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주민들, 자립경제 불신…해외원조에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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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 봅니다. 일본에서 언론인으로 활동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기자> 북한 당국이 해외원조를 '독약발린 사탕'에 비유하면서 자립적 민족경제를 갖춰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문 박사님, 북한은 경제적 자립을 자주국가 건설의 담보로 간주하면서 주민들에게 어려운 고비를 이겨내자고 밝혔는데, 결국 국경 봉쇄를 정당화하려는 의도로 보이는데 어떻습니까?

문성희 네, 그런 측면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당국이 코로나로 인한 국경봉쇄를 시작한 것이 2020년 1월이기 때문에 벌써 3년이 지난 셈입니다. 물론 지난해부터는 중국에서 물자가 들어오게끔 약간 봉쇄를 완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물자가 잘 안 들어옵니다. 물론 봉쇄 이전에도 경제제재가 계속돼왔기 때문에 물자부족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국경봉쇄가 지속돼 왔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이제 이런 상황에 많이 지쳐 있다고 봅니다. 그에 대한 불만도 물론 나오고 있겠지요. 그렇지만 북한의 취약한 의료체계를 감안하면 북한 당국으로서도 국경봉쇄를 완전히 해제하는 것은 겁나겠지요. 왜냐하면 코로나가 한 번 확산하면 수습을 못 할 것이니까요. 북한에서는 예로부터 예방의약을 장려해왔는데 거꾸로 말하면 미리 질병을 방지하지 못하면 그 수습이 매우 힘들다는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 '좀 더 참으라, 우리 자립경제정책으로 이제까지도 살아왔지 않느냐?' 뭐 그렇게 교양을 해서 주민들을 설득하는 그런 의도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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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접경지역인 랴오닝성 단둥에서 바라본 중조우의교(왼쪽)와 압록강단교의 모습. /연합

<기자> 북한은 '제국주의자들이 원조를 미끼로 예속시키고 있다'는 거친 표현까지 써가며 원조의 해악을 강조했습니다. 경제난에 시달리는 주민들 사이에서 해외원조에 대한 기대감이 생겨나고 있는데 대한 경각심을 노린 걸로도 볼 수 있을 듯한데요.

문성희 네, 그렇겠지요. 하지만 자립경제로 간다고 해도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원래 북한이 역사적으로 자립적 민족경제를 실시해왔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구소련이나 동유럽, 중국 등과 물물교환이라는 방식으로 물자를 제공받았고 수입을 할 때도 '우호가격'이 적용돼왔으며 달러로 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구 소련의 루블 등으로 거래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북한이 보유했던 외화가 부족했기 때문에 1989년부터 1991년에 걸쳐서 소련,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자 북한 경제가 즉시 어려워졌습니다. 같은 시기에 중국은 한국과 국교를 정상화했고 그런 영향으로 북한에 대한 경제적인 특별대우도 없어졌습니다. 북한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막심한 경제난이 들이닥친 큰 이유가 저는 우호국들의 지원과 우호적인 경제교류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2008년께 제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한 소식이 알려졌어요. 그 때 현지 북한 사람들은 "장군님이 경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중국에 가신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것 하나를 봐도 북한 주민들 속에서 해외원조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해외에 사는 우리로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에 가는 것은 우선은 정치적인 문제, 그러니까 미국과의 관계에 관한 논의라든가, 핵 미사일 문제에 대한 양해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북한 현지 주민들이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소 중국에 간다, 뭐 그런 인식이었습니다. 경제문제 해결이란 솔직히 말해서 식량을 제공받는 것, 그리고 공장 가동을 도와주는 것,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라는 인식이었지요. 그러니까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의 생활에만 관심이 있으니까 북한 최고지도자의 외국 방문도 그런 관점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도 자립경제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기에 해외 원조라할까, 외국과의 경제교류는 기대하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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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열차가 북러 국경을 지나 두만강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 AP

<기자> 말씀하신 대로 해외원조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도움과 협력없이는 피폐해진 북한 경제가 회복되기가 쉽지 않을 듯한데요. 어떻습니까, 해외원조 거부를 통한 북한의 경제적 자립, 가능할 걸로 보시는지요?

문성희 북한의 경제적 자립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원래 북한이 완전한 자립경제를 하고 있었다고 저는 보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노력은 하고 있었고 북한의 주체사상은 '정치에서 자주, 경제에서 자립, 국방에서 자위'를 슬로건으로 하고 있어서 김일성정권 시기부터 그 노선을 관철하기 위해 애써왔습니다. 정치나 국방은 어느 정도 관철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경제 만큼은 어려움이 많다고 봅니다. 사실 과거부터 중국이나 구소련, 동유럽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북한 경제는 돌아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1984년에는 김일성 주석이 한 달 이상 북한을 떠나 구소련과 동유럽 각국을 순방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 목적은 군사적, 경제적 도움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은 1960년대 중반부터 국방비에 많은 국가예산을 쓰게 되면서 경제가 어려워졌는데 1980년대에는 개방정책을 도입하려는 방침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한 예로1984년 9월에는 서방 기업과의 합영, 합작을 받아들이는 합영법을 시행하게 되는데 김 주석의 구소련, 동유럽 방문은 그것을 실시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김일성 주석의 당시 순방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구소련과 동유럽 국가들로부터 지원을 받아내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역사적인 과정을 보더라도 북한이 경제적으로 자립해 온 사실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에 모자란 원유, 코크스, 고무 같은 원자재는 수입을 하고 있었고, 한국전쟁 이후 건설된 기업소들은 소련식이었기 때문에 뭔가 부품이 모자라거나 기계 등이 고장나면 소련 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대학원생 시기였던 2010년대 초반에 북한을 방문했을 때도 공장이나 기업소에서는 외국에서 기계를 수입하고 있었고 재료도 외국에서 들여오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 하나를 봐도 북한이 자립경제라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기자>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북한에서 식량부족으로 굶어죽는 사람이 나오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도 북한 당국이 외부의 도움을 거부하는 배경은 뭐라고 보시는지요?

문성희 정말로 북한이 외부의 도움을 모두 거부하고 있나요? 적어도 중국이나 러시아에는 도움을 요청하고 있을 수 있고 국제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러시아도 중국도 북한에 도움을 줄 수 있지요. 미사일 발사 문제와 관련해서 유엔 안보리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편에 선 것을 봐도 그런 추측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외부의 도움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는 것은 국내의 북한 주민들에 대한 교양적인 측면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끄떡없다, 지도부만 믿고 가라' 뭐 그런 것이겠지요.

<기자> 그렇지만 1990년 대 중반 고난의 행군 당시 북한이 해외원조를 미적거리다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나요? 당시 북한에 머물렀던 걸로 아는데 해외원조에 대한 북한 내 반응은 어땠나요?

문성희 저는 1996년에 약 4개월 정도 북한에 체류했습니다. 조선신보 평양특파원시기이지요. 그땐 정말 갑자기 식량 배급이 없어졌고 북한에 물자가 전혀 안 들어왔던 시기였습니다. 돈이 있어도 물건을 구할 수가 없었어요. 저 자신도 물건을 사려고 평양시내 여러 상점을 돌아보았는데도 찾지 못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호텔 방을 나갈 때 에어컨을 켠 채 취재를 나갔다가 나중에 호텔 직원한테 욕을 먹기도 했어요. 그 만큼 온 나라가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아사자도 나왔을 텐데 그런 것까지는 제가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해외에서 원조가 있었다면 이런 불행한 일도 없었을 것이고 물자도 좀 더 비축할 수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해요.

반면 수해 피해는 북한 스스로 널리 알리고 그것으로 국제적인 지원을 많이 받을 수 있었습니다. 1996년에 제가 직접 수해 지역을 돌아보고 취재를 했는데 그 기사가 나온 영향도 있어서 일본에서는 북한을 지원하자는 여론이 높아졌어요. 그리고 여러 국제기구에서도 수해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지원은 있었습니다. 그런 것에 대해 북한 당국도 그렇고 북한 주민들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였습니다.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정우, 에디터 박봉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