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휘발유·경유값 하락세… 중∙러와 불법 거래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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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3월부터 북한 시장에서 휘발유와 디젤유(경유) 등 유류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는 가운데 북한 주민 사이에서는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유류 수입이 늘었기 때문이란 얘기가 도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러시아와 중국이 올해 북한에 대한 유류 공급량을 크게 늘린 데다 북한이 불법 해상 환적과 물자 교류를 통해 유류를 불법 반입한 것도 시장 가격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보도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일본의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지난 4월 12일 현재 북한 북부지방에서 거래되는 휘발유는 1kg에 북한 돈으로 1만 3천 원, 디젤유는 1만 2천400원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초 휘발유가 북한 돈으로 1만 4천 원, 디젤유가 1만 3천500원을 기록한 이후 계속 하락세를 나타냈습니다.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유류 수입량을 대폭 확대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최근 봄철을 맞아 북한 시장에서 휘발유와 디젤유 가격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4월에는 휘발유가 1만 3천 원에서 1만 3천200원, 디젤유는 1만 2천 원대의 가격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최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일부 주민은 휘발유와 디젤유 가격이 하락한 배경에는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유류 수입을 대폭 늘린 데 따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휘발유, 디젤유 값이 3월 들어 조금씩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북한 정권에서 어떤 노력을 해도 값을 정할 수 있는 게 아닌데요. 수입하는 대상은 중국과 러시아가 중심입니다. 휘발유, 디젤유 값이 하락세인 것과 관련해 북한 주민 사이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대량으로 수입됐기 때문에 값이 내려가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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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북부지방의 시장에서 거래되는 휘발유와 디젤유값. 지난 3월부터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 아시아프레스 제공

이와 관련해 미국 해군분석센터(CNA)의 켄 고스 적성국 분석국장은 16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최근 북한에서 휘발유와 디젤유 가격 하락의 원인을 유류 수입의 확대로만 단언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북한 주민의 추측도 합리적”이라며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켄 고스]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경제적 요인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 기간 연료를 많이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과잉 현상이 발생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이전부터 증가한 자원을 얻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는 분명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한 무기를 대가로 북한과 어떤 종류의 거래를 했습니다. 그 부분이 경제적 부분에 대한 거래이며, 이는 유류와 같은 경제적 지원일 수 있습니다.

고스 국장은 나아가 “중국의 경우 북한이 러시아와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북한에 석유와 같은 연료 공급을 늘렸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미 한미경제연구소(KEI)의 트로이 스탠가론 선임 국장도 16일 RFA에 “휘발유와 디젤유의 가격이 일 년 전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지만, 지난 24개월 동안 가격이 대체로 일치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북한의 연료 공급이 상당히 안정적이라는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스탠가론 선임 국장은 “공급량이 많이 증가해 가격을 낮췄다기보다, 위성 사진을 통해 볼 수 있듯이 지금은 유류 운송이 공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 민간 연구기관인 스팀슨센터(Stimson Center)의 로버트 매닝 특별연구원도 16일 RFA에 “북한 시장에서 나타난 유류 가격 추세는 오늘날 북러 간에 새로운 협력관계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 2월 29일 북한에 1만 5천279 배럴의 정제유를 공급했는데, 이는 지난해 12월보다(6천591배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입니다.

또 이는 코로나 대유행으로 중단됐던 대북 정제유 공급을 2022년 12월에 재개한 이후 두 번째로 많은 공급량입니다.

중국도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4개월간 북한에 약 8만 7천 배럴의 정제유를 공급했다고 유엔에 보고했는데, 중국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북한에 공급한 정제유는 약 21만 9천 배럴로, 전년도 같은 기간의 10만 5천 배럴보다 2배 이상 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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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국적 유조선 '삼마 2'호(IMO: 8106496)와 석유화물을 수용하도록 개조된 신원 미상의 화물선이 2023년 3월 17일 남포항에서 남서쪽에 위치한 초도 인근 해상에서 선박 간 환적을 수행하는 모습. / 2024년 3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패널 최종 보고서

“실제 보고보다 유류 반입량 훨씬 많을 것”… 불법 거래 가능성

하지만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단은 실제 북한에 반입된 유류는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 10일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북한 화물선 ‘백양산 1’호로 추정되는 선박과 러시아 화물선 ‘마리아’호로 추정되는 선박이 지난 7일 각각 러시아 보스토치니 항구와 북한 나진항에 정박해 있는 위성사진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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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가운데, 유엔 등이 금지한 불법 교역을 지속해 온 정황이 포착됐다. / CSIS X(옛 트위터) 캡쳐사진.

이에 대해 국제전략문제연구소는 북한과 러시아가 밀착 관계를 이어가는 가운데 여전히 불법 거래를 지속하는 모습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또 자유아시아방송이 미국의 상업위성인 ‘플래닛랩스’를 분석한 결과 북한 서해상에서 불법 유류 환적으로 의심되는 선박 활동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북한 남포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33km 떨어진 석도 인근 해상에서 여러 척의 선박이 각각 2척씩 붙어 있는 모습이 연일 확인된 겁니다.

또 북한 남포항에 있는 유류 저장고도 계속 늘어 기존 35동에서 41동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는데, 이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에 따른 허용 한도를 넘어 유류를 불법 반입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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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항 유류고 일대에 원형 저장고가 35동 있으며, 기초부지(2곳)와 공사지(2곳)를 포함하면 유류 저장고는 41동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Planet Labs, Analyzed by RFA, 이미지 제작-정성학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객원교수 겸 아사히신문 외교 전문기자도 최근 RFA에 “그동안 북한이 에너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대규모 군사 훈련을 하지 못했는데, 최근에는 통상적인 군사 훈련을 자주 공개하고 있다”며 “이는 러시아를 통해 석유 문제가 해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매닝 특별연구원도 “김정은 북한 총비서에게 러시아는 중국 대신 연료와 식량의 대안적인 공급원을 제공하고 있다”고 진단했으며, 고스 국장은 “중국 공식 서열 3위인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 상무위원장이 최근 방북한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며 “경제적 문제에 대한 논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덕인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