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 분야를 중심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봅니다. 일본에서 언론인으로 활동 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 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해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위탁가공, 북∙중 양측에 실리와 명분 제공”
[기자]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3년 넘게 북중 국경이 봉쇄된 상황에서 북한이 중국으로 노동자 파견을 자제하는 대신, 오히려 북한으로 일감을 가져오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물량을 보내라는 건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배경과 의미를 뭐라고 보시는지요?

[ 문성희 ] 제가 알기로는 오히려 북한 노동자들이 중국에 파견되고 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 그래서 말씀하신 내용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 단정하지 못하지만, 만약 그렇다는 전제로 의미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북한 입장에서 본다면 중국으로 노동자를 파견하는 것은 아직도 코로나 감염자가 나오는 상황에서는 위험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북한에서 파견한 노동자들이 감염돼 돌아올 가능성이 있지 않습니까. 물론 PCR 검사를 철저히 하고 격리 조치도 취하겠지만, 걱정은 되겠지요. 따라서 중국에 노동자를 파견하기보다 재료를 받아 그것으로 북한에서 제조하는 일종의 '위탁가공방식'이 위험이 적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봅니다. 또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 노동자 파견은 유엔 대북제재의 위반이죠. 그런 것을 생각하면 북한이 중국으로 노동자를 파견하는 것을 자제하고, 북한으로 일감을 가져오는 것이 북한과 중국 모두에게 일리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과거에 개성에서 임가공을 했기 때문에 한국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북한은 12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어서 노동자들도 고등학교까지는 모두 졸업합니다. 그래서 지식도 풍부하고 성실하죠. 임금도 그렇게 비싸지 않고, 무엇보다 권리 의식이 적기 때문에 파업 같은 것도 절대 일으키지 않습니다. 노동자로서는 매우 순하다고 할까요. 그런 측면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것은 매우 이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그런데 한국의 개성공단이 2016년에 대북제재의 근거를 들어 가동을 중단한 사례가 있었는데요. 중국으로부터 위탁가공을 하는 것도 대북제재를 위반하는 것 아닐까요?
[ 문성희 ]네. 엄연히 따지면 그렇게 되겠죠. 그런데 저는 개성공단도 당시 박근혜 정부가 이를 철수하지 않았으면 계속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철수했기 때문에 재개하기 어려운 것이죠. 그러니까 위탁가공 문제도 결국, 중국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기자] 박사님. 북한이 중국에서 물량을 받아 물건을 제조함으로써 내수산업을 활성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과거에도 중국에서 주문을 받아 북한에서 만들어 보내는 방식이 많았습니까?
[ 문성희 ] 일종의 위탁가공이라 할 수 있는데 , 그런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북한 노동자들의 숙련도는 나쁘지 않습니다. 물건을 하나 만들어도 완벽하게 만드는 편이지요. 그것은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고, 지시한 것에 대해서는 충실히 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임금도 그렇게 부담이 없을 정도로 낮기 때문에 중국이 주문한 것을 북한에서 만들어 보내는 방식은 당연히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그렇게 빈번히 있었는가는 확인을 못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를 하나 들 수 있는 것이 '영광가구공장'입니다. 여기는 원래 중국과의 합영 공장인데 중국에서 재료를 가져온 뒤 북한에서 제조해 국내에서도 팔고, 중국에도 수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직접 가구를 제조하는 현장을 찾아가기도 했는데, 노동자들의 기술력도 높고 좋은 가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공장 사장이 말하기를 국내 수요도 많지만, 중국 등 해외에도 수출한다는 것이었어요. 이런 식으로 옛날부터 중국이 주문해 북한에서 만드는 방식은 있었다고 봅니다. 이것은 국경 봉쇄가 없었던 때의 이야기이지만. 국경 봉쇄가 오래된 상황에서 북한이 노동자를 파견하기보다 중국의 주문을 받아들여 내부에서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키는 쪽이 현실적이라고 할까요. 그러니까 과거보다도 그런 방식이 많이 취해져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북한 경제가 어렵기는 하지만, 버티고 있는 이유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중국의 주문을 받아 가공한다면 일정하게 외화가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원자재와 에너지는 풀리지 않는 숙제
[기자] 말씀하신 대로 북한에서 나름대로 생필품이나 식료품 공장 등 내수 산업이 활발히 돌아간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력갱생’, ‘자급자족’이 가능했다는 분석이 있는데요. 박사님께서 진단하시는 북한의 내수산업은 어떻습니까?
[ 문성희 ] 북한당국이 현재 가장 힘을 쓰고 있는 것이 '인민생활향상'입니다. 물론 이 선전 구호는 예로부터 계속 강조돼온 것이지만,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인민들의 진정한 지지를 얻자면 북한 주민들 스스로 자기들의 생활이 좋아졌다고 느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래서 최근에도 그렇지만, 계속 주택 건설 등에 힘을 쏟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 연장선에서 본다면 생필품 공장이나 식료품 공장 가동은 당국에서도 힘을 쓰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비교적 이런 공장들을 가동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제가 2011년에 북한에 갔을 때 빵과 아이스크림을 샀던 '선흥식료공장' 직매점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생필품 공장이나 식료품 공장이 잘 돌아가는 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내수산업이 잘 돌아간다면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최근 북한 보도를 보니까 평양역전백화점에서 신발 전시회가 개막되고, '나래'라는 화장실용품이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이 '나래'에서 생산된 화장실용품이 모두 국내산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사실 자력갱생을 입증해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기자] 하지만 3년 넘게 북중 국경이 봉쇄되면서 원자재의 수입이 제한적이기도 했는데요. 지금 북한 내수산업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보십니까?
[ 문성희 ] 제가 2011년에 방문한 '평양양말공장'의 기계는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재료는 중국에서 수입한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혹 중국에서 재료가 안 들어오면, 목표로 한 양말 생산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니까 평양양말공장에서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재료를 중국에서 수입하려고 애를 썼다고 보는데 그것이 국경 봉쇄로 어려움에 처해있다면 양말 생산량을 줄이거나 아니면 국내에서 원자재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 당시 평양양말공장 안내원이 자랑삼아 얘기하던 것이 여성용 스타킹이었습니다. 그 재료는 중국에서 수입한다는 것이었어요. 그것이 지금도 계속 들어올지 궁금한데, 국내에서 원자재를 해결한다 해도 한계가 있고요. 또 원자재와 함께 공장을 가동하는 에너지도 문제라고 봅니다. 옛날부터 북한의 문제점은 에너지 즉, 전기입니다. 물론 북한 당국이 중시하는 주요 공장에는 우선적으로 전기가 공급되도록 하겠지만, 그 이외는 자력갱생으로 해결하라고 하겠지요. 그러니까 에너지도 자체로 해결하는 겁니다.

[기자] 북한이 최근 경제핵무력 병진노선 10주년을 자축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북한이 계속 핵미사일을 강화하면서 민생 관련 사업보다 군수산업에 더 주력하게 되고, 이것이 내수산업의 불균형을 가져오지 않을까요? 혹시 내수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까요?
[ 문성희 ] 북한은 군사에 관해서는 예산이 따로 나옵니다 . 따라서 핵무력 강화가 민간 내수산업에 직접 미칠 영향은 적다고 봅니다. 하지만 예산이 다르다고 해도 국가에 있는 돈은 제한돼 있기 때문에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막대한 돈을 쓰고 있다면, 결과적으로는 내수산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겠지요. 그러나 김정은 총비서는 최근 열린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인민생활향상에 힘을 놓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에 대한 견제로써 핵미사일 개발은 계속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인민생활향상 즉, 먹는 문제를 비롯해 민생문제 해결에도 힘을 쓰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핵과 경제의 병진노선'이라는 것인데 거듭 강조하지만, 그렇게 잘 될까요. 아무래도 지금 상황을 보면 군사력 강화 쪽에 더 힘을 쓰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고로 과거 1960년대에 김일성 주석이 병진노선을 제시한 뒤 주민들의 생활이 매우 어려워졌다는 역사적 사실도 있습니다.
[기자]네.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지금까지 언론인이자 학자인 문성희 박사와 함께했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봉현, 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