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유치원생들 사이 도시락 반찬 격차도 커”

0:00 / 0:00

“평양 유치원생들 사이 도시락 반찬 격차도 커”

앵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 봅니다. 일본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편집장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 기자 > 북한 관영매체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맹비난했습니다. 양극화와 빈부격차를 자본주의의 병폐라며 비난하고 나선 건데요, 실제로는 북한에서도 빈부격차가 꽤 심각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시장 활성화로 돈주도 출현하는 등 북한도 사회 양극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데요, 어떻습니까?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 (사진 제공:문성희))

문성희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이고 궁극적으로는 공산주의 사회를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내부적으로 가장 경계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빈부 격차가 있는 사회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빈부 격차가 없다는 것이 북한의 정통성이라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관영매체를 통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맹비난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빈부 격차가 심하다는 것이 북한과 다른 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북한 체제가 좋다고 선전하고 싶은 것이지요.

그렇지만 저는 북한에도 빈부 격차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보고 왔고 듣기도 해왔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돈이 없어서 헤매던 한 간부가 돈이 있는 사람과 만나서 재혼을 한 뒤 지금은 호텔 주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있었고, 평양대극장안에 결혼식도 할 수 있고 노래방도 있는 그런 대규모의 식당이 있는데 거기 여주인이 평양외국어대학인가 유명 대학을 졸업했지만 외교관이나 통역사가 되는 것보다 장사의 길을 택했지요. 동창생들 속에서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장사꾼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북한 주민들이 이런 사람들에게 비판적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도 그렇게 돈을 벌고 싶다는 동경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자본도 없는데 가게를 내서 결국 실패를 하는 사람들도 나옵니다. 자본이 없으면 돈주한테서 빌릴 수밖에 없지요. 돈주에게서 돈을 빌려야 하기 때문에 빌린 원금에 이자까지 받아가는 돈주는 더더욱 부자가 되고 돈주한테 돈을 빌렸지만 사업에 성공하지 못 한 사람은 더욱 빈곤해지는 것입니다.

평양 안에서는 아침부터 택배로 식사를 배달시키는 그런 부자집까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침 식사를 집에서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가게가 만드는 아침 식사를 집에 배달시키는 것이지요. 이것도 그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라고 보는데 하여튼 그런 부자도 있다는 방증이지요. 그리고 유치원 원아들 사이에서 도시락 격차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반찬이 많이 들어간 고급 도시락을 가져오는 원아도 있는 반면에 겨우 쌀밥 정도만이 들어간 도시락을 가져오는 아이도 있었다는 것이에요. 이런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기 싫어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기자>그러니까, 북한 당국이 사회 양극화를 비난하고 나선 것도 주민들 사이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에 대한 동경이 더 커져가고 있는 데 따른 위기감 탓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문성희 네, 그렇다고 봅니다. 북한에서 '민족과 운명'이라는 영화시리즈가 있는데 그 영화 중에 여성 장사꾼이 나오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외교관이었던가 무역일꾼이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하여튼 아내가 열심히 장사를 해서 돈을 벌고 있는 것이에요. 생활도 사치스러운 것이에요. 물론 영화는 이런 사람들을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 만큼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크니까 영화에서 이런 사람들은 비판 대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그러나 고난의 행군을 거쳐서 국가의 공급에 따르지 않고 자기들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 아무리 영화에서 "부자=나쁜 사람"이라고 그린다 한 들 실지 생활에서는 돈을 많이 벌자, 그렇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고 봅니다.

<기자>그런데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도 사업을 시작했다가 실패하는 사례도 꽤 있을 듯한데요, 어떻던가요?

문성희 네, 제가 북한에서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동창생들이 가게를 성공시켜 돈을 벌고 있는 것을 보고 동경한 어느 주부가 장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물론 자본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돈주 같은 사람에게 돈을 빌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국 실패해서 빚을 많이 졌다, 뭐 그런 이야기인데. 그러니까 장사를 한다고 한 들 모두가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북한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나 같지요.

지방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고향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일자리가 없어진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일자리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아마도 공장이 폐쇄되거나 일을 하던 장소가 문을 닫거나 그런 일이 있어서 일자리가 없어진 것이라고 봅니다. 평범한 노동자 같으면 뭔가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육체 노동을 할 수 있는 장소로 이동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투자를 해서 돈을 벌자고 한 사람이 속아서 돈을 모두 빼앗긴 실례도 있습니다. 저축해 놓은 돈을 더욱 불리기 위해 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뭔가 장사를 같이 하자고 해서 투자를 한 것이지요. 그러나 실패를 하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속이는 마음으로 돈만 받고 달아난 경우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기자>그렇다면 현재 북한 당국의 빈익빈 부익부, 즉 사회 양극화 비난과 이를 막기 위한 대책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요?

문성희 물론 북한 지도부로서는 이런 현상을 없애려고 애를 쓰겠지요. 그렇지만 어느 정도 시장화가 추진된 상황에서 돈주를 없애고 모든 것을 사회주의 계획경제 방식으로 되돌리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제 사람들이 이런 생활이 보통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시장화가 촉진되면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부자를 보고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부자가 되자고 애를 쓰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 격차는 더욱 심해지겠지요.

< 기자 > 그렇다면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은 뭐가 돼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문성희 실질적인 방안은 저도 지금 시점에서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제일 간단한 해법은 북한이 과거에 했던 것처럼,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공급을 부활시키는 것이라고 봅니다. 생활이 어렵게 되지 않는 정도로 쌀, 부식물, 옷 등을 공급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도 공급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공급제도가 부활하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시장에서 물건을 살 수 밖에 없고 시장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오르내리기 때문에,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 시장가격은 비싸게 되기 마련입니다. 지금 쌀 값이 킬로그램당 5천 원 정도로 고정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비싸면 보통 사람들은 쌀밥을 매일 먹지 못하지 않습니까. 북한 노동자들의 기본노임이 3천 원- 5천 원 사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매일 쌀밥을 먹고 식당에서 배불리 먹는 사람들을 모두가 부러워할 것이고 그렇게 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장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북한 지도부로 말하면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지요.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정우, 에디터 박봉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