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북 식량가격 상승, 양곡전매제 실패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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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 분야를 중심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봅니다. 일본에서 언론인으로 활동 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 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해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과시성 전원회의… 심각한 식량난 방증”

[기자] 농촌 정책을 다룬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8기 7차 전원회의 확대회의가 마무리됐습니다. 김정은 북한총비서가 “올해알곡 고지를 기어이 점령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이번 회의 내용에서 눈에 띄는 것이나 인상적이라고 평가하시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문성희] 특별히 눈에 띌 만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 다만 인상적이었던 것은 조선노동당 비서들이 '당의 새로운 농촌발전전략' 실행 과정에서 나타난 편향, 원인, 교훈을 분석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는 점입니다. 물론 김정은 정권 들어 북한 내부에서 일어난 부정적인 현상이 가끔 공개되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회의에서 논의가 되었다는 것을 공개하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봅니다. 또 김정은 총비서도 회의에 참석했다는 것은 김 총비서 앞에서 자기비판을 한 것입니다. 간부들이 좋은 측면을 강조하고 싶겠지만, 최고지도자 앞에서 잘못됐다고 자기비판을 하는 것은 북한 같은 체제에서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칫 잘 못하면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인데, 이렇게 자기비판을 한다는 것은 그 정도로는 숙청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면 알곡생산목표 달성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새로운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 관개 체계 완비나 농기계 생산, 간석지 개간을 비롯한 경지면적 늘리기 등은 그야말로 김일성 정권 시기부터 강조돼 온 것입니다. 구태의연한 과업만 내놓으면서 앞으로 몇 년 안에 농업 문제를 풀기 위한 방안을 책정했다고 해도 이것이 정말 가능하겠냔 생각도 듭니다. 이번 회의는 북한 사람들에게 조선노동당도 식량 문제를 풀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고, 대책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과시할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만큼 먹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자] 한국 통일부도 이번 전원회의 결과에 대해 “가시적 대책 없이 기존 구호를 반복했다”고 평가하면서 지난해 농촌혁명강령의 첫해 진행 상황에서 과시할 만한 성과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습니다. 박사님의 진단과 평가는 어떻습니까?

[문성희 ] 북한은 2021년 12월 전원회의에서 "장기성과 다면성을 띠는 농촌문제의 해결을 위한 중장기적 발전 전략을 제시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말하는 '농촌혁명강령'이라는 것은 이 전략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북한으로서는 장기적인 계획을 짜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어떤 계획인지 알아야 성과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수 있겠지요. 다만 이번 회의에서도 '경제발전 12개 중요 고지'의 '첫 번째 고지'로 알곡(곡물)생산목표 달성을 지적하는 것을 보면 곡물 생산을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지요. 그리고 들려오는 소식을 종합하면 '농업이 잘 되었다', '식량문제가 풀리고 있다'는 소식은 안 들어옵니다. 오히려 배급을 보장하기 위해서인지, 국가가 곡물 판매를 통제하는 현상이 보도되고 있고, 아사자가 나오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지 않습니까. 한 가지 예를 들어봅시다. 지난해 쌀 시장가격을 보면 평양에서 1월 11일에 1킬로당 4천500원이었던 것이, 작년 12월 25일에는 5천700원, 그러니까 1천200원이 올랐습니다. 마찬가지로 평안북도 신의주에서는 4천600원이 5천800원으로, 양강도 혜산은 4천700원이 6천100원으로 올랐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곡물을 국가가 전매하는 제도를 실시했다고 하는데, 시장가격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잘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봅니다. 2005년에도 양곡전매제를 시행했지만, 그 전후의 시장 가격을 비교하면 쌀값은 오히려 올라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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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남도의 한 집단농장에서 농부가 밭일을 하고 있다. / Reuters

“북 일기예보는 꾸준히 발전… 기상수문국 역할 기대”

[기자] 북한당국이내놓은구체적방안으로 ‘관개공사강력추진’, ‘새로운농기계보급’, ‘간석지개간과경지면적확대’, ‘기상수문국 역할 강화’ 등을 내세웠는데요. 실현 가능한 방안이라고 보시나요? 이전에도 계속 강조했지만, 매년 해결이 안 된 것들 아닙니까?

[문성희]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기상수문국 역할 강화'를 빼고는 김일성 정권 시기부터 계속 강조돼 온 것들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해결된 것은 없습니다. 관개공사도 여러 가지 공사가 진행돼왔고, 자연 물길 같은 것도 고안됐었지만, 결국은 흐지부지된 된 것이 많습니다. 농기계 문제도 계속 강조돼 왔는데, 북한 자강도 희천에는 군수공장들이 많습니다. 거기서 트랙터 등을 생산하게 됐다는 보도가 가끔 있었는데 결국, 그 수많은 트랙터가 어찌 됐는지, 농기계를 보급해줘도 그것을 가동하는 에너지도 걸리는 문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양에는 '3대기술혁명박물관'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자기 나라에서 제조했다는 농기계들도 전시돼 있는데 문제는 그것이 어느 정도 보급됐는가라고 봅니다. 저도 조선신보 평양 특파원 시절 여러 협동농장을 취재하며 다녀봤지만, 기계로 농사를 짓는 모습은 그렇게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모내기도 사람들이 손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은 농촌동원 시기가 반드시 필요한 겁니다.

간석지도 서해안에 많이 만들어졌다고 보지만 , 제가 알기로는 2012년에 대계도 간석지 건설이 알려진 이후 큰 규모의 간석지 건설은 추진이 안 되고 있다고 봅니다. 북한에 가시면 아는데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에는 제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간석지 개간으로 경지 면적을 늘리려고 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는 요지가 있는 것인지,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이번에 제시된 방안들은 실현 불가능하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그렇게 잘 될지는 의심스럽습니다. 다만 '기상수문국 역할 강화'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북한을 다니는 마지막 시기에도 일기예보가 많이 발달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컴퓨터 등을 활용하기 때문에 일기예보의 능력도 더 발달하고 있다고 봅니다. 기상수문국 역할 강화는 수해나 가뭄 등을 미리 알고 그것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아는데, 북한의 IT 능력을 고려하면 이것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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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에 있는 한 농장에서 조선인민군이 밀∙보리를 수확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도시 주민들, 현금 고갈로 식량 해결 어려워”

[기자] 최근 아사자가발생하는북한의 식량난과 관련해 정말 큰 문제는, 시장에는 식량이 있는데, 식량을사먹을수있는현금수입이없는것이라는 지적이있습니다. 또 김정은 정권이 고민하는 식량난은우선배급순위인 평양시민과 군대 등에 줄 식량이 부족한 것이란 지적도 있고요. 박사님께서진단하시는지금 식량난의실체는무엇이라고보십니까?

[문성희] 제가 생각하기에는 식량은 있어도 그것을 구하는 돈이 없는 사람이 많은 것이 아닐까요 ? 북한에는 배급을 받는 계층이라고 할까요. 당이나 군대 간부처럼 특권이 있는 사람이 있지요. 그리고 군대 병사들의 식량도 해결해야 하고요. 그래서 지금 북한에서는 국가가 열심히 알곡을 통제하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도 제대로 국가에 안 올라오면 배급을 못 주지 않겠습니까. 북한 농민들은 자기들이 생산한 알곡을 약간은 자기 몫으로 비축할 수 있고, 지방 사람들도 텃밭 등이 있으면 거기서 일정하게 식량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가장 식량 해결이 어려운 사람들은 바로 도시에 살면서 돈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배급받는 양은 당연히 모자랄 것이고, 그것만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식량을 시장에서 구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돈이 없으니 식량 해결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기자] 네.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지금까지 언론인이자 학자인 문성희 박사와 함께했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봉현, 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