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시, 논밭 53만평 뒤엎고 살림집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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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 김정은 정권이 야심차게 진행하는 평양시 5만 세대 살림집 건설 사업이 올해로 3년째를 맞은 가운데 지금까지 공사를 위해 뒤엎은 농지가 최소 174헥타르, 약 53만 평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북한 최대 규모인 능라도 5.1 경기장의 9배에 달하는 논과 밭이 사라진 건데요.

평양 인구의 증가로 주택 수요량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란 이유도 있지만, 농지를 없애면서까지 살림집을 짓는 행보에 대한 지적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박수영 기자가 위성사진으로 평양 5만세대 건설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살림집 건설로 없앤 174헥타르 농지… 연간 쌀 생산량 700~900톤 규모

최근 북한 평양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살림집 5만세대 건설 사업.

평양 송신∙송화지구를 시작으로 서포∙금천지구, 보통강변, 9·9절 거리지구 등에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북한은 2021년 1월 제8차 노동당 대회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을 채택하고, 매해 1만 세대씩 2025년까지 5만 세대 건설 사업을 주요 목표로 설정했는데, 올해가 3년째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이 정성학 한국 경북대학교 위성정보연구소 부소장과 함께 2020년 3월과 2022년 7월에 촬영한 위성사진으로 평양 살림집 건설 공사의 진행 상황을 분석해 보니 송신과 송화지구, 9·9절 거리지구에는 기존에 있던 농경지를 없애고, 그 위에 아파트 단지를 조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착공에 들어설 예정인 서쪽 만경대 부근 금천지구 역시 쌀과 옥수수를 재배하는 논밭입니다.

위성사진에 따르면 이미 사라진 농경지만 174.2 헥타르(약 53만 평)로 한국 여의도 면적 (290헥타르)의 약 60%, 한반도 최대 경기장인 능라도 5월1일 경기장 (20헥타르)의 9배에 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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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 대성구역 9·9절거리를 중심으로 기존 비닐하우스와 논이었던 120.1헥타르 부지에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고 있다. / 구글어스 – 정성학, 김태이

농촌 전문가들은 이를 쌀 생산량으로 측정할 경우 연간 700~900톤을 생산할 수 있는 면적이라고 평가합니다.

김혁 한국 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 선임연구원은 (15일) RFA에 “기후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송화지구 (54헥타르) 규모의 논에서는 연간 약 216~271톤, 화성지구 (120헥타르)에서는 약 481~601톤 정도의 쌀을 생산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평양 살림집 건설을 위해 없앤 농지에서 약 700~872톤 가량의 쌀을 수확할 수 있다는 겁니다.

탈북민 출신 북한 농업 전문가인 조충희 굿파머스 연구소장도 (15일) 이는 연간 885톤 정도의 쌀이 생산될 수 있는 면적이라며, 북한 주민 약 5천 명의 일 년 식량 소비량에 해당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조충희] 헥타르당 5톤씩 생산하는 걸로 볼 때 885톤이 생산됩니다. 거의 900톤인데, 북한 주민 1인당 식량 소비량이 쌀 200 kg 정도 되거든요. 그러니까 (쌀 900톤은) 5천 명 정도가 일 년 동안 정상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식량입니다.

또 조 소장은 옥수수를 재배할 경우 약 1만 명이 일 년 간 소비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조충희] 옥수수로 계산하면 두 배가 됩니다. 약 1만 명의 주민들이 일 년 동안 소비할 수 있는 식량인데 또 1년, 2년 해마다 누적이 되잖아요. 농경지에다가 아파트를 짓는 것은 아무리 그 땅이 국가 소유라고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 농업 전문가인 권태진 한국 GS&J 인스티튜트의 북한∙동북아원장도 (15일) 두 지역 논에서 생산할 수 있는 쌀을 연간 600톤으로 측정하면서, 현재 시세로 계산하면 (1kg당 북한 돈 6천 원) 북한 돈으로 총 36억 원의 가치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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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 송화거리를 중심으로 54.2헥타르의 논을 뒤엎은 땅에 고층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외관은 완공된 것으로 보이지만, 내부 인테리어는 자재가 부족하여 공사가 중단된 상태로 보인다. / 구글어스, 정성학, 김태이

농지 없애고 지은 살림집 완공 ‘불투명’

이처럼 북한 당국이 기존 농지를 뒤엎고 살림집을 건설하는 가운데, 건설 자재 부족으로 살림집이 완공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정성학 한국 경북대학교 국토위성정보연구소 부소장은 (16일) 작년 4월에 송화거리 준공식이 열렸지만, 아파트 단지에 필요한 환경 조성은 아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성학] 송신∙송화지구는 평양 5만 호 건설의 첫 삽을 뜬 곳으로 유일하게 준공식이 열린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수십 채의 고층 아파트 단지가 조성됐는데 아파트 외관은 완공된 것으로 보이나 자재 부족 등으로 내부 공사가 중단된 곳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 단지 내 주변 조경 공사 및 환경 정리작업 등의 동향도 아직 관측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 철근, 시멘트 등은 북한 자체적으로 조달이 가능하지만, 아파트 내부 자재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내부 공사가 미뤄지는 것 같다고 정 부소장은 지적했습니다.

김혁 선임연구원도 1년여 만에 준공된 송화지구와 달리 화성지구의 경우 착공식이 진행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준공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며 이는 건설 자재와 장비, 연료 부족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김혁] 결국 준공식을 하려면 어느 정도 다 갖춰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 어느 정도도) 갖추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창틀이라든가, 창문이라든가, 타일이라든가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죠. 특히 수입 원자재를 써야 하는 부분들이 꽤 있는데 그런 것들이 조달이 안 되면 준공식을 하기가 어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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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김태이

주택 공급량 부족하지만… “엘리트 계층을 위한 정책” 지적도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기존 농지를 없애면서까지 5만 세대 건설 공사를 강행하는 이유에 대해 ‘평양 인구의 증가’, ‘중심부로의 접근 용이성’, ‘고위층 중심 정책’ 등을 꼽습니다.

한국 통일연구원 정은이 박사는 (15일) 평양 주택 공급량이 수요량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정은이] 그쪽 주변에 짓는 이유는 (평양)중심지가 거의 포화 상태잖아요. 어느 정도냐 하면, 사다리 하나 놓으면 건너갈 수 있을 정도로 평양 인구의 밀집도가 굉장히 높거든요. 그래서 일단은 주택이 많이 부족하고, 바꿔 말하면 수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한국 토지주택연구원(LHRI)의 최대식 북한연구센터장도 (16일) 5만 호 주택이 건설되는 지역은 대부분 중심부로 접근이 용이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최대식] 송화거리 같은 경우에는 새로 조성된 거리고, 입지 측면에서 볼 때 평양 중심부는 아니지만 접근성이 비교적 양호합니다. 1만 세대씩 건설하는 곳을 보면 평양 도심으로의 접근이 용이한 곳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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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에 새 살림집 건설을 위한 5만호 주택공사가 진행되는 서포지구, 9∙9절 거리지구, 송신∙송화지구, 보통강 구역, 금천지구. 정성학 한국 경북대학교 위성정보연구소 부소장은 “자재 부족으로 평양 5만 세대도 30여 년간 방치된 유경호텔 전철을 밟을 것이 우려된다”고 16일 밝혔다. /구글어스, 정성학, 김태이

또 점차 도시 범위가 확대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주택 공급이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에 중요한 분야라고 최 센터장은 덧붙였습니다.

[최대식] 큰 틀에서 보면 인민 생활 개선이라는 원칙이 있지 않습니까. 국가 정책에서 인민 생활 개선을 큰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여기에는 식량 문제뿐 아니라 다른 일상 생활용품이라든가 살림집도 의식주 문제에 포함된 겁니다.

하지만 그는 이 건설 사업이 5만 세대 살림집에 입주할 수 있는 엘리트층만을 겨냥한 정책이라고 꼬집었습니다.

5만 호 건설 공사로 농지가 훼손됨으로써 북한 전체의 식량생산량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김혁 선임연구원도 평양 5만 세대 건설은 식량 생산을 증대하자는 북한 당국의 독려와 정책에도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혁] 1950~60년대에는 인구 증가 때문에 곡물 생산량이 절대적으로 더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새 땅 찾기 운동과 같은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습니다. 지금도 새 땅 찾기 운동과 간척지 개간 사업을 강조하는데 (평양 5만 호 건설은) 그러한 정책과는 배치가 되는 부분이 있죠. 한 톨의 쌀과 농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그동안 해왔던 노력과 달리 북한이 도시개발을 한다는 것은 정치적인 이익이 더 크다고 보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북한이 최근 농업 생산에 관한 전원회의를 열고, 식량 생산 증진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모색하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논과 밭을 뒤엎고 평양 살림집 공사를 진행하는 북한의 정책은 모순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위성영상 판독∙분석, 이미지 제작: 정성학 경북대학교 국토위성정보연구소 부소장

기자 박수영, 에디터 노정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