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한반도 톺아보기' 저명한 한반도 전문가인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와 함께 북한 관련 뉴스를 되짚어 보는 시간입니다. 최근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분석하고 전망해 보는 시간으로 대담에 박수영 기자입니다.

<기자>북한의 최고지도자 혹은 고위직이 긴 시간 연설문을 낭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김정은 총비서는 2019년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장장 7시간이나 연설했는데요. 이처럼 북한 최고지도자의 장시간 연설에는 어떤 배경이 있다고 봐야 할까요?
마키노 요시히로 :북한뿐 아니라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도 2017년 10월에 열린 중국 공산당 대회에서 쉬지도 않고 3시간 반 정도 정치 보고를 했습니다. 중국 당 대회 참가자 중에서는 밖으로 나간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요. 시진핑 주석 옆자리에 앉아 있던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은 시진핑 주석이 보고하는 동안에 큰 하품을 하면서 몇 번이나 손목 시계를 봤다고 합니다. 그리고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도 1970년 9월에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4시간 29분간 연설했다고 합니다. 카스트로 의장이 쿠바 내에서 했던 정치 보고에서는 10시간 이상 연설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일본 전문가의 말로는 공산주당 지도자가 긴 시간 연설하는 것은 전통과 정당의 성격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공산주의 정당은 민주적인 선거가 부재하므로 정권의 정당성을 증명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이 유지되어야 할 이유를 논리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입장이라서 이를 열심히 설명하려 하기 때문에 장시간 연설한다는 말입니다.
<기자>이렇게 긴 회의 내내 당 비서들이 끊임없이 필기하는 모습도 눈에 띄는데요.
마키노 요시히로 :탈북자 말로는 열심히 필기하는 것은 바로 충성심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회의장에서 공책과 필기구가 준비되어 있고 회의 중에는 계속 필기한다고 합니다. 출석자 입장으로는 필기한 메모가 다음 날 정부의 중요한 회의에 출석했다는 증명서가 된다고 합니다. 직장에 돌아가면 회의 출석자는 메모를 보면서 당이나 정부의 방침을 설명하는데 이는 그 사람들의 권위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필기하는 행위는 장시간 연설에 대한 졸음을 깨우는 하나의 수단이 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탈북자 말로는 장시간 동안 연설을 들어야 하는 상황에는 필기나 박수치는 그런 수단으로서 졸음을 깨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기자>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지난 중앙보고대회에서 보고 역할을 맡기도 하고 지난달 31일 최고인민회의도 주재하는 등 2인자로서의 입지를 유지하고 있는 듯한데요. 다음 중앙보고대회에서도 최룡해 위원장이 보고 역할을 맡으리라 보시는지요?
마키노 요시히로 :최룡해 상임위원장만 특별히 그런 입장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고요. 북한 내에서는 최고지도자만 특별한 존재이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다 똑같다는 게 북한의 입장입니다. 중앙보고대회에서 보고한 것이 권력자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최룡해는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측근이었던 최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이고 빨치산 혈통인 엘리트입니다. 이른바 형식적인 2인자라고 할 수 있고요. 북한이 누구한테 보고자를 맡길까 생각해봤을 때는 권력이 있는지 아닌지를 고려하는 것보다는 보고할 때 감정을 담는 사람을 피하고 담담히 이야기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보고 자체에 의미가 있는데 이를 개인적인 감정으로 변경하면 안 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담담히 이야기하는 명수로서 자주 보고자로 지명됐다고 합니다. 최룡해도 똑같은 이유로 보고자에 지명됐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기자>여전히 북미 간 경색된 관계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요. 이에 따라 북미 협상이 올해도 물 건너갈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또 최근 강경한 대미 협상 전문가로 알려진 최선희를 외무상에 임명해 우려가 더 커지는 가운데, 역대 북미협상을 잘 이끌었던 인물이 누군지도 궁금한데요.
마키노 요시히로 :북한에서 대미 협상을 잘 이끌었던 인물들은 모두 1980년대에 북한이 만들었던 임시조직 핵상무조의 일원이었습니다. 강석주 제1 외무차관, 김계관 제1 외무차관, 리용호 외무상, 최선희 외무상입니다. 그 중에서 과거 미국 정부의 평가가 가장 높은 사람은 리용호 외무상이었습니다. 리용호 외무상은 아버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서실장을 맡았던 엘리트였습니다. 리용호 자신도 영국 대사도 하고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북미나 유럽 사람들의 입장도 이해했기 때문에 미국은 리용호 씨의 유능한 협상 자세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2019년에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됐기 때문에 리용호 씨는 책임을 지고 외상에서 퇴출당했습니다. 아직 공표되지 않고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지방에서 노동이나 사상 교육도 하면서 이미 당 중앙에 복귀하지 않았을까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고요. 그리고 최선희는 외무성에서 리용호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저는 듣고 있습니다. 최선희도 외무상으로 활약할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기자>역대 최고지도자들의 대미 협상은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마키노 요시히로 :김일성 주석 시절에는 한국전쟁의 교훈으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기 시작했지만, 미국과 협상할 생각은 거의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1976년에 발생한 도끼 만행 사건에서도 미국이 항공모함을 파견했다고 하자마자 김일성 주석은 유감을 표시한 바가 있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미국과의 협상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고난의 행군으로 많이 불안해진 김정일 체제를 유지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미국과의 협상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2009년에 미국인 기자 두 명을 석방하기 위해서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 바 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그 당시 클린턴 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어려운 정치 협상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으니 긴장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정일 총비서는 클린턴 전 대통령와 협상했을 때 정치 얘기는 하지 않고 오로지 아리랑 (체조) 공연에 같이 가자고 하면서 심각한 이야기는 안 했다고 합니다. 같이 있었던 미국 정부 관계자 말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 클린턴 전 대통령을 이용했을 뿐, 북미 협상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김정은 총비서 때에는 핵과 미사일이 완성됐기 때문에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북미 협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트럼프 정권 시절에 김정은 총비서는 영변 핵시설만 포기한다고 고집하면서 회담은 결과적으로 결렬됐습니다. 이도 북한의 폐쇄적인 기질이 대미 협상의 실패가 계속되는 이유 중 하나가 되는 것 같고요. 앞으로 김정은 총비서는 또다시 미국과 협상하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또다시 같은 실패하지 않을까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자>네, 마키노 기자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수영,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