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딸 잇단 공개는 영국 왕실 따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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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저명한 한반도 전문가인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와 함께 북한 관련 뉴스를 되짚어 보는 '한반도 톺아보기' 시간입니다. 최근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분석하고 전망해 보는 시간으로 대담에 박수영 기자입니다.

, 오래전부터 각국 왕실 관련 자료 수집

<기자>김정은의 딸 김주애가 또 공식 석상에 등장했습니다. 앞서 화성-17형 시험발사 현장에 등장한 이후 발사성공 축하행사에 등장해 이번이 두 번째인데요. 지난번에는 '사랑하는 자제분'이라 칭하더니 이번에는 '존귀한 자제분'이라며 극존칭으로 바꿔 부르기도 했죠. 약 일주일 만에 딸의 모습을 또다시 등장시킨 북한의 노림수는 뭐라고 보시는지요?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 신문 외교 전문기자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 신문 외교 전문기자 (사진 제공-마키노 요시히로)

마키노 요시히로 :한 마디로 말씀드리자면, 김씨 일가를 일본이나 영국 왕실 같은 권위 있는 왕조로 만들고 싶다는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할아버지나 아버지와 달리 권력투쟁을 경험하지 않고 최고 지도자가 됐습니다. 김정은 총비서가 최고지도자가 된 근본은 세습과 백두산 혈통밖에 없습니다. 북한은 원래부터 사회주의와 모순되는 세습에 부정적이었습니다. (김정은 총비서의)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우에도 '능력 있는 사람이 우연히 김일성 주석의 아들이었다'는 논리를 썼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방침을 바꿔 세습을 공식화했다는 말입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달 27일 '화성-17형' 미사일 시험발사 관계자가 김정은 총비서에게 바치는 서한에 "오로지 백두의 혈통만을 따르고 끝까지 충실하겠다"고 쓰여 있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특히 요즘에는 '열린 왕실'이 세계적인 흐름이기 때문에 김정은 총비서도 딸을 공개하면서 세계 왕실과 똑같은 권위나 격이 있다고 강조하려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기자>북한이 권위 승계에 있어 과거에도 영국이나 일본 왕실을 따랐던 적이 있었는지요?

마키노 요시히로 :저는 20년 전에 "북한이 일본과 영국 같은 왕실의 자료를 모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북한은 1967년 유일사상체계, 1972년 주체사상을 각각 도입하고 최고지도자 신격화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생각했던 게 '어떻게 하면 주민들이 경외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였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강인덕 전 한국 통일부 장관은 중앙정보부 (KCIA) 간부로 1992년 11월 남북 대화를 위해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그 때 김일성 주석과 같이 점심을 먹었다고 하는데요,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옆에 있는 김일 제1부총리한테 질문하자 김 부총리가 바로 일어나 조금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 자세는 왕 앞에서 낮은 자세를 취하는 태국 왕실과 똑같은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선중앙텔레비전은 2016년 1월 의자에 앉아 있는 김정은 총비서에게 무릎을 꿇고 손으로 입을 가리고 보고하는 황병서 당시 총정치국장의 모습을 방영한 바 있습니다. 북한의 역, 공공시설, 가정마다 걸려있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도 2차세계대전 이전에 천왕 사진을 공공시설에 게재한 일본을 모방한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달 27일 김주애에 대해서 존칭을 쓰기도 했고요. 북한이 공식 보도에서 존칭을 쓰는 것은 최고 지도자의 가족, 즉 로열패밀리밖에 없습니다. 이것도 일본 황실에 대한 보도를 참고하고 있다는 겁니다. 제가 2017년에 입수한 북한의 태블릿PC에서도 '김정은 총비서'나 '김일성 주석'이라는 문자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굵은 글꼴로 바뀌는 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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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2인자'로 불렸던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이 김정은 총비서 앞에서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대화하는 모습이 2016년 1월 9일 북한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연합

둘째 딸 공개는 왕족으로 보이고 싶은 북한의 해외 겨냥 선전·선동

<기자>그렇다면 북한이 영국 왕실 혹은 일본 왕실을 참고하고 있는 이유는 뭐라고 봐야 할까요?

마키노 요시히로 :자기들의 권위에 자신이 없다는 뜻입니다. 특히 이번 행동은 국내보다는 해외를 향한 선전·선동 공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핵무기도 개발하고 있지만, 이는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는 노림수고요. 그러나 미국이나 국제사회가 북한을 공격하지 못하더라도 심각한 인권 문제를 일으켜온 김정은 체제를 정통성이 있는 정권이라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북한 입장으로서는 (정권의 정통성이 무시당하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자부심이 너무 높은 집단이라서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존경받고 싶고 세계 1위와도 똑같은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다. 따라서 겉모습만이라도 영국 왕실과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이는 알맹이가 없는 '싸구려 모조(cheap imitation)'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자>공개 석상에 등장한 김주애는 김정은 총비서 슬하 세 남매 중 둘째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어째서 첫째와 막내가 아닌 둘째만 모습을 드러내는 걸까요?

마키노 요시히로 :한국 국가정보원도 김정은 총비서에게는 2010년, 2013년, 2017년에 각각 태어난 자식들이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 총비서와 리설주 여사가 결혼한 시기가 2010년 6월이라는 보도가 있습니다. 2012년 2월에 결혼했다는 소문도 있고요. 저도 서울에서 근무했을 때는 김정은 총비서의 첫 번째 자식은 김주성이라는 이름의 딸이고, 리설주 여사가 아닌 다른 여성과 사이에 태어난 자식이라는 첩보를 들은 바 있습니다. 세 자녀 다 김정은 총비서와 리설주 여사 사이에 태어난 자식이라고 하더라도 김정은 총비서와 리설주 여사가 측근들하고 상의해서 가장 외모가 뛰어난 자식을 고른 결과라고 할 수도 있고요. 물론 김주애 씨를 먼저 공개한 것은 부모님의 큰 애정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다만 적어도 현시점에서 김주애 씨가 후계자로 육성되고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김정은 총비서는 30대이고 계속 최고 지도자의 자리를 유지할 생각이 있습니다. 과거 김일성 주석의 호위사령부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호위사령부 간 관계가 나빠져서 권력투쟁이 생긴 바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를 피해서 김정은 총비서는 김주애 씨를 '열린 로열패밀리'를 연출하는 역할로 쓰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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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n leader Kim Jong Un and his daughter attend a photo session with personnel involved in the test-fire of the Hwasong-17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김정은 총비서가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에 참여한 과학자, 기술자, 군 관계자 등과의 기념촬영회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27일 보도했다./Reuters (KCNA/via REUTERS)

세계 따라 '열린 로열패밀리' 연출…북 주민들에게는 반감만

<기자>말씀하신 대로 김정은 총비서는 북한 주민들에게 '열려있는 로열패밀리'의 모습을 강조하고 싶은 듯한데요. 대중에 자녀를 공개하고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효과적인 방법이라 보시는지요?

마키노 요시히로 :북한 주민들이 최고 지도자 가족의 모습에 공감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북한 경제는 아시다시피 너무 어려운 상황이거든요. RFA에서도 보도한 바와 같이, 북한 주민 중 많은 사람은 하루에 세 끼를 먹기가 너무 어려워 이를 걱정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주민들이 고급스러운 옷차림으로 김정은 총비서와 함께 등장한 김주애 씨를 경외하는 것을 저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역으로 보면 북한 당국자들도 이러한 상황을 알면서도 정치적인 연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국내보다 해외에 대한 선동의 의미가 크다고 저는 보고 있고요. 북한 당국은 국내에 불만이 많아져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북한 주민들의 불만들을 무시하고 강압적인 정치를 추진하려 함이 틀림없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기자>네, 마키노 기자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수영,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