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 봅니다. 일본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편집장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기자> 북한이 올 해 주요 인민경제발전 과제를 공개했습니다. 문 박사님, '12개 고지'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알곡이 맨 앞자리를 차지했군요.

문성희 김정은 총비서가 가장 중요하게 내세우고 있는 것은 북한 주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고 봅니다. 결국 먹는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지요. 그렇지만 먹는 문제는 어제 오늘에 제기된 것은 아닙니다. 1980년 10월에 열린 조선노동당 제6차대회에서는 '10대전망목표'가 발표되었습니다. 거기서는 알곡 1천500만톤 달성이 제시되었는데요. 이번 12개 고지라는 것도 이 10대전망목표와 같은 발상에서 나온 듯합니다. 10대전망목표에서도 알곡, 전력, 석탄, 그리고 강철, 유색금속, 시멘트, 화학비료, 천, 수산물, 간석지개간 등의 목표수치가 제시되었습니다. 모두 1980년대 내에 달성하기로 돼 있었어요. 결국 알곡에 관해서는 1984년에 1천만 톤을 달성했다고 선언했고, 시멘트, 석탄, 화학비료도 "고지를 점령했다"고 계획 달성을 시사했지만, 구체적인 숫자는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10대전망목표와 다른 것은 구체적인 목표수치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12개 고지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전광판을 통해 발표가 되었지만, 예를 들면 알곡 생산 목표가 500만톤인지 600만톤인지 잘 모릅니다. 다만 과거에는 1천500만톤이라는 대담한 숫자를 내걸고 있었는데요, 지금 알곡을 1천500만톤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1천만 톤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아마도 내부에서 600-700만톤 정도의 목표 수치를 제시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여튼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것이지요. 그만큼 북한의 경제사정이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먹는 문제, 즉 알곡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는데 다른 경제 부문에 힘을 쏟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기자> 알곡에 이어 전력과 석탄이 언급된 건 역시 식량부족과 함께 에너지 문제도 해결이 어렵다는 현실을 반영하는 걸로 보이는데요.
문성희 네, 그렇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것도 어제 오늘 제시된 것은 아니지요. 43년 전에도 10대전망목표에 전력이 들어가고 있었으니까요. 그 당시의 수치는 1천 억KWh였습니다. 북한의 연간 전력생산량이 여전히 300억 KWh 미만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목표 수치입니다. 원래 10대전망목표라는 것은 이것이 달성되면 "사회주의가 완전히 승리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매우 야심적인 숫자었다고 할 수 있지요.
이번에는 그렇게 야심적인 목표는 내걸지 않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결국 전력문제가 걸리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고 봅니다. 북한 경제가 침체상태에 있는 중요한 원인이 에너지 부족이라는 것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에너지, 그러니까 전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공장이 잘 가동되지 않고 농촌의 기계화도 잘 안 되는 것입니다. 전력 문제를 풀기 위해 북한 나름으로 대규모, 중소규모 발전소를 곳곳에 건립하는 등의 노력은 해왔습니다. 희천발전소도 제가 북한에 갔을 때 여러 번 건설현장을 참관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노동력과 자금을 동원해서 완공하고도 잘 가동이 안 되고 있는지 최근에는 전혀 보도가 없습니다, 노후화된 발전소도 있을 것이지만 그것을 보수할 여력도 없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해서 가동을 못하게 된 발전소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북한에서도 풍력이나 태양광 등 자연에너지에 힘을 쏟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려옵니다. 태양광 패널 같은 것을 중국에서 사와서 자기 집에 설치하거나 공장 등에 설치하는 개인 업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수력발전소도 대규모가 아니라 중소규모를 가동시키는 그런 방향을 세우고 있다고 봅니다.
<기자> 알곡과 함께 질소비료를 콕 짚어언급했는데 지난해 화학비료 수입이 어려웠던 상황을 반영하는 듯합니다. 농업생산에 필수이지만 북한의 비료 부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요?
문성희 네, 화학비료의 부족은 심각합니다. 2010년께 북한에 갔을 때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를 방문했는데 거기서 '주체비료'를 생산하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무연탄을 써서 화학비료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는 해설이었습니다. 사실 생산되는 현장을 보았고 창고에 비료가 쌓여진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도 북한의 전 농장에 비료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평양과 평양 교외에 제공할 수 있는 정도라고 했지요. 그 주체비료가 계획대로 잘 생산된다면 어느 정도 화학비료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데 역시 공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소식이 없습니다.
결국 화학비료는 중국에서 수입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요.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국경봉쇄로 제대로 수입을 할 수 없었겠지요. 북한에서는 한때 미생물을 쓴 천연비료 생산에도 힘을 쏟고 있었는데 그것도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지난해에는 오물 같은 것을 개인에게 할당해 바치게 하는 그런 움직임까지 있었다고 하지요. 그만큼 비료 문제도 심각하다고 봅니다, 1980년의 10대전망목표에서는 화학비료의 목표수치는 80년대 내에 700만톤을 생산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이런 목표를 내걸고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북한 농장에서 알곡을 넉넉히 생산하자면 이 정도의 화학비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화학비료 전반이 아니라 질소비료라고 찍고 있는 것을 보니까 뭔가 전망이 있어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두고 보아야 하겠지요.

<기자> 이번 주요 인민경제발전 과제들은 먹고 사는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하는 북한의 현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인데요. 북한 주민들로선팍팍한 삶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 대해 꽤 실망스러울 듯합니다.
문성희 우선 그래도 12개고지를 보니까 주민들의 생활에 직접 관련이 있는 항목들이 나란히 언급됐다는 사실에 저로서는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있고 북한 주민들도 그렇겠지요. 이것이 군사적인 문제에 직결되고 있거나 하면 북한 주민들도 희망을 잃을 수 도 있겠지만, 알곡, 전력, 석탄, 질소비료, 시멘트, 통나무, 수산물, 살림집, 철도화물수송 등의 항목을 보면 약간 마음이 놓인다고 할까요.
그러나 결국 이런 항목들은 오랫동안 북한지도부가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해 온 것이지 않습니까? 결국 1980년부터 계속 강조해왔는데 43년이 지난 이제 와서도 아직 해결을 못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이렇게 12개 고지라고 해봤자 ‘정말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하고 북한 주민들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은 총비서가 집권 초창기에는 발표해 온 신년사를 최근에는 발표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열고 거기서 김 총비서가 보고를 하는 방식이지요. 신년사를 발표하지 못하는 것은 역시 신년사에 지난해 총화와 올해 과제를 명기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하기 때문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북한 주민들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실망한다기보다 처음부터 그렇게 희망을 안 가지고 있겠지요. 자기들의 생활은 자기들이 해결하자, 뭐 그런 정도로 생각하고 그렇게 나라에는 기대를 걸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이번 경제분야 과제는 5.1경기장에서 열린 평양시 궐기대회에서 전광판에 게시되면서 공개된 점도 특이하군요.
문성희 네, 보통 김일성경기장에서 진행되는 평양시 궐기대회를 5.1경기장에서 진행한 것은 드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역시 전광판을 이용할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또 궐기대회가 끝난 뒤 참가자들이 행진하면서 행사가 끝나는데 이렇게 전광판에 경제분야 과제가 제시되면 사람들도 잘 알기 쉽고 어느 정도 북한 주민들에게 호소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을 할 수 있으니까요. 5.1경기장은 아시다시피 대집단체조를 하는 장소인데 지금은 대집단체조를 하는 기회도 없고 관광객들을 동원해서 아리랑 공연을 보도록 하는 그런 기회도 없습니다. 해서 그렇게 쓰여지지 않고 있었다고 보는데 이런 방법으로 5.1경기장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전광판에 나온 스크린 같은 것은 노동신문 등에 나가거나 영상을 통해 선전하는데는 일정한 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이것도 하나의 새로운 발상이겠지요.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정우, 에디터 박봉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