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 분야를 중심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봅니다. 일본에서 언론인으로 활동 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 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해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경기 침체에도 여성의 경제적 역할 여전”
[기자] 지난 3월 8일 부녀절을 맞아 북한 노동신문이 “주부와 며느리로서 시부모를 잘 모시고, 남편과 자식들을적극적으로떠밀어줘야한다”면서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북한에서 여성들의 경제 활동이 두드러진 지 오래인데,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아직 옛날에 머물러있는 듯합니다. 오늘날 북한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위상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문성희] 북한에서 ‘여성은 꽃이라네’라는 유명한 노래가 있습니다. ‘여성은 생활에서도, 직장에서도 꽃’이란 노래인데, 거꾸로 말하면 여성을 직장의 ‘꽃’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여성을 장식품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어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는 상당히 기분이 나빴습니다. 제가 1996년에 평양특파원을 할 당시 평양시 구역 인민위원회 여성 위원장을 취재했는데, 일도 잘하고 말도 잘하는 분이었습니다. 아들만 둘이었는데 차남과 남편도 취재에 응해주었습니다. 그 당시 남편과 아들은 가사도 돕고 있었습니다. 제가 남편에게 “요리도 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남자가 부엌에 설 리가 없지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어릴 때는 ‘주탁아소’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주탁아소’란 주중에 엄마가 일할 때 숙박형식으로 아이를 맡아주는 탁아소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육아는 여성의 역할이지만, 일하는 여성을 위해 국가나 행정이 아이를 맡아주겠다는 발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북한에 갈 때 숙박을 하던 평양호텔에는 여성 직원들이 많았는데, 찻집이나 식당 접대원으로 일하는 여성들은 결혼을 하면 그만두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이것도 여성을 ‘꽃’으로밖에 인정하지 않는 증거라고 봅니다. 젊고 아름다운 시기에는 접대원으로 일을 시키지만, 엄마가 되고 나이를 먹으면 접대원으로는 일을 시키지 않다는 것이지요. 대신 ‘층어머니’라고 부르는, 방 청소를 하는 여성들은 결혼한 중년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말씀하신 대로 북한 여성들의 경제 활동은 두드러지죠 .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집안 살림을 보장하기 위해 장사를 하거나 장마당에서 물건을 거래하는 사람들은 모두 여성이었습니다. 제가 2003년에 북한에 갔을 때도 고난의 행군 시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구동성으로 "여성들이 얼마만큼 경제적인 역할을 하는가에 따라 그 집안의 경제생활이 결정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여성에 대해 여전히 구태의연한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기자]북한이최근시장활동을많이통제하는것으로알려졌습니다. 북중국경이봉쇄된 이후 시장활동도크게 위축됐고요. 그동안시장에서여성들의활약이두드러졌는데, 최근몇 년간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과 경제적 위상에 변화가 생겼다고 보십니까?
[문성희] 시장 활동에 대한 통제는 과거에도 있었지요. 40세 이하는 시장에 나가면 안 된다는 규정도 있었습니다. 젊은 현역 여성들은 국가가 정하는 직장에 나가라는 겁니다. 그러나 결국 그런 규정도 나중에 흐지부지됐습니다. 북한 시장에 가시면 아는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입니다. 그리고 공식 시장이 아닌 '길거리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도 여성들인데요. 여기에는 주로 고령자가 많습니다. 물론 지금 시장에 대한 통제가 있고, 국경봉쇄로 시장에 물건이 많이 없는 데다, 돈이 없어 시장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기 때문에 여성들이 시장에 나가지 않게 된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경제적인 활동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겠지요. 그러나 제가 북한을 다닐 때 걸어가면서 빵 등을 파는 여성을 목격한 적이 있는데,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장사는 계속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니까요.
그리고 일본의 경제 잡지 '주간동양경제(슈칸도요게이자이)'의 소속 기자인 후쿠다 케이스케 씨가 최근 온라인에 발표한 글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무상 지원' 명목으로 북한에 물자를 공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단둥 등 중국의 도시를 통관하는 물자에는 식량을 중심으로 무상원조로 보내온 물자를 무역업자가 중개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북중 국경에서 물자가 거래되고 있고, 그렇게 된다면 북한 시장에서도 침체된 거래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아이 낳지 않는 북 여성… 빨라진 고령화에 출산 독려”
[기자] 북한이 저출산을 우려하면서 북한 여성에 출산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자식을 낳아 북한에이바지하라는건데요. ‘노동력이 곧 국력’인 북한으로서 고령화가 큰 문제라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겠지요?
[문성희] 네 . 2022년 12월 미 중앙정보국(CIA)에 따르면 북한 인구가 2천595만 5천138명인데 이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9.75%에 달한다고 합니다. '고령화사회'의 기준이 7%이기 때문에 그것을 넘었다는 거죠. 2030년에는 노인 인구가 14%를 넘을 것이란 예측도 있습니다. 제 할머니도 북한에 귀국하셔서 그곳에서 돌아가셨는데 85세까지 사셨으니까 오래 사신 편에 속합니다. 북한의 영양 상태가 안 좋다고는 하지만, 다른 나라처럼 고령화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반면,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여성들도 적지 않습니다. 제가 2011년에 북한에 갔을 때 호텔에서 얘기를 나눈 직원 여성은 아이가 하나였어요. '왜 하나인가'를 물었더니 경제적으로 한 명 이상은 못 키운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에서도 아이를 키우는 데 돈이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기자] 북한에서 자녀를 키울 때 어떤 부문에서 돈이 많이 들어가는 걸까요?
[문성희] 북한에서 학교는 12년제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학비는 무료지만, 교과서 등은 돈을 내고 사야 됩니다. 제복 등도 최근에는 무료가 아니지요. 그리고 학교 외에도 과외를 시켜야 하는데 그 돈이 장난이 아니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무용을 시키고 싶으면 좋은 대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그 전에 금성학원과 같은 예술전문 고등학교에 입학을 시켜야 하죠. 그렇게 하려면 좋은 선생님을 가정교사로 모셔야 하는데,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한 명 이상은 도저히 못 키운다고 했고, 주변 사람들도 그렇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고민은 생활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겠지요. 지방에 사는 제 친구들은 생활이 어려워서 도저히 아이를 여러 명 가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2010년대 초반 당시도 그랬는데, 코로나로 경제생활이 어려워진 현시점에서도 아이를 낳고 키울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당국에서는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장려하는 것이겠지요. 노동력 측면도 있겠지만, 고령화를 대비하는 의미도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출산을 장려하는 것은 과거부터 계속 그랬습니다. 1990년대에도 세쌍둥이를 낳고 그들을 모두 군대에 보낸 부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만큼 북한에서는 아이를 낳는 것을 중시하고 있다고 봅니다.

“일본의 대북 인도적 지원 쉽지 않아”
[기자]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관계 개선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데요. 일본 정부도 북한과 관계 개선을 희망했지만,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최근 북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일본 정부의 경제 지원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문성희] 직접적인 경제 지원은 어렵겠지요. 아시다시피 일본은 북한과 모든 무역 거래를 금지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최근에 약간의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납북피해자 가족회가 “고령자 부모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납치 피해자들을 모두 돌려보낸다”는 조건을 달고 있긴 하지만,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막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물론 인도적 지원이니까 식량을 보내는 정도이지요. 그래도 이것은 일본 정부에 있어서 순풍이라고 할까요. 그것을 미끼로 북한과 접촉해서 북일 회담을 재개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북한입니다. 북한은 지금 미국과도 대화할 마음이 없다고 봅니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 등을 배경으로 미국에 강경한 자세를 취할 수 있는 것이지요. 지금 북한은 자국의 국방력을 강화하는 데만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런 시점에서 일본 정부가 대화를 요청해도 응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기자] 일본 내 조총련계도 경제적으로 여전히 어려운 상황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을 돕고 싶어도 조총련계 자체가 어려운 상황일 텐데요. 일본 내 조총련계의 요즘 상황은 어떻습니까?
[문성희] 우선 코로나에 따른 국경봉쇄로 총련 전임 일꾼들을 포함해 총련계 동포들이 북한에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 북한에 가족이나 친척들이 있다고 해도, 쉽게 연락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본에서 물자를 보내려 해도 일본의 통제가 심하기 때문에 그것도 간단치 않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총련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은 둘째치고, 총련계 동포들이 북한을 돕고 싶어도 그런 상황이 못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많은 동포들이 북한에 갈 수 있었고 수해 등 자연재해로 북한이 매우 어렵다는 상황이 전해졌기 때문에 북한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아직 총련도 힘이 있었고요. 그러나 지금은 총련도 많이 어려워졌고, 돕는 수단도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봅니다. 북한이 국경봉쇄를 해제하고, 총련계 사람들이 북한에 들어갈 수 있게 되면 지원도 가능해질 것으로 봅니다.
[기자] 네.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지금까지 언론인이자 학자인 문성희 박사와 함께했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봉현, 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