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 봅니다. 일본에서 북한 전문 언론인으로 활동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 기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최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치약과 허리띠 때문에 크게 화를 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품질이 나쁘다는 이유에서였는데요. 문 박사님, 김 총비서는 '선질후량' 원칙을 강조한 걸로 알려졌는데 북한의 소비재 품질, 과연 얼마나 형편없길래 최고지도자가 격노한 건가요?
문성희 아시다시피 북한에서는 생필품, 경공업품은 거의 국가공급입니다. 그래서 제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생필품을 사고 싶어도 쉽게 살 수가 없었어요. 우리같이 해외에서 가는 사람이 물건을 사려면 외화상점에 가서 구해야 합니다. 제가 한 번은 평양지하상점이라는 곳에서 공책(노트)을 살펴본 기억이 있어요. 종이의 질이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평양1백화점을 구경하러 갔을 때, 문방구 매장에 들렸는데, 거기서 보니까 국내에서 제조한 상품과 외국에서 수입한 상품, 두 가지가 나란히 진열돼있었습니다. 하필 왜 나란히 진열했는지 모르겠는데, 그 때문에 북한에서 만들어진 국산품이 외국 상품과 비교해서 한심한 질이라는(질이 나쁘다는) 것을 한 눈으로 알 수가 있었습니다. 치약, 치솔 같은 것도 그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후 다시 북한을 방문했을 때 광복거리에 있는 상점에서 체육복을 샀어요. 북한에서 입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 질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양말 같은 것도 질이 좋았습니다. 그러니까 무턱대고 질이 다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김 총비서의 질책을 받은 간부들이 좀 불쌍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질도 중요하지만 양도 보장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래서 약간 질이 떨어져도 생산량을 확보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원자재나 기계 문제도 있지요. 당시 양말의 질이 좋은 것은 원자재를 중국에서 들여오고 기계도 이탈리아에서 사 왔기 때문이었다고 공장 간부들이 말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외국의 선진 기술을 도입한다면 질도 양도 보장할 수 있겠지요.

< 기자 > 그런데 북한의 소비재 품질이 낮은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이 시점에 김 총비서가 치약 문제를 들고 나온건 어떤 의도로 봐야 할까요?
문성희 하나는 코로나비루스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대책 탓에 생필품을 얻기가 힘들게 돼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사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필품을 비롯한 소비재를 얻기 힘든 상황에서, 특히 지방에서 장사를 하기 위해 시장에 가려고 해도 못 간다, 시장에 손님들이 안 오니까 장사를 못한다, 등등 여러모로 불만이 쌓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 간부들에게 질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갑자기 소비재를 사오라고 해서 그것을 보고 질이 안 좋다고 하는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 일부러 과시하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간부들은 일종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요.
다만 실제 김정은 총비서의 눈으로 본다면 북한에서 만든 소비재는 질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비판에 나섰다고도 할 수 있지요. 어떻게 해서든 인민들에게 질좋은 제품을 제공해주려고 최고지도자가 노력하고 있는 측면을 과시하는 측면이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기자> 한편에서는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진 상황에서 김 총비서가 간부들에 대한 군기잡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인데요.
문성희 북한이라는 나라는 최고지도자에게 죄를 묻지 않습니다. 최고지도자의 지시는 모두 올바른 것입니다. '문제는 최고지도자의 의도를 잘 파악하지 않고 제대로 집행 못하는 간부에 있다'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니까 간부들이 비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민들에게도 죄는 없지요. '인민의 나라'로 인민들의 생활을 돌보아주는 것을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장해주는 것이 간부이지요. '최고지도자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것을 간부들이 잘 집행하지 않으니까 주민들의 생활이 좋아지지 않는다'는 그런 설명이 필요한 거죠. 일반주민들의 불만을 최고지도자가 아닌 간부들에게로 돌리는 거죠.
그리고 군기잡기 측면에서는 간부들이 자기가 맡은 임무를 수행해도 그만, 수행 안 해도 그만,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간부 검열 사업을 하는데 그런 것이 앞으로 더더욱 강화될 가능성도 크다고 봅니다. 김정은 총비서가 일부러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도 앞으로 군기잡기에 나서겠다는 것을 과시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 기자 > 북한 당국은 그 동안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직접 도움이 되는 소비재 생산에 중점 투자하기 보다는 핵과 미사일 개발 등에 더 노력했다는 평가가 많았는데요. 이런 정책이 먼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문성희 그렇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미사일 한 발 쏘는 가격으로 얼마나 많은 식량을 구할 수 있습니까. 소비재 생산에도 투자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북한에서는 그런 발상이 안 나온다고 봅니다. 1990년대 말이었던가 노동신문 정론에 이런 기사가 나왔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미사일 개발을 하는 돈으로 인민들에게 당장 먹는 것을 주는 것보다 미국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 지금 내가 미사일 개발을 하고 있는 것을 인민들은 이해해줄 것이다,' 뭐 그런 말을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미사일이나 핵개발에 중점을 두는 것은 북한 지도부로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이지요. 물론 미국과의 관계가 완전히 개선되면 그 시점에서 핵, 미사일 개발은 하지 않을 것이지만, 지금 미국과의 관계 개선은 생각조차 못합니다.
북한은 미사일이나 핵을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요. 소비재 개발, 소비재를 생산할 수 있는 기계의 개발에 그 기술을 쓴다면 얼마나 좋은 제품들을 생산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그 점은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 기자 > 당장 김덕훈 내각 총리가 평양 시내 경공업 사업장과 백화점 등을 돌며 현장 점검에 나섰다고 북한 관영매체는 전하고 있는데요, 소비재 품질 향상을 위한 기술은 물론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도 부족한 상황에서 소비재 품질 개선이 이뤄질지 의문입니다.
문성희 김덕훈 총리가 현장점검에 나선 것은 어쩔 수 없이 한 것이겠지요. 김정은 총비서가 전원회의에서 엄하게 지적했는데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갑자기 소비재 품질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지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대로 기술을 향상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원자재를 확보해야 할 것이고 외국에서 기술을 도입한다거나 그런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것을 하려면 아마도 시간이 걸릴 것이고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겠지요. 다시 말하지만, 핵, 미사일을 개발하는 그런 기술을 경공업 부문에 도입한다면 앞으로 북한에서도 좋은 소비재를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기자>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정우, 에디터 박봉현, 웹팀 이경하