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 분야를 중심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봅니다. 일본에서 언론인으로 활동 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 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해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핵심 계층에 타격 줄만큼 식량난 심각한 듯”
[기자]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곧 북한의 태양절이 다가옵니다. 북한 내부 상황을 들어보니 올해도 태양절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이 없고, 지금 가장 큰 관심은 ‘보릿고개를 어떻게 넘기느냐’라고 하는데요. 요즘 시대에 ‘보릿고개’란 말은 북한에만 있는 것 같습니다. 박사님께서 정의하는 북한의 ‘보릿고개’는 무엇입니까?

[문성희] 제가 인식하는 보릿고개란 지난해 수확한 곡물 재고가 떨어지고 , 다음 해 수확이 나올 때까지의 단경기(철이 바뀌어 묵은쌀이 떨어지고 햅쌀이 나올 무렵)를 말합니다. 이 말이 북한에만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아무리 식량이 떨어져도 모든 곡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마도 북한의 고유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제가 자주 북한을 오가던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보릿고개'라는 현상을 목격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아무리 곡물이 떨어져도 시장에서 쌀 등 곡물은 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장에서 쌀을 판매하는 것이 금지된 시기도 있었지만, 제가 쌀을 사고 싶다고 하면 숨겨놓은 쌀을 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보릿고개라 해도 곡물이 완전히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식량난을 겪는 북한에서 보릿고개는 매년 지적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지난 2월에 김정은 총비서가 식량을 주제로 전원회의를 열 만큼 상황이 심각해 보인다는 관측이 있습니다. 박사님의 진단은 어떻습니까? 식량 문제에 관해 외부에서 보는 시각과 김정은 정권이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문성희]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코로나로 인한 국경봉쇄가 3년이 넘었고, 그 이전에도 경제제재 때문에 외국에서 식량을 수입하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란 추측은 가능하겠지요. 지난 2월에 식량을 주제로 전원회의를 개최한 것도 당연히 김정은 총비서가 걱정할 만큼 식량 사정이 심각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북한 사람들이 모두 굶는 것은 아닙니다. 김정은 총비서의 측근들, 당과 군 간부들, 그리고 군인 등은 우선적으로 식량 공급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은 별다른 걱정 없이 우선적으로 식량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 주민들은 이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식량 혜택을 못 받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조금 굶었다고 해서 북한이 전원회의를 열 만큼 심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핵심적인 사람들마저 식량 공급을 받지 못하게 됐다면 이건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김정은 총비서 지도하에 먹는 문제를 가지고 전원회의를 가졌다는 것은 식량 사정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지난 광명성절 때도 그렇지만, 올해 태양절에도 특별 공급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북한 주민들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
[문성희] 북한 사람들이 왜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느냐, 그건 명백합니다. 바로 영도자의 선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아무리 어려워도, 휴일도 없이 일을 했다고 해도 민족의 최대 명절인 광명성절과 태양절에는 식량이나 경공업 제품, 의류 등이 선물로 공급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총련 일꾼들에게도 선물이 있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도 총련 간부였기 때문에 북한에서 보내주는 성게 통조림이나 명알(명태알) 같은 것을 집에 가져오셨습니다. 아마도 북한 사람들은 그것보다 더 자주, 더 많은 선물을 받고 있었겠지요. 그래서 명절을 고대합니다. 이것은 최고 영도자의 권위와도 관련돼 있기 때문에 외국에 있는 북한 당국자들이 열심히 선물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외국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많지도 않을 것이고, 외국에서 들어오는 물자도 적다고 봅니다. 코로나로 경제가 침체하는 중국,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을 받는 러시아에서 과연 충분한 물자가 들어올지도 의문스럽습니다. 그리고 이 최대명절 때조차 특별 공급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북한 경제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고 봅니다.

“일기예보∙종자 개발 등 과학영농 발달”
[기자] 북한에서 ‘과학영농’을 담당하는 농업연구원 건물이 새 단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20개 분야별 전문 연구조직을 두고 있다고 하는데, 박사님이 보시기에 북한의 과학영농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문성희] 제가 2003년에 조선신보 평양 특파원을 할 때 농업연구원 관계자들을 취재했습니다. 그 당시 황해도에서 ‘비루스 감자’ 농사를 시범적으로 하는 농장이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감자가 바이러스(비루스)에 감염돼 다른 감자에도 영향을 주고 있었고, 이 때문에 아무리 감자를 심어도 잘 자라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당시 북한에서는 부족한 쌀을 감자로 대신하는 ‘감자농사혁명’이 장려되기도 했고, 여러 가지 감자 요리가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는 감자알을 발견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는데, 그것을 주도적으로 했던 사람들이 농업연구원에 소속된 과학자와 연구원들이었습니다. 알이 많이 생산되는 벼 이삭도 개발하려고 애를 쓴 곳이었습니다. 연구원들과 과학자들은 정말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분들이 연구를 한다면 정말 북한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기상예보 같은 것도 많이 발달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일기예보 같은 것도 날씨만 알렸지만, 2010년대에는 벌써 파도 높이 같은 것도 알리게 됐습니다. 김정은 정권 들어 수해나 가뭄 등을 미리 막기 위해서는 정확한 일기 예보가 필요하다며 이 부문에 많은 힘을 쏟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니 기상예보 부문도 많이 발달했겠지요. 북한에서는 농사일을 과학적으로 하는 것을 나라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사활적인 문제로 여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말씀하신 대로 북한이 농업연구원 시설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만성적인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사실 김 총비서가 언급한 12개 중요 고지 중 첫째가 알곡 생산일만큼 계속 농업 발전을 강조하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앞으로 과학영농이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문성희] 앞서 말씀드렸듯이 북한에서 농업연구원 시설의 현대화는 나라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사활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연구원에는 두 가지 측면이 필요하겠지요. 하나는 거기서 일하는 연구자들의 수준을 높이는 것인데, 이건 북한 사람들이 지식도 있고, 열심히 공부도 하고, 정말 아득바득 노력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올라간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핵이나 미사일 개발을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는 수준이 높은 기구나 기계 등을 얼마나 들여올 수 있는가입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AI, 즉 인공지능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을 도입할 수 있겠는가, 과학적인 농사를 짓기 위한 일종의 기초시설 구축이라고 할까요. 그 부분이 아무래도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농장에는 농기계가 충분히 있는 것도 아니고, 인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그리고 바깥에서 선진적인 기술을 도입할 필요가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의 우수한 과학자와 연구자들을 외국으로 유학시켜야 하고, 반대로 외국에서 우수한 과학자들을 데려올 필요가 있지요. 지금도 아직 있다고 생각하는데, 평양과학기술대학과 같은 곳에서 영재들을 많이 키울 수 있다면 과학영농도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네.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지금까지 언론인이자 학자인 문성희 박사와 함께했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봉현, 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