라인 북한에서 이런 제도가 가능할지도 의문이 듭니다.

[기자] 마지막으로 북한의 보험에는 자동차 업종을 세분화하고, 자동차에 관한 독특한 봉사 항목들이 추가됐다고 선전하고 있는데요. 북한에서 자동차를 이용한 서비스 업종과 경제활동은 무엇이 있을까요?
[문성희] 북 한에서 자동차를 이용한 서비스 업종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택시입니다 . 제가 2011년, 2012년에 북한을 다닐 때도 이미 많은 사람이 택시를 이용했습니다. 물론 지방에는 적었지만, 평양에서는 제법 비싼 가격임에도 택시 이용자가 많았습니다. 또 하나는 화물 수송인데요. 제가 아는 친구는 지방에서 트럭을 몇 대 사고, 지방에서 생산된 상품과 원료 등을 평양이나 대도시에 나르는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물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허가가 필요하겠지만, 그런 장사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외국인 손님들은 반드시 자동차나 버스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운전하는 운전기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가 평양 특파원을 할 당시에는 그런 운전기사들이 모두 봉사사업소라는 단체에 속해 있었는데요. 제가 이용한 자동차 서비스라고 하면 택시 정도였고요. 물론 택시뿐만 아니라 전용 자동차도 있는데, 여기에는 꼭 운전기사가 따라붙습니다. 그 정도로 북한에서도 자동차를 이용한 서비스 업종이 많이 다양화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네.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지금까지 언론인이자 학자인 문성희 박사와 함께했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봉현, 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