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 분야를 중심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봅니다. 일본에서 언론인으로 활동 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 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해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잦은 외상거래∙채무불이행으로 북 신뢰도 바닥”
[기자]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중국 연변에 있는 한 대북 무역업자에 따르면 최근 중국 훈춘과 북한의 나진-선봉 사이에 육로 무역이 일부 재개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화물량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이유는 중국에서 북한에 더는 외상으로 물건을 넘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외상 사절’이라는 말이겠죠. 어떻게 보십니까?

[ 문성희 ] 화물량이 그리 많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말씀하신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죠 . 또 생각해 볼 수 있는 다른 이유는 아직 육로 무역이 재개된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중국 무역업자도 북한 측의 상황을 보면서 조금씩 화물량을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외상 때문에 북한에 물건을 넘기지 않겠다'는 것도 충분한 이유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에 물건을 수출해도 제대로 대금 회수를 못 한다면 장사할 재미도 없고, 중국 업자의 입장에서 경영이 어려워질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 위험을 각오하면서까지 북한을 도와줄 이유가 없겠지요. 북한 무역업자가 당장 자금이 없어 외상으로 물건을 수입하고도 물건값을 치르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 업자의 입장에서는 외상보다 현금으로 거래할 수 있으면 가장 안전하겠지요. 지금은 화물량이 많지 않더라도 앞으로 외상이 아닌 현금 거래가 늘어나면 화물량이 더 많아질 거라고 봅니다.
[기자] 과거에도 북중 간 무역에서 외상 거래가 많았나요? 물물 거래 형식도 있었고, 대금 결제 문제로 북중 간에 문제가 많았던 것으로 압니다. 중국 무역업자들 사이에서 북한에 대한 신뢰도는 어떻다고 평가하십니까?
[문성희] 김일성 정권 시기에는 기본적으로 물물거래 , 그리고 북한에 물건을 제공할 때는 특별히 우호적인 가격으로 거래했습니다. 그것은 소련이나 동유럽의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는데요. 그러다가 김일성 정권 후반 시기인 1992년에 중국이 한국과 국교를 맺었습니다. 그 전후부터 중국은 물물 거래가 아닌, 보통 다른 나라들과 똑같은 형식으로 무역을 하게 됐다고 봅니다. 대금 결제도 우호 가격이 아닌 일반적인 가격을 적용하게 됐고, 미국 달러화로 결제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이 매우 힘들었죠. 대금 결제를 달러, 그러니까 북한에 부족한 외화로 결제해야 하니까 더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추정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북한에 대한 중국 기업이나 당국의 신뢰도는 당연히 낮다고 할 수 있겠죠.
[기자] 혹시 북한과 일본 사이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을까요?
[문성희] 1980년대에 주로 재일동포 상공인들이 북한과 합영 사업에 나섰습니다. 북한에 공장도 세우고 북한 노동자들을 고용해 만든 물건을 일본 등에서 팔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양복이었죠. 하지만 결국,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결제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시 합영으로 북한에 막대한 자금을 제공한 '모란봉' 회사의 회장이 일본 잡지에서 북한을 비판한 적도 있습니다. 그 당시 합영이라는 것은 재일동포들의 애국심으로 성사된 면도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1세, 2세 상공인들의 애국심이었죠. 하지만 세월이 흘러 오늘날 그렇게까지 북한을 위해 나서는 사람들이 적어졌고, 무엇보다 일본이 북한과 무역을 일절 금지하는 상황에서 북한과 협력하지 못하는 점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과 무역을 했던 시기의 차관도 아직 남아있죠. 1970년대에 북한이 일본에서 플랜트(생산용 기계장비)를 도입한 때가 있는데, 그때 채무불이행(디폴트)이 됐어요. 김일성 주석이 무역일꾼들에게 "무역에서 신용이 중요하다"는 말을 여러 번 한 적이 있는데, 거꾸로 말하면 신용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달러∙위안화 환율 상승… 외화 사용 통제 풀린 듯”
[기자] 한편으로는 중국도 더는 북한과 외상거래를 할 수 없을 만큼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뜻이 아닐까요?
[문성희] 저는 북한의 외상 거래를 문제 삼을 정도로 중국 경제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봅니다 . 물론 1970년대 이야기지만, 북한은 서유럽 국가의 기업들과도 채무불이행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인 면에서 북한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신뢰도는 낮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미 여러 번 경험이 있는 중국 기업들도 북한으로부터 대금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제는 외상 거래를 할 수 없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차라리 인도적 지원으로서 중국 당국이 물건을 제공해주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지만, 북한 입장에서 보면 외상 거래든 뭐든, 지금 필요한 물자를 제공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북한이 외상 거래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재 북한에서 대금을 결제할 외화가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란 분석이 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북중 국경이 봉쇄됐고, 무역도 원활치 않다 보니 외화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요. 계속 악순환이 아닐까요?
[문성희] 북한은 외화가 만성적으로 모자란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과거 1990년대에 '고난의 행군'이라는 경제적 난관이 발생한 것이고요. 말씀하신 대로 지난 3년 동안 북중 국경이 봉쇄된 상태고, 지금도 아직 완전히 개방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재일동포를 비롯한 해외동포들도 북한에 못 들어가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외화가 북한에 들어가는 수단이 없는 겁니다. 국고에 있는 외화는 줄어들기만 하고요. 지금 북한이 결제를 완전히 달러로 하고 있다고 가정하면 북한에 어느 정도 외화가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아래 계층에서 외화를 구하는 데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다 보니 급한 대금부터 먼저 결제하려고 외상 거래를 했다가 끝내 지불하지 못하는 악순환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죠.

[기자] 북한 시장에서 거래되는 중국 위안화와 달러 환율이 코로나 대유행 이전 수준을 회복했습니다. 미국 달러화는 북한 원화당 8천200원, 중국 위안화는 1천200원 정도인데요. 환율이 되돌아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문성희] 제가 북한을 자주 오갈 때는 1달러당 북한 돈 2천500원에서 올라도 3천 원 정도였습니다. 그 후로 5천 원부터 6천 원 정도를 오르락내리락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시 말해 북한 돈의 가치는 계속 내려가기만 했다는 거죠. 제가 2003년에 조선신보 특파원을 할 때 어떤 현지(북한) 사람이 미국 달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일반인이 달러를 사용하는 것이 금지됐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북한 돈의 가치가 그렇게 낮지 않았다고 보는데, 시장에서 쌀을 팔 수 있게 되면서 시장 가격이 올라가고 달러도 올라간 것으로 압니다. 2010년 정도에 들었던 이야기는 쌀 1kg의 가격이 1달러였습니다. 그렇게 보면, 1달러에 북한 돈 8천200원이라는 것은 달러의 가치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결국, 외화를 쓰면 안 된다는 북한 당국의 통제가 풀린 것이 아닐까요. 북한 사람들은 2009년의 화폐교환 이후로 아무리 북한 돈을 가져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외화를 저축해놨다가 통제가 풀리면서 시장에 외화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기자] 네.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지금까지 언론인이자 학자인 문성희 박사와 함께했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봉현, 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