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국제유가와 곡물가의 폭등이 북한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는 가운데 북한 경제 전문가들은 앞으로 대중 무역, 환율 등이 북한의 추가 물가 변동의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북한이 폐쇄 국가이고 자력갱생을 앞세우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국제정세 등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목소리입니다.
노정민 기자가 미국, 한국, 일본의 북한 전문가들로부터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북한 시장 물가 분석과 전망을 들어봤습니다. (* 인터뷰는 각각 따로 진행됐습니다.)

“외화 환율 상승과 우크라이나 사태가 물가 끌어 올려”
- 우선 일본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님께 질문하겠습니다. 북한에서 지난 1월 말부터 기름값이 폭등했는데요. 기름값이 갑자기 오르면서 북한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어려움은 뭘까요?
[이시마루 지로] 북한의 국가 운영에 있어 휘발유와 디젤유가 필수품이라는 것은 확실한데요. 휘발유값이 연초보다 약 1.6배 정도 상승했습니다. 조금 주의해야 할 부분은, 그 시기에 북한 외환 시장에서 북한 원화의 가치가 30% 정도 떨어진 영향이 제일 크다고 봅니다만, 역시 국제 유가 상승과 연관성이 크다고 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유가 상승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일치된 전망이지 않습니까. 북한에서는 연유 가격뿐 아니라 중국 상품의 가격도 동시에 상승할 겁니다. 북한은 중국에서 여러 생필품을 수입해 왔는데, 그 값의 상승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또 곧바로 영향이 생길 것으로 우려되는 부분은, 3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농사에 대한 영향입니다. 국제 유가의 상승이 올해 김정은 정권에서 가장 중시히는 농업 생산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 한국 통일연구원의 최지영 연구위원님도 오랫동안 북한 물가 동향을 분석해오셨는데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북한 물가에 어떤 변화가 있다고 보시나요?
[최지영] 제가 작년 말부터 북한 물가 흐름을 쭉 살펴봤는데요. 일차적으로는 지금 북한의 쌀이나 옥수수, 에너지 가격이 작년 말보다 상당히 오르고 있습니다. 계속 오르는 추세거든요. 그런데 저희가 구분해서 봐야 할 것은, 지금 시장 환율이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북한 원화 환율이 떨어지고 있는 거죠. 작년 12월부터 올해 2월 정도까지는 시장 (외화) 환율의 상승에 따라 쌀이나 옥수수, 에너지 가격이 전반적으로 올랐다고 볼 수 있고요. 지금 3월 현재를 보면 다른 품목보다 에너지 가격이 더 많이 오르기는 했는데,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국제유가 급등이 북한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북한 시장에서 어떤 외부 충격이 있을 때 가장 변동성이 크게 나타나는 품목이 쌀과 휘발유거든요. 이 부분은 비축 수요에서 불확실성이 커질 때 가격이 오르는 품목들이라서 어떤 위기의식이 반영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 미 워싱턴 한미경제연구소의 트로이 스탠가론 선임연구원님께도 질문드리겠습니다. 국제 유가가 오르는 가운데 북한이 러시아를 통해 원유 수입을 확대할 수도 있을까요?
[트로이 스탠가론] 북한이 대부분의 원유를 중국에서 공급받고 있고 밀수를 통해 정제유도 들여오는데, 인플레이션이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한 상황에서 북한이 이를 구매할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러시아로서는 경제제재에 직면해 상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 다른 곳에서 손실을 만회하려 할 것이고, (북한 등에) 원유를 팔아 더 많은 돈을 벌려 할 겁니다.
[이시마루 지로] 이전에 북한이 러시아에서 공식 무역이나 밀수 형태로 원유나 휘발유를 수입했습니다. 제가 조사해 보니 수입 조건이 러시아에 유리했다고 합니다. 계속 에너지난에 시달리는 북한 입장에서는 중국에만 의존하고 싶지 않으니까 수입원 다양화를 위해 러시아에서도 수입하고 싶었는데, 무역 조건이 북한 입장에서는 안 좋았다고 들었습니다.

“중국 물가도 북한에 영향 불가피…자력갱생도 한계”
- 한국 농촌경제연구원의 김영훈 명예선임연구위원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북한이 코로나 대유행에 따른 북중 국경 봉쇄를 2년 넘게 해 왔지만, 나름 잘 버텼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런데 국제 유가와 곡물가의 상승까지 계속되면, 북한이 잘 대응할 수 있을까란 의문도 있는 것 같습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는 벌써 사회 불안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김영훈] 북한의 농업이나 식량 상황을 나타내는 다양한 수량 지표를 보면 어떤 것은 부정적인 신호를 보내는 반면, 어떤 것은 괜찮은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산량, 수입량 등 수량 지표만을 가지고 북한의 농업, 식량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최근에 보고된 북한의 농업정책 동향을 보면 앞으로 상황이 엄중해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현재 새로 발생한 것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 아닙니까. 이 때문에 국제 곡물 가격이 상승 국면에 있고, 러시아에서 수출하는 천연가스 등 에너지 부족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도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조만간 북한에 영향을 미칠 경우에는 지금도 사실 엄중한 상황이지만, 앞으로 북한의 농업 생산이나 식량 수급에 있어서 어려움이 가중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됩니다.
- 북한이 폐쇄 국가이기도 하고, 지난 2년간 북중 국경을 봉쇄해오지 않았습니까. 북한 체제의 특성상 외부 변동성에 영향을 덜 받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요?
[김영훈] 해외 시장의 변동성이 북한 시장에 즉시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실 해외 시장의 영향이 그동안 누적돼 왔다고 보면 됩니다. 2016년부터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강화됐었죠. 2020년부터는 코로나 대유행으로 국경을 자발적으로 폐쇄했고요. 그런 영향들이 누적된 와중에 또다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나 식량 가격이 폭등하는 국면이거든요. 아무리 북한이 국제 시장으로부터 독립된 농업, 식량 수급 시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점차 영향을 받게 될 겁니다.
[최지영] 2020년 10월 이후로 북한이 수입을 더욱더 줄이면서 거의 수입에 의존하는 식료품 가격이 많이 올랐습니다. 어느 정도 수입품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있지만, 최근 북한에서 나타나는 움직임은 수입에 의존했던 품목들을 국내 생산을 통해 대체하자는 것이거든요. 아무래도 대북제재나 코로나 상황, 또는 외화 부족 등이 장기화할 것이기 때문에 수입을 계속 늘릴 수는 없다는 판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체 생산으로 조금 해결하자'는 정책적 변화가 있는데, 이것이 어느 정도 성공할지는 불확실합니다.

“북중 무역 재개로 물가 낮추겠지만, 전면 개방 어려울 듯”
- 북한이 원유 수입을 대부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데요. 국제 유가가 오르면 중국도 영향을 받을 텐데, 그 가격과 수입량 등 영향이 북한에 전달되지 않을까요?
[김영훈] 북한이 원유 공급의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데, 중국에서 북한에 얼마나 수출하느냐가 관건입니다. (3월 중순) 현재까지는 가격은 오르고 있지만, 북한이 수입하는 최소한의 물량이 줄어들었다는 보고는 아직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에너지 수급 상황은 지속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물론 중국 내부에서 필요로 하는 물자를 수입한다거나 내부 생산이 어려워지면, 중국 소비가 우선이기 때문에 북한도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북중 간 무역 물량이나 금액이 낮아질 대로 낮아진 상태이기 때문에 더 줄어들 것이란 예측은 아직 되지 않고 있고요. 최소한의 교역은 유지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스탠가론 선임연구원님. 국제 시장의 변동성에 따라 북한 내 기름값, 물가 상승이 심화하면 북한이 북중 국경을 개방하는 시점도 빨라질 수 있을까요?
[트로이 스탠가론] 북중 국경이 개방되면 더 많은 물건을 수입하기 때문에 물가하락 현상이 나타날 수 있겠죠. 북한에서 특정 물품이 부족할 경우에 국경을 다시 열 것으로 예상하지만, 주기적으로 또 부분적으로 개방할 거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국경을 따라 주요 지역에 여전히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코로나비루스의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 봉쇄를 선택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최지영] 북한의 무역이 거의 90% 이상 중국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중국 내 전반적인 물가 상승이 북한의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라고 볼 수 있고요. 그래서 당연히 중국 내 물가 상승은 북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이 북중 무역을 재개하려고 계속 준비했지만, 무역 재개가 확대되지 않고 있는데, 지금 코로나 상황이 조금 완화되면 무역을 재개할 수 있지만, 무역 규모도 물가에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무역이 조금 재개되면 북한 내 부족 상황이 조금 풀리면서 물가가 완화될 수도 있고요. 또 하나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환율인데요. 무역이 재개되면서 수입을 위한 외화 수요가 많아지면 환율이 상승할 수가 있고, 이 때문에 물가가 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역이 조금 재개된다면 공급 부족 완화로 물가가 조금 하락할 수도 있겠지만, 환율이 상승하면서 물가가 오르는 영향도 있을 것 같습니다.
- 네. 지금까지 이시마루 지로 대표, 김영훈 명예 선임연구위원, 트로이 스탠가론 선임연구원, 최지영 연구위원으로부터 우크라이나 사태가 북한 시장 물가에 미친 영향과 분석을 들어봤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