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합영’ 옛 말…조총련 상공인, 대북투자 꺼려

앵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 봅니다. 일본에서 북한 전문 언론인으로 활동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기자> 북한이 일본과 중국 등에 살고 있는 해외동포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후원하는 해외동포권익옹호법을 제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성희 박사님, 먼저 경제적 관점에서 북한 당국이 이 법을 제정한 배경을 짚어주시죠.

문성희 :해외동포권익옹호법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아마도 북한 경제에 기여하는 그런 기회를 법적으로 보장을 한다, 그것도 우대를 한다고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외동포들이 북한에 투자를 하거나 기업을 운영할 경우 특혜가 주어지는 그런 것을 보장하는 항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야 해외동포들에게 북한에 대한 투자를 장려한다는 것이겠지요. 그것은 투자나 합영기업 창설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법률에는 해외동포 권익에 관한 전반적인 항목이 포함되기 때문에 경제적인 측면에서 매우 구체적인 항목이 나열되지 않을 수 있지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대체로 그런 것들입니다.

<기자> 그러니까 경제분야에서 동포들에 대한 장려와 우대, 특혜조치를 폭넓게 보장한다는 건데, 북한 당국이 해외동포들의 대북투자를 기대하고 있는 듯하군요.

문성희 :네,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그것은 최근 일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대북투자를 기대해 온 측면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도 개혁 개방 정책을 실시하던 시기에 화교로부터 많은 투자를 받았고 그것을 장려하고 있었지요. 그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자신들만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기에 무역이나 합영 등으로 외국 투자를 장려하는 것이지만 지금 제재 등이 있어서 외국 기업의 투자를 기대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우선은 해외동포들의 애국심에 기대를 건다고 할까, 해외동포 같으면 북한의 발전에 기여하려는 그런 마음으로 투자에 나선다고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과거에도 1984년에 합영법을 제정해서 합영을 장려했는데요, 이것은 물론 외국이나 외국 기업의 투자도 장려하는 것이었지만 해외동포들이 투자를 해줄 것을 기대한 측면도 있었다고 봅니다. 실제로 그 당시 합영 기업의 70%가 재일동포 기업이었습니다. 당시 '조조합영'이라는 말까지 있었습니다. '조선과 조총련계 상공인 간 합영'이라는 의미로 합영 사업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재일 동포 기업이라는 것을 상징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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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보통강백화점에서 계산원들이 일을 하고 있다. /AP

<기자> 말씀하신 것처럼 과거에 일본에서 성공한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이 북한에 투자한 경우가 많았지요?

문성희 :네, 방금 말씀드렸듯이 합영법이 제정된 뒤 합영 사업에 나선 것은 대부분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이었습니다. 일본에서 기업을 성공시킨 상공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일은 드물지만 상공인들이 자주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상공인 대표단'을 꾸려 한 번에 수십 명, 때로는 수백 명 상공인들이 방문했습니다. 상공인들이 방문하면 김일성 주석이 직접 접견했어요. 성공한 상공인일수록 그런 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 저도 1993년에 여성상공인 대표단 수행기자로 갔을 때 김일성 주석과 만나서 사진도 찍고 연회에도 참가했습니다. 재일동포들에게 있어서 김일성 주석과 만난다는 것은 그 당시에는 영예로운 일이었지요.

합영법이 제정된 2년 뒤인 1986년 2월 28일, 김일성 주석이 재일본조선인상공인연합회 결성 40주년을 맞아 재일조선상공인 감사단을 만났습니다. 거기서 합영 사업에 적극 나서주기를 바란다는 식으로 부탁을 한 것이지요. 같은 해 1월 28일에는 북한과 재일조선인과의 합영 사업을 알선하는 조선국제합영총회사가 설립되고 89년 4월 15일에는 합영은행까지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합영 사업에 나서는 상공인들이 여러 명 나왔습니다. 물론 조총련 조직도 합영 사업에 나섰습니다. 유명한 합영 사업으로는 일본에 있는 ‘모란봉’이라는 기업이 양복 합영사업을 한 것입니다. 이 회사는 불고기 조미료 등을 생산하는 식품업체로 일본에서 유명했는데 북한에 공장을 세워놓고 북한 노동자들이 만든 양복을 일본 등에 가져와 싼 값으로 팔아 이익을 남기고 있었어요. 그리고 북한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외화상점 ‘낙원백화점’도 재일동포와의 합영으로 만들어진 백화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맛있다고 평이 좋은 불고기 가게 등도 재일동포가 북한에 귀국한 친척을 통해 운영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기자> 그 분들이 북한에서 투자한 만큼 성공을 거뒀는지 궁금합니다.

문성희 : 지금은 거의 다 철수한 상태로 알고 있습니다. 투자한 만큼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는지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철수했다는 것은 사업이 잘 안 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지요. 지금은 고인이 된 모란봉의 전진식 회장이 생전에 합영 사업과 관련해서 인터뷰에 응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북한과 합영 사업을 둘러싸고 여러가지 대립이 있었다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역시 여러가지 측면에서 북한 당국과 대립이 있었고 그런 것으로 결국 재일 동포들은 거의 철수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전진식 씨는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지금 합영은 결코 만족할 만한 진전을 못 보고 있지만, 그래도 이 10년 가까운 과정, 경험은 쌍방에게 큰 열매를 가져다주고 있다.'

그러니까 결코 불만만 가지고 그만 둔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는 아직 북한 자체도 합영 사업에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고 뭐 그런 측면에서 역시 자본주의 경제 방식을 사회주의 국가에서 실험적으로 도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립이 있는 것은 당연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그렇다면 재일동포들 사이에서는 북한에 투자해봤자 성공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을 듯한데요.

문성희 :네, 당연히 그런 인식은 있겠지요. 물론 그 중에는 성공한 기업도 있지만 투자해봤자 성공하지 못 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봅니다. 그리고 사실 지금은 경제 제재로 인해 일본에서 직접 북한에 투자를 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해외동포권익옹호법에서 '북한에 투자하면 특혜가 주어진다'며 법률을 정비해봤자 투자를 하는 상공인들이 있을 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음식점, 파칭코 가게 등이 대부분인 재일동포 상공인들은 많이 고생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기업을 운영해가는 것도 고생이 많은데 하필 북한에 투자를 하자고 생각하는 동포들이 얼마만큼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합영 사업에 적극 나선 것은 동포 1세 분들이 많았고 '애국적 상공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국이라고 여긴 북한에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봅니다. 지금 세대 교체도 이루어지고 그런 생각을 가진 재일동포 상공인들이 얼마 정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자> 마지막으로 외국인들의 해외투자 유치를 위해 북한 당국이 당장 취해야 할 가장 중요한 조치는 뭐라고 보시는지요?

문성희 :그것은 역시 투자 위험을 적게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결국 북한에 투자해봤자 나중에 분쟁 등이 있으면 이익을 얻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기업이 투자에 나서겠습니까? 하나는 그러니까 북한에 투자를 하면 반드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할까, 괜찮다는 담보를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을 바꾸면 신용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역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지요. 핵문제, 미사일 문제가 존재하는 한 우선은 제재 문제가 걸려서 투자를 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이것은 미국과의 대화가 필요한데 지금 그런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아직 해외투자 유치는 성공하지 못 할 것이라는 그런 관측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정우, 에디터 박봉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