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북 양곡전매제’ 결국 흐지부지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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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 봅니다. 일본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편집장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기자> 북한 당국이 장마당에서 식량유통을 금지한 듯하다는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종합시장(장마당)에서 식량판매를 전면 금지하고 당국이 운영하는 양곡판매소에서만 식량을 구매하도록 했다는 건데요. 문 박사님, 북한당국의 의도, 뭐라고 봐야 할까요?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문성희 북한은 이미 2005년에 양곡전매제를 실시한 바 있습니다. 흐름은 이렇습니다. 2002년에 북한이 경제개혁을 실시하고 이에 따라 종합시장이 생겼고 쌀을 비롯한 곡물들도 시장에서 팔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 조치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한 지도부가 국민들에게 식량배급을 못하게 되자 곡물의 시장 가격이 매우 높아진 사정이 있습니다. 원래 의도는 쌀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정부가 국정가격을 정하고 시장에서 거래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배급이 계속 중단되면서 결국 사람들은 시장에서 쌀을 살 수 밖에 없었고 시장가격은 계속 올라갔지요. 그렇게 되자 북한 지도부는 아예 시장에서 쌀 등 곡물을 거래하는 행위를 전면 금지한 것입니다. 대신 국가가 정한 양곡전매장에서 국정가격으로 곡물을 사고팔게 했습니다. 전매장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전문적으로 양곡을 판다는 것입니다.

이번 조치도 당시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아마도 쌀 가격이 폭등하고 높은 가격 탓에 시장에서 곡물을 못 사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이겠지요. 사람들 속에서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 과거 화폐교환을 실시해서 그것이 실패하자 그 당시 총리가 평양시민들 앞에서 사과를 한 일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런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해서 미리 정부가 조치를 취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큰 목적은 쌀을 비롯한 곡물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겠지요.

그러나 2005년에 실시한 양곡전매제도 한 때 실시되었다가 유명무실해졌습니다. 제가 2011년에 북한에 갔을 때는 시장에서 쌀 등 곡물을 팔고 있었습니다. 물론 당당히 팔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쌀 있어요?”라고 물어보면 안에서 꺼내주었습니다. 이런 비밀스런 거래로 단속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못 들었기 때문에 결국 이번에도 흐지부지되는 것이 아닌가 예상됩니다. 이번 조치로 쌀 가격이 안정될 지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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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 외곽지역에서 북한 농부들이 벼를 수확하고 있다. /AP

<기자> 김정은 집권 초기 농업부문을 포함한 경제분야에서 자율성을 확대해왔던 추세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조치군요.

문성희 네, 그렇습니다. 다만 북한 정부가 경제개혁을 실시한 목적은 시장경제로 넘어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배급제가 무너지고 시장가격이 폭등하는 것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습니다. 북한 정부 입장으로 본다면 곡물 생산량이 늘어 주민들에게 배급할 수 있게끔 곡물수급이 안정화되면 배급제를 부활시킬 생각은 있었다고 봅니다. 따라서 저는 당시 조치가 배급제 부활을 위한 일시적인 것이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결국 이런 시장체제에 사람들이 익숙하게 되자 배급을 기다리고 굶는 것보다 시장에서 쌀을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벌고 그것으로 시장에서 자유롭게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처럼 경제개혁이 실시된지 20년이 지났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 북한 당국이 통제경제로 돌아가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사람들이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게 된 것이지요. 시장화가 촉진돼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북한 정부로서는 사회주의, 그러니까 평등을 추궁하기 위해서는 이런 시장화의 움직임은 달갑지 않은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돈이 있는 사람은 잘 살고 돈이 없는 사람은 못 사는 그런 사회가 돼버리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정통성이 무너지는 그런 상황은 피하고 싶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지금 다시 경제를 통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그 하나의 전형적인 움직임이 양곡전매장에서의 곡물 판매로 보입니다.

저는 김정은 정권 첫 시기에 실시했던 개혁적인 농업정책이 좀 더 계속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정책 탓에 사람들마다 생활에서 격차가 생기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물론 시장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시장에서 쌀을 살 수 없는 주민들로부터 불만이 나오고 있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한 번 결심해서 내밀었던 정책을 당장 성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바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기다려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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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남도 강서군 석흥협동농장에서 북한군인들이 농민들을 도와 모내기를 하고 있다. /연합

<기자> 말씀하신 대로 이런 조치는 결국 식량수급이 원할하지 않아서 내려진 걸로 보이는데요.

문성희 네, 결국 북한 당국이 아무리 식량수급을 정상화하고 싶어도 생산된 곡물이 농장에서 올라오지 않으면 곡물을 확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농민들은 자기들이 피땀을 흘리고 생산한 곡물을 국가에서 비싼 가격으로 사주면 좋지만 국정가격은 한계가 있지요. 그러니까 시장에 가져가서 파는 그런 농민들도 있었다고 봅니다. 더군다나 포전담당제가 실시된 다음에는 남은 곡물 처분권은 농민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시장에 가서 파는 농민들도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이 제도가 좋았던 것은 국가에 바치는 이상의 곡물을 생산하기 위해 농민들이 생산량을 높이려고 애썼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자 생산량도 한 때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결국 포전담당제도 흐지부지되고 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농민들로선 일하는 재미가 없지요. 열심히 일해봤자 그것을 국가에 다 바쳐야 된다면 별로 수익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모순이 있다고 봐요. 그렇게 해서 결국 생산량이 올라가지 않으면 정부가 수급을 위한 곡물을 확보하지 못하고 그렇게 되면 수급도 원활하지 않다는 것으로 됩니다. 그래서 시장에 곡물이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양곡전매장에서의 곡물 판매 조치를 취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식량수급이 부활될 만큼 곡물이 국가에 바쳐지지 않는다면 시장에서의 쌀 가격은 더더욱 올라갈 그런 가능성도 있겠지요. 수급도 잘 안 되고 시장가격도 올라간다면 사람들은 살아가기에 더 답답한 상황이 되겠지요.

<기자> 그렇다면 당국의 이런 의도가 과연 실현될 수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문성희 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당국의 의도가 실현되자면 결국 생산량이 올라가고 농민들이 충분한 곡물을 국가에 바치는 그런 체계가 부활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정말로 생산량이 부족한 걸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비료나 농기구 등도 제대로 국가에서 공급해줄 수 없는데 생산량만 올리라고 하면 농민들 입장에서 본다면 별다른 방안이 없지요. 중국 등에서 비료나 농기구 등이 들어오거나 그렇게 되면 좋은데 이건 코로나로 인한 국경봉쇄가 해제돼야 가능하겠지요.

그리고 농민들이 자기들이 먹고 살기 위해 곡물을 제대로 바치지 않는 그런 상황일 가능성도 있지요. 이런 상황이 해결돼야 양곡전매제도 일정하게 성공할 수 있겠지요. 저는 양곡전매제 자체는 나쁘지 않은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일반 주민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싼 국정가격으로 곡물을 살 수 있으면 좋을 것이고 정기적으로 공급이 된다면 더 좋겠지요. 그러나 장기적인 전망이 아니라 단기적으로 문제를 풀기 위해 양곡전매 정책을 취한다면 결국 실패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문제를 풀자면 농업 생산량을 늘리는 것, 이것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료나 농기구 등 생산 향상에 필요한 온갖 수단을 국가에서 보장해주는 것 밖에 없지요.

<기자> 결국 북한 당국의 이번 장마당에서의 식량유통 금지를 포함해 반시장적인 강압적 경제정책은 북한의 현재 상황이 노록치 않다는 방증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문성희 북한 주민들 속에서 불만이 크다는 측면은 있겠지요. 역시 먹는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주민들로선 다른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배 고픈 것은 타협을 못 하지 않습니까. 북한 지도부로서도 반시장적인 강압적인 경제정책을 취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라도 먹는 문제만큼은 해결해야 한다는 그런 의도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결국 무엇을 하면 먹는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인지, 폭등하는 쌀 가격을 안정시키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 지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 하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조만간 다시 시장에서 쌀을 파는 쪽으로 전환이 될 걸로 봅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우니까요. 그렇게 됐을 때 시장가격이 더더욱 올라가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지. 언제까지 코로나로 인한 국경봉쇄를 계속하는지, 국제적인 제재를 언제까지 견디어낼 지 그런 것이 내년 북한 경제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중요하지 않을까요?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정우, 에디터 박봉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