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내각 통제 강조는 시장경제 불가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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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 분야를 중심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봅니다. 일본에서 언론인으로 활동 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 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해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사회주의 경제 , 실질적으로 작동 안 해

[기자] 박사님. 최근북한전문가들사이에서 "북한이사실상 시장경제를폐지하려는듯보인다"는분석이많습니다. 체제안정을위해시장경제폐지를결심한듯보인다는건데요. 최근김정은 총비서의 행보와 지난해 전원회의내용등을 분석한 박사님의견해는 어떻습니까?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문성희] 네. 시장경제를 사실상 폐지한다기보다 표면상 사회주의 계획경제 정책을 계속 유지해 왔다고 봅니다. 김정은 총비서의 집권 초기에는 ‘사회주의 기업 책임관리제’라는 개혁 정책을 제시했고, 특히 이것을 농장에 도입한 ‘포전담당책임제’ 같은 것을 보면 당시 북한이 경제개혁을 완전히 시행하게 됐다는 기대감이 컸습니다. 하지만 2019년 베트남(윁남) 하노이에서 열린 미북정상회담이 결렬된 뒤에는 북한에서 시장 경제에 대한 통제가 심해진 거라고 봅니다. 지난 15일에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김 총비서는 “사회주의경제가 자기의 우월성과 위력을 충분히 발휘하자면 경제지도와 관리에서 통일성을 보장하라”고 강조했고요. 또 “내각이 강한 지도력과 장악력, 통제력, 집행력을 발휘하라”고 했는데, 이는 그렇게 새로운 내용은 아니죠. 지금 이것을 새삼스레 강조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여기서 내각의 통제를 강조한 것은 시장 경제 방향으로는 절대 가지 않겠다는 것을 온 국민들에게 선언한 것이라고 봅니다.

[기자] 김정은 정권이체제안정을위해시장경제를더강하게단속한다면, 박사님이가장우려하시는바는무엇일까요? 그리고올해김정은총비서가 거듭 경제를 강조하고 있는데, 시장 경제에 대한 단속으로과연경제목표달성이가능할거라고보시는지요?

[문성희] 네. 저도 시장 경제를 단속하면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이제 북한 주민들이 식량 배급 등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진 지 오래됐습니다. 물론 수준 차이가 있겠지만, 나름대로 장사에 성공해서 돈을 번 사람들은 시장에서 자유롭게 물건을 살 수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시장 경제가 제한되면 시장에 유통되는 물건이 적어질 수 있고, 동시에 배급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북한이 시장 경제를 통제하면서 경제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장 경제를 통제한다고 해서 국가 경제에 집중하거나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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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북한 평양에서 열린 ‘2023 봄철 여성옷전시회’에서 북한 여성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 AP (Jon Chol Jin/AP)

[기자] 북한이 공장의 현대화를 선언했고, 조만간 러시아 관광객도 받아들이려는 것 같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 가능성으로 북러 관계는 더 강화됐고요. 북∙중 무역액도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결국,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를 등에 업고, 시장 경제보다는 국가 중심의 계획 경제에 더 주력할 것으로 전망하시는지, 그럼에도 시장 경제를 근절할 수 없을 것으로 보시는지 박사님의 견해 부탁드립니다.

[문성희] 네. 이번에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러시아를 방문해서 푸틴 대통령과 만났습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이 가까운 시일 안에 북한을 방문할 것 같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러 관계는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데요. 지금 새로운 냉전 시대를 맞아 북한은 러시아,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두 나라와 경제 관계도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요. 이런 것을 배경으로 한국을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관계를 완전히 차단한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과 약간 거리를 두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중국은 미국, 일본 또는 서방 국가들과 관계가 완전히 악화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국은 완전히 북한 편에 서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을 보일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북한도 경제적으로는 러시아보다 중국에 더 의존할 겁니다.

북 당국 외화단속 , 빈부 격차 해소용일 수도

[기자] 최근 한국통일부의보고서에따르면김정은총비서가 집권한 이후 북한 시장화의 다양한 현상 중 하나로 외화 사용이 늘고, 주 수입보다 부수입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탈북민 10명 중 7명은 북한에서 중국 위안화를 사용했다는 건데요. 외화에 대한 선호도는 그 이전부터 있었죠. 박사님께서 북한을 오가실 때 이와 관련된 경험담을 들려주시겠습니까?

[문성희] 한국 통일부가 탈북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였는데 , 매우 흥미로운 결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북한을 자주 드나들 때도 외화를 쓰는 사람들이 흔히 있었고, 외화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사람일수록 높은 생활 수준을 보였습니다. 아시다시피 북한 돈의 가치가 매우 낮기 때문에 시장에서 외화를 바꾸면 많은 북한 돈을 얻을 수 있지요. 하지만 2000년대 초에는 외화 사용에 대한 통제가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친구는 지갑에 미국 달러화가 들어 있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발견하니까 그 친구가 저에게 "쉬쉬"하면서 술을 사주는 겁니다. 정말 단속 대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2010년과 2011년에 북한에 갔을 때는 장마당에서 외화로 거래할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었던 경험은 어느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유로화로 지불하니까 거스름돈을 달러화와 위안화를 섞어서 주는 겁니다 . 또 평양 여관 찻집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제가 놀란 것은 종업원들의 계산이 너무나 빠른 겁니다. 유로화, 달러화, 위안화의 환율 시세가 각각 다를 텐데, 그것을 정확히 계산해서 하나도 틀림없이 거스름돈을 주는 겁니다. 이건 하나의 기술이라고까지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2012년에 양강도를 찾았을 때는 위안화밖에 쓸 수 없었습니다. 북한 돈도 못 썼어요. 그것도 100위안(미화 14달러) 같은 큰돈이 아니라 잔돈만 쓸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거스름이 모자랐던 게 아닌가 싶어요.

또 제가 2011년에 북한에 갔을 때 주체사상탑에 올라갔는데, 한 사람이 제가 재일 교포라는 걸 알고 500엔짜리 동전 몇 개를 주면서 1천 엔짜리 지폐로 바꿔 달라는 거예요. 500엔(미화 3.4달러)은 은행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과거에는 일본 돈이 매우 가치가 있었는데, 요즘은 일본과 무역 거래를 하지 않게 되면서 북한 입장에서는 일본 돈이 필요 없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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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가게 점원이 당시 관광객이 지불한 달러를 받는 모습 / AFP

[기자] 마지막으로 북한은 코로나 대유행기간외화사용에대한단속을강화했고요. 모든거래를북한돈인 원화로할것을강조한바있습니다. 그래서한때북한 원화에대한달러화, 위안화환율이절반으로떨어진적도있는데요. 지금은이전 수준을 회복하긴했습니다만, 북한 주민에게있어북한 돈만쓰라는것은어떤 의미입니까?

[문성희]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외화 사용 단속은 코로나 이전에도 했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코로나 대유행 기간에는 국경을 완전히 폐쇄했기 때문에 외화가 고갈될 우려도 있었겠죠. 그런 배경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또 북한 돈만 쓰라고 하는 것은 빈부 격차를 막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외화의 가치가 북한 돈보다 높기 때문에 외화를 쓸 수 있는 사람과 외화를 못 가지는 사람들 사이에 빈부 격차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면 외화를 못 가진 사람들 속에서 불만이 나오겠지요. 그런 것을 고려했을 수도 있습니다 . 하지만 가장 이상적인 것은 역시 자국 화폐로 경제생활을 하는 것이고, 외국에서 온 사람들도 북한에 있는 동안에는 외화를 북한 돈으로 바꿔서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네.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그리고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이 마지막 방송인데요. 그동안 북한 경제와 관련해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일본의 언론인이자 학자인 문성희 박사와 함께했습니다.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에디터 박봉현, 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