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객원교수 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와 함께 북한 관련 뉴스를 되짚어 보는 '한반도 톺아보기'입니다. 최근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분석하고 전망해 보는 시간으로 대담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기자>한국 통일부가 지난 19일 최근 북한의 경제∙사회 분야의 특이 동향에 관한 문건을 발표했는데요, 북한 권력층의 사치품 구매 동향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짚어주시겠습니까?

[마키노 요시히로] 김정은 총비서가 최근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고급 시계를 착용하고,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 들려 방명록에 이름을 쓸 때는 고가의 펜을 사용한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당시 근처에 있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도 고급스러운 가방을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통일부에 따르면 김 총비서의 손목 시계는 스위스산 IWC 제품으로 한국 돈으로 약 1천만 원(미화 약 $7,400) 정도, 펜은 독일산 몽블랑 만년필로 약 1백만 원 정도(미화 $740), 그리고 김여정 부부장이 가지고 있는 가방은 프랑스산 디올로 약 1천만 원 정도의 가격이라고 합니다. 또, 김 총비서의 부인 리설주가 고급 시계를 착용하거나 딸 김주애가 고급 외투를 입고 있는 모습도 관찰된 바 있습니다. 북한은 '서기실' 지휘 아래 당 39호실 등을 통해 연간 수십 만 달러에서 수백 만 달러 상당의 사치품을 해외에서 들여오고 있다는 겁니다.
통일부는 북한의 '로열 패밀리'(김정은 일가)가 일반 주민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고 사치품 소비를 과시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은 총비서가 서기실을 비롯한 당, 군, 정부의 고위 간부들에게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겁니다. 일반 시민의 의견을 듣는 자세는 전혀 없다는 건데, 김 총비서가 일반 시민을 무시하는 경향이 사치품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일반 시민들이 그의 딸 김주애가 후계자로 지목되는 것에 대해 불만이나 불안감을 느끼더라도 무시한다는 겁니다. 김 총비서의 입장은 자신을 둘러싼 고위 간부들의 의견만을 '여론'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기자> 김정은 정권이 고위층 결집을 위해 연간 수만 달러에서 수십만 달러에 달하는 돈을 쓰고 있다는 지적인데요. 그럼 앞서 김정은 총비서의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은 어땠습니까?
[마키노 요시히로]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도 (김씨 일가는) 사치품을 매우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과거 김일성 주석의 프랑스어 통역을 맡기도 한 북한 외교관 출신의 고영환 한국 통일부장관 특별보좌관은 북한은 이전부터 암호를 사용해 해외공관에 특정 사치품의 조달 지시가 내려왔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페인에서 신선한 오렌지를 평양으로 들여가기 위해 북한에서 인력을 파견한 적도 있다고 하고, 러시아의 캐비어나 프랑스 음식인 푸아그라도 많이 수입했다고 하는데요.
특히 (와인 애호가로 알려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애초 코냑(포도주를 증류하여 만든 브랜디의 한 종류)을 좋아했는데, 그가 해외공관에 눈을 돌리고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와인을 좋아하게 됐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보르도 와인을 많이 좋아했다가 좀 더 복잡한 맛을 찾기 시작하면서 부르고뉴 레드와인을 좋아하게 됐다는 얘기도 있고요. 지난 2010년 프랑스의 한 와인제조사 관계자는 북한과 연간 한 차례 정도 꾸준히 거래하고 있으며, 그 해에는 한 병에 300달러 상당의 고급 와인을 600병 정도 판매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기자> 북한의 당간부 등 고위간부들도 과거부터 사치품을 많이 좋아했나요?
[마키노 요시히로] 제가 듣기로는 과거 빨치산 투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사치품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산에서 노숙도 하고, 끼니도 부족한 가난한 생활이 빈번했다고 합니다. 1945년 해방 이후 다음에 빨치산 1세대였던 간부들은 노동당 본부 근처에 일반 시민보다 조금 더 큰 주택을 받았고, 식량 배급도 조금 더 많은 양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시민들은 조국 해방을 위해 애쓴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혜택은 당연하다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김일성 주석도 사치품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많이 했다고 전해집니다. 한 일화를 예로 들면, 어느날 자택에 돌아간 뒤 많이 피곤했는데 갑자기 날계란이 먹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에 날계란이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총리직을 맡고 있던 김일 총리의 집에는 날계란이 있어서 그걸 먹었다는 얘기가 회자되는데요. 그 정도로 사치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김일성 시대 간부들의 생활은 김정일 위원장, 그리고 '혁명 2세대' 사람들의 생활과는 달랐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자>그렇다면 북한 간부들의 생활이 왜 이렇게 변질됐다고 보십니까?
[마키노 요시히로] 방금 말씀드렸듯이 사치품 문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이후, 즉 혁명 2세대 때부터 시작했다는 건데요. 이때부터 빨치산(1세대)의 자녀들은 평양에 있는 만경대 혁명학원에서 공부도 하고 자동적으로 엘리트가 되는 수순을 밟았습니다. 해외 유학도 비교적으로 자유롭게 했고요. 유학할 때도 일반 가정 출신 학생들은 유학 비용이 싼 아프리카에 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 소위 '엘리트'들은 특별한 대우를 많이 받았습니다. 예를 들면 (북한의 대표적인 '빨치산 1세대'로 회자되는) 오진우 전 인민무력보장의 딸이나 허담 전 외무상의 딸, 김영남 총리의 아들, 그리고 지금 외무상을 맡고 있는 최선희 등 이런 사람들이 해외에 갈 때는 개발도상국이 아닌 유럽에 있는 몰타로 유학을 갔습니다. 또 당시 이들의 모친들이 따라갔기 때문에 유학보다 엘리트 가족의 휴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또 프랑스 파리에는 유학생들을 지원하는 간부가 있어서 유학생들을 모아 놓고 함께 식사도 많이 했다고 하는데요 . 그 당시 사람들은 외국산 와인이나 맥주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지를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것도 흔했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빨치산 1세대의 자녀란 이유로 혜택을 받는 것이 하나의 흐름이 됐다는 건데요.
하지만 앞서 김일성 주석의 경우에는 이러한 분위기가 공산주의가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빨치산 1세대의 아들이나 손자들은 당 간부로 취임하지 말라'는 내부 규칙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간부로 취임할 수 없다면, 군 간부 등 다른 정부 자리에 취임시키자는 분위기도 있어서 이러한 규칙이 서서히 유명무실해졌다고 합니다. 특히 그것은 김일성 주석의 자녀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권력이 집중되기 시작하면서 나중엔 최고지도자의 자식에게 권력을 승계하지 말자는 목소리를 내기엔 너무 어려운 환경이 돼 버렸다는 배경이 있었다고 저는 듣고 있습니다.
<기자>북한 고위층 사이에서는 고급 시계나 고급 차량, 최신 전자기기와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사치품'으로 간주되는 모양인데, 북한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사치품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있을까요?
[마키노 요시히로] 탈북민들이 경험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보통 일반 사람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하고 토요일에는 생활총화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일요일에도 오전 중에는 당국에서 지시한 임무에 동원되거나 모임에 나가야 하는 경우도 많아 거의 쉬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이나 미국 등 다른 나라처럼 주말에 골프를 치거나 영화를 즐기는 등의 일상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여행도 당국의 허가증은 물론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반 사람들의 여가 시간에 담배나 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 같습니다. 또 술집에서 마시는 술은 너무 비싸기 때문에 시장에서 산 감자나 잡곡으로 만든 소주 등을 명태 안주와 함께 주변 지인들과 모여 마시는 것이 소소한 행복이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북한 주민 입장에서 '사치품'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제사와 같은 특별한 날에 먹는 돼지고기나 서민 생활에서 즐기는 소주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마지막으로 한국 통일부는 북한이 연간 수만 달러에서 수십만 달러 상당의 사치품을 수시로 수입하는 것으로 평가했는데요. 코로나 시기에 국경 봉쇄에 따라 일시적으로 위축됐다가 작년 하반기부터는 다시 회복되는 양상이라는 분석입니다. 북한의 사치품 조달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위반하는 사안이지 않습니까?
[마키노 요시히로] 결론적으로 말하면, 코로나 대유행이나 국제사회의 제재와 관계없이 고위급 간부들의 생활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코로나 대유행이 끝나고 북한 국경도 개방되고 있기 때문에 북한 고위 간부들은 좀 더 자유롭게 사치품을 내부로 들일 수 있게 된 상황을 반갑게 여길 것으로 보입니다.
<기자>네. 마키노 기자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미국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덕인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